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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예람 Oct 19. 2015

모두가 외면하는 진실 속 올곧은 신념과 정직한 용기

하퍼 리 - 앵무새 죽이기

내가 손가락으로 가리키자 아저씨의 두 손바닥이 벽에서 조금 미끄러졌고 벽에는 기름과 땀 자국이 남아 있었습니다.
아저씨는 허리띠에 엄지손가락을 걸었습니다.
마치 손톱으로 슬레이트를 긁는 소리를 들은 듯 이상하고 작은 경련으로 아저씨의 몸이 떨렸습니다.
하지만 내가 놀라 아저씨를 바라보자 아저씨의 얼굴에서 긴장감이 서서히 사라졌습니다.
입을 벌려 수줍게 미소를 지으셨고요.
갑작스럽게 쏟아지는 눈물로 우리 이웃 아저씨의 얼굴이 흐려졌습니다.
「안녕하세요, 부 아저씨!」
내가 말했습니다.


어렸을 때 흑백영화를 본 적이 있다. 그 때 제목이 하도 독특해서 여전히 뇌리에 깊게 박혀 있다.

커다란 나무가 있고 어린 아이 세 명이서 조심스러운 발걸음으로 어딘가를 걸어가고 있는 장면. 지금에야 그 장면이 부 래들리를 보고 싶어 하는 아이들의 호기심 어린 장난이라는 걸 알지만 그 당시에는 정말로 앵무새를 죽이러 가나 보다 했다. 말 그대로 앵무새를 죽이는 것이 그 영화의 내용인 줄 알았다.


아직 어리고 철없는, 하지만 순수함으로 가득한 9살 소녀, 스카웃의 시점으로 소설은 진행된다. 그래서인지 스카웃이 생각하는 것과 느끼는 것들이 불순물을 제거하지 않고 그대로 흘러들어 온다. 조금 당혹스러울 정도로.

그 당시에 흑인에 대해 백인들이 가졌던 편견들, 생각, 아이가 어른들을 바라보는 시선들.

아무리 신사적이고 생각이 박힌 사람이라도 흑인과 관련되면 이상하게 감정적으로 변하고는 한다.

그 때는 그런 시대였다. 유색인종이 자신의 위에 서는 것을 극도로 꺼려하고 차별은 당연한 것이었으며 백인과 흑인이 결혼하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했던 시대.


스카웃과 젬의 옆 집에는 래들리 가문이 있다. 집 밖으로 나오는 것을 극도로 꺼리는 이 신사는, 어린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아이들은 '부 래들리'를 만나기 위해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한다.

그러나 어떻게 해도 아이들은 부 래들리를 만날 수 없었고 여전히 그를 보고 싶다는 생각은 하지만 점차 시들해져 간다. 그러던 어느 날, 변호사인 아버지가 흑인을 변호하게 되는 사건이 벌어진다. 그 사건으로 인해 사이가 좋았던 마을은 한 순간 긴장감에 휩싸이며 각자 다른 의견을 가지고 마찰과 대립이 이어진다.


등장인물들 중 내가 가장 좋아한 사람은 스카웃과 젬의 아버지인 핀치 씨였다. 웬만해서는 화를 내지도 않고 침착하고 상냥한 태도를 고수하며 아이들에게 올바른 가르침을 주고자 하는 아버지.


핀치 씨가 흑인의 변호를 맡게 되고 그를 아는 사람들이 염려하며 굳이 그 사건을 맡지 않아도 된다고 만류한다. 그러자 핀치 씨는 말한다.

만약 내가 이 사건을 거부하면
나는 내 아이들을 제대로 가르칠 수 없을 겁니다.

사회 분위기 상 흑인 변호를 맡는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 줄 알면서도 그는 그래야만 아이들 앞에 변호사로써 아버지로써 당당하게 설 수 있다는 걸 이미 깨닫고 있었다.

그는 누군가를 마음 깊이 미워하는 것이 편견의 시작이라는 걸 알고 있었으며 상대방이 되어 보지 않고서는 그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이 아는 것을 자신의 아이들도 알기를 바랐다.


스카웃은 흑인 변호 사건을 보면서 의문점을 갖는다. 왜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고 세상은 말하고 있으면서도 정작 모든 사람은 평등하지 않은 걸까.

「내 생각으로는 오직 한 종류의 인간만이 있을 뿐이야. 그냥 사람들 말이지.」

스카웃이 그렇게 말하자 젬이 조금 씁쓸하게 반박한다.

그들이 서로 비슷하다면, 왜 그렇게 서로를 경멸하는 거지?

어쩌면 그건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의문일지도 모른다.

여전히 편견은 존재하고 그에 따른 차별도 팽배하다.


백인은 흑인을 차별하고 흑인은 황인을, 또 황인은 같은 황인을 차별하기도 한다. 피부색에 따라 지위가 변하는 것이 아닌데도 이상할 정도로 사람들은 피부색에 집착을 한다.

참 우습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간혹 나 또한 다른 인종을 비하하는 말을 쓸 때가 있다. 그게 무의식일지라도.


아마 우리가 사람으로 존재하는 동안 차별은 영원히 풀지 못할 인류의 과제일 것이다. 서서히 나아지기는 하겠지만 어딘가에는 분명 존재할 테니까. 그렇다고 해서 이게 사회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사람들이 자각을 하고 고쳐가려고 노력할수록 우리는 점점 더 나은 인간이 되어간다. 언젠가 말 그대로 오직 한 종류의 인간만이 존재하는 그런 날이 오리라 막연한 희망을 품어 본다.

날 때부터 글을 읽고 쓸 줄 아는 사람은 하나도 없어.
월터도 자기 나름대로는 똑똑한 거야.
집에 남아서 아빠의 일을 도와줘야 하기 때문에 종종 뒤처질 뿐이지.
그 애한테 잘못된 것은 없어.
내 생각으로는 오직 한 종류의 인간만이 있을 뿐이야.
그냥 사람들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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