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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a May 18. 2022

냉이

야X채소이야기#06.



분류(과명)  : 십자화과 (두해살이풀)
원  산  지   : 소아시아와 동유럽을 비롯한 온대지역
다른 이름   : 나생이, 나숭게


#생각1. 몰라봤다

늘 향이 독특한 야채들을 좋아했다. 그래서 해외에서 처음 맛보는 향신료에 단 한 번도 거부감이 없었던 것 같다. 우리 야채들 중에 독특한 향을 가진 것은 나물류가 많다. 어릴 적부터 나물을 잘 먹었던걸 보면 타고난 식성이다. 향을 추구하는 입맛은.


구례로 이사한 첫 봄, 나는 향이 독특한 각양각색의 나물을 캐러 다닐 수 있을 줄 알았다. 봄이 왔건만, 나는 나물을 캐 먹을 수가 없었다. 다른 풀들과 함께 있을 때 나물만을 골라내 알아볼 줄을 몰랐고, 어디에서 주로 자라는지 몰랐고, 심지어 봄나물도 순서가 있는데 그 순서를 몰랐기 때문이다.


달래랑 비슷하게 생긴 잎이 보여서 캐보면 뿌리가 달래가 아니었다(숲에는 달래와 유사한 풀이 꽤 있는데, 유난히 가늘게 흐느적거리는 느낌의 잎이 모여 있는 것이 달래다).

시장에서 할머니들이 팔기 시작하는 쑥부쟁이는 뒷산을 아무리 다녀도 없었다(쑥부쟁이는 주로 논두렁에 많이 자라는데 비탈진 지형의 볕이 좋은 곳에 있는 편이라 산 숲에서 찾아보긴 어렵다).

산취나물은 그 향이 특히 좋다는데, 시장에는 취나물이 흔히 보이기 시작해도 산에선 그 비슷하게 생긴 잎도 보이질 않았다(다른 나물들이 그렇듯 취나물도 요즘은 대량으로 재배하는 경우가 많아 이른 봄부터 구매가 가능하다. 하자만 산에서 자라는 야생 취나물은 다른 나물들 보다 조금 늦게 수확이 가능하다. 동네 할머니들은 4~5월 야생 고사리를 수확할 때 주로 함께 캔다).


그렇게 나물 캐기는커녕, 나물 발견도 어렵던 첫 봄. 나는 냉이라도 내 손으로 캐어 먹어 보고 싶다고 계속 생각했다. 냉이는 좋아하는 나물 중 상위권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체 어디에서 냉이를 찾아야 하나 막막하기만 했던 봄날 오후. 나는 처음으로 얻은 밭에서 초보 농부 티를 내며 며칠 째 밭을 만들고 있었다. 다른 이들처럼 트랙터나 관리기 (혹은 경운기)를 이용해 밭갈이 하지 못하고, 삽과 괭이로 흙을 일구는 작업이 계속되고 있었다. 밭에는 이제 막 올라오기 시작하는 푸른 풀과 흰 꽃이 지천이었다. 흰 꽃을 보며 '무슨 풀이 벌써 꽃이 폈나' 신기했다. 그때, 한 이웃이 우리 밭을 지나가며 인사처럼 한 마디 던졌다.


"자기 밭에 냉이 참 많네~ 일찍 와서 좀 캐 먹지 그랬어. 꽃이 다 펴 버렸네."

"네? 냉이가 어디 있어요?"

"그 하얀 꽃이 다 냉이 꽃이잖아!"


우리 밭에 냉이가 많았다니. 3월 초인데 벌서 꽃이 펴 버렸다니. 난 주저앉아 흰 꽃이 핀 풀을 하나 뽑았다. 꽃대가 올라오긴 했지만 자세히 보니 잎이 뭔가 냉이처럼 생겼다. 믿을 수가 없어서 코를 뿌리에 가져갔더니, 바로 그 향이 난다. 냉이 향.  


몰라봤다. 그렇게 나물 캐러 다니고 싶다고, 냉이라도 캐보고 싶다고 생각했던 봄날, 우리 밭에 온통 냉이가 자라고 있었는데 잡초인 줄 알고 내버려 뒀다가 꽃이 펴 버렸다(대부분의 나물이 꽃대가 올라오면 먹지 않는다). 냉이는 봄나물 중에서 이른 봄, 심지어 겨울 끝자락부터 나타나기에 가장 먼저 맛볼 수 있는 봄나물이고, 종류도 몇 가지라 색깔이나 크기가 조금씩 다르고, 산자락뿐만 아니라 밭에서도 잘 자란 다는 것을 몰랐기 때문에 등잔 밑에서도 찾질 못했다.


여전히 몰라보는 나물 투성이다. 그렇지만 어디에서, 언제쯤, 어떤 모습으로 자라는지 알고 나면 찾을 수 있게 된다. 수많은 풀 속에서도 바로 그 나물만 보이는 눈이 생긴다.


여전히 모르겠는 세상살이도, 바로 앞 지천에서 자라고 있던 냉이를 몰라 봤던 것처럼, 어쩌면 너무 당연하고 쉬운 일일지 모른다. 알고 나면 웃음밖에 안 나오는 그런 냉이 같은 일! 몰라보고 있을 뿐이리.





#생각2. 냉이밥

'연하반밥(제철 산나물/채소 조각밥)'은 채소 공방에서 판매하는 간편식 메뉴 중 하나다. 각기 다른 식재료가 들어가는 세 종류의 조각밥으로 구성되는데, 하나하나가 특유의 맛을 가지게 만들려고 애쓴다. 하지만 소금간만 된 산나물이나 채소 하나를 밥에 곁들였을 때, '맛있다'라고 느끼기란 쉽지 않다.

식감이 아주 예민하게 발달했거나, 식재료 특유의 맛을 음미하는 식사에 익숙한 사람들은 이런 단순한 (그러나 식재료 본연의) 맛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인스턴트나 조미료에 익숙한 대부분의 현대인은 그렇지 않다. 그런 음식은 '맛이 없는' 음식이 된다. 각각의 산나물이나 채소의 맛을 최대한 느낄 수 있는 조리 방식을 우선시 어쨌든 맛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소금만이 아닌 다른 소스(된장, 간장, 고추장, 겨자 등등)를 사용하거나 함께 곁들이는 부재료를 추가해 만들고 있다.


그런데 냉이 조각밥은 그럴 필요가 없다. 밥, 소금 그리고 냉이면 된다(참기름이나 참깨를 추가할 때도 있고, 소금 대신 된장을 사용하기도 하지만 필수 사항이 아니다). 이 세 가지 만으로도 맛있다고 느끼게 한다. 냉이 같아지고 싶다. 맛을 내기 위해 다른 것들이 더 필요하지 않은, 그 자체만으로 충분한. 냉이 같은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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