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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디어가 승리하는 조직을 꿈꾸며

레이 달리오의 "원칙"을 읽으며 생각해 봅니다.

by 구형라디오

왜 우리의 생각과 의견은(아이디어) 직급의 벽에 갇히는가?


“권력은 개인의 위치가 아니라 생각에서 나온다. 누가 아이디어를 냈든 가장 좋은 아이디어가 승리한다.”


레이 달리오의 "원칙" 408페이지에 나오는 이 문장은 내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이상적이지만 낯선 이 말은 조직문화에 대한 깊은 성찰을 불러일으켰다. MBA 시절 ‘리더십과 조직관리’ 수업에서 나는 이렇게 말했다.


“주인정신은 주인이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조직을 오랫동안 경험했기에 진심이었다. 하지만 실무에서 이 말은 결코 단순하지 않았다.



주인정신의 오해


품질 부서의 선임 엔지니어로 일하던 시절, 개발 부서 수석 엔지니어가 문제 해결이 어려워지자 “Waiver(기준 완화)를 달라”라고 제안했다. 그는 말했다.


“우리는 제조회사다. 생산을 해야 하고, 고객과의 약속을 지켜야 한다. 경영진처럼 생각하고 결정하라. 경영에 기여하는 품질이 되어야 하지 않느냐.”


그 말을 듣는 순간, 거부감이 싹텄다. 일개 선임 엔지니어인 나까지 경영을 위해 품질 기준을 낮춰야 하는가? 주인정신이라는 이름이 기준을 유연하게 만드는 도구로 오용되고 있는 건 아닌가? 모두가 주인정신을 가지면, 모두가 경영자처럼 행동하면, 배가 산으로 가지 않을까?


하지만 달리오의 말을 다시 곱씹으며 깨달았다. 주인정신은 단순히 책임감을 강요하는 게 아니다. 아이디어가 핵심인 조직이라면, 직급이나 부서가 아니라 가장 좋은 아이디어가 승리하는 환경에서 주인정신은 혼란이 아니라 혁신을 낳는다. 문제는 우리의 현실이 이와 거리가 멀었다는 점이다.



현실 : 서열과 불투명함이 아이디어를 가둔다


현실을 돌아보자. 회의에서 발언량은 직급순이다. 아이디어나 비판은 직책에 따라 무게가 달라진다. 보고하고, 질문받고, 즉답하지 못하면 ‘숙제’라는 이름의 추가 업무가 주어진다. 나는 ‘숙제’라는 단어가 싫다. 학창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그 어감, 검사받는 기분이 든다. 수동적인 이 어감이 여전히 불편하다.

한 번은 신입 직원이 회의에서 신선한 아이디어를 냈다. 하지만 팀장은 “좋은데?, 다음 주까지 구체화해서 보고해”라고 답했고, 그 직원은 이후 입을 굳게 닫았다.


선배들은 말한다.

"가만히 있지 그랬어."


아이디어를 내는 건 부담이 되었고, 말 한마디가 일감으로 돌아온다.


더 심각한 문제는 투명성의 부족이다. 일부 고위 경영진의 회의는 회의록조차 작성되지 않는다. 대신 ‘Action Item’이라는 이름으로 지시가 하달된다. 심지어 회의록이 작성되더라도 수신처가 제한되거나 재전송이 금지된다. 이런 관행은 조직의 투명성을 저해하고, 아이디어가 자유롭게 흐르는 것을 막는다. 정보가 상위 직급에만 머물고, 아래로 공유되지 않으면 어떻게 모두가 주인정신을 가질 수 있을까? 이런 환경은 아이디어 성과주의와 정면으로 배치된다.

그나마 다행인 건 조직의 아래로 갈수록 자유로운 토론이 가능하다. 벽이 낮기 때문이다. 하지만 위로 올라갈수록 그 벽은 높아진다. 그 벽 위에 있는 이들은 그것이 권력이고 능력이라 여긴다. 서열이 판단력을 대체하고, 아이디어는 계급을 타고 흐른다.



브릿지워터의 교훈 : 투명성과 아이디어 성과주의


브릿지워터는 다르다. 그들은 ‘아이디어 메리토크라시’(Meritocracy of Ideas)를 시스템화했다. 모든 회의와 의사결정을 녹화하고 공유하며, 누구나 어떤 아이디어를 비판할 수 있는 투명성을 구축했다. 서열이 아니라 아이디어의 질이 우선이다. 이런 문화는 단순히 부러운 것을 넘어 존경스럽다. 그들은 단순히 좋은 사람을 뽑은 것 이상으로, 시스템과 신뢰를 구축한 결과다.


우리는 아직 그 시작점에도 서지 못했다. 하지만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변화를 위해 작은 질문을 해본다.

“어떻게 하면 좋은 아이디어가 자유롭게 흐를 수 있을까?”



변화의 첫걸음


조직이 아이디어가 승리하는 곳으로 바뀌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내가 경영진이라면 이렇게 해보겠다.


1. 문화를 선언하자

“좋은 아이디어가 승리한다”는 가치를 조직의 비전으로 내세워야 한다. 바로 실천되지 않는다. 행동이 수반되어야 한다. 그래도 말은 문화를 만드는 시발점이다. 리더가 이를 정기적인 워크숍이나 커뮤니케이션에서 반복적으로 강조하고, 실천해야 한다. 실천이 없으면 공염불이 되고 신뢰는 무너진다.


2. 투명성을 높이자

회의록을 작성하고 모든 구성원에게 공유해야 한다. 제한된 수신처나 재전송 금지 같은 관행은 폐지하고, 모든 회의 내용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예를 들어, 디지털 플랫폼을 통해 회의 기록을 저장하고 검색 가능하게 만들면, 정보의 독점이 줄어들고 아이디어 공유가 활성화된다. 무슨 국가 기밀이라도 되는 것 같은 회의 문화를 탈피해 보자.


3. 아이디어의 책임을 분산하자

아이디어를 낸 사람이 모든 책임을 지는 구조는 창의성을 억압한다. 익명 아이디어 제출 시스템을 도입하거나, 채택된 아이디어는 팀 단위로 발전시키는 프로세스를 구축해야 한다. 아이디어는 조직의 자산이지 개인의 숙제가 아니다.


4. 리더가 먼저 내려오자

리더는 촉진자여야 한다. 실패해도 괜찮다는 신뢰를 보여야 한다. 실패비용을 수업료라고 표현했던 리더가 그립니다. 리더가 자신의 아이디어가 수정되거나 반대받은 사례를 공개적으로 공유하면 열린 자세를 증명할 수 있다. 리더가 먼저 벽을 낮추면, 팀원들도 용기를 낸다.



미래 : 자부심이 흐르는 조직


아이디어가 승리하는 조직은 단순히 효율적인 조직이 아니다. 그곳에서는 구성원들이 자신의 생각이 조직을 바꾸는 힘이 될 수 있다는 자부심을 느낀다. 더 이상 ‘숙제’나 ‘Action Item’에 얽매이지 않고,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자유롭게 흐르는 환경. 브릿지워터처럼 시스템화된 문화를 꿈꾸는 것은 이상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의 손에 달렸다.


주의 : 아이디어 성과주의에 대한 이해가 없는 조직이나 상급자를 대상으로 이것을 실천하는 것에 따른 책임은 전적으로 개인에게 있습니다.(슬픈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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