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간의 스포 있음
1. 미국 언론의 집념이 대단하다 같은 단편적 감상을 늘어놓고 싶진 않다. 미국의 주요 일간지 중 하나(1872년 창간)인 보스턴 글로브에도 한국 언론에서도 보이는 관행이 간혹 보인다. 경쟁지인 보스턴 헤럴드가 사건에 관심을 보이자 기자들은 특종을 빼앗길까(업계용어론 '물 먹는다') 안절부절하고. 9.11테러가 터지자 하던 취재 전부 멈추고 테러범이 다니던 학교인 마이애미로 급파(이건 '총 맞는다'고 표현)된다. 결정적인 건 기사를 내보내기 직전에 진행된 편집회의다. 우직하게 퍼즐을 맞춰나가던 그들이 마지막에 확인한 '팩트'는 집중취재(spotlight)를 시작하기 8년 전에 핵심적인 제보를 보스턴 글로브가 받았다는 사실이었다. 스포트라이트팀의 리더 월터가 대도시부(우리로 치면 사회부인듯 하다)에 근무할 때 가볍게 처리한 기사가 그들이 수개월동안 끙끙댔던 고민의 중요한 열쇠였다.
2. 일반인들은 기자가 특종을 하는 장면을 이렇게 상상할 지도 모른다. 숨겨진 거악. 은밀한 제보자. 기자의 패기. 물론 진짜 그런 경우도 있지만(워터게이트 특종처럼) 그건 일종의 신화가 완성되고 나중에 설명을 쉽게 하기위해 만들어진 드라마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스포트라이트>의 기자들은 서두르지 않는다. 참 답답할 만큼 과거 기사에 매달린다. 그들이 다루려는 얘기는 완전히 새로운 사건은 아니었다. 30여년간 꾸준히 터지던 단발성 사건들을 하나의 실로 꿰어내는 것이었다. 그들은 엄청난 분량의 과거 기사와 공개된 자료를 읽는 것으로 취재의 첫걸음을 뗀다. 이미 언론에 자주 나오던 제보자들(우리로 치면 'OO피해자 모임')의 말을 꼼꼼히 듣는 것도 잊지 않는다. 그리고 거기서 월척을 건져낸다. 누구나 알지만 아무도 하지 않는 '기본'에서 말이다.
3. 우리가 살고있는 복잡하고 중층적인 세상은 기자가 나오는 한국영화 <내부자들><부당거래><제보자>들의 배경같지 않다. 이들 영화에서 기자가 안좋게 그려져 기분이 나쁘다는 게 아니라 참 문제가 많은 집단(언론)을 제대로 못짚어낸다는 게 아쉽다는 것이다. 이 영화들이 그리고 있는 기자들은 그저 범죄자일 뿐이지 '무능한 기자'는 솔직히 아니지 않나. '기레기'가 가장 사회에 위험할 때는 섹스파티를 즐기거나 뇌물시계 받을 때가 아니라 잘못 취재하고, 기사를 틀리게 쓸 때이다. 우리는 이미 세월호 사건에서 경험했다. 그래서 나는 <스포트라이트>가 보여주는 언론에 대한 철저한 자기반성이 부럽다. 그들이 두려워하는 건 과거 기사에 대한 '망각' 이구나. '잊지 말자'는 구호를 약속한 듯 외치는 한국 언론들은 곧 다가올 세월호 2주기엔 어떤 기사를 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