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풍경

습작 하나

by Analog


소녀는 전동차 의자 앞에 서서 스마트폰에 고개를 묻고 있었다. 남자는 고개를 든 소녀의 얼굴을 보고 싶었으나 눈길은 스마트폰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소녀는 누군가 자신을 흘끔 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만 같았다. 도착역을 알리는 전동차 안 TV를 보려 소녀가 고개를 들기 만을 소년은 바랐다. 동굴같은 터널 속을 미끄러지던 전동차가 어느 환승역에 닿았다. 소녀가 턱을 들어 올렸을 때 남자는 가느다란 눈썹과 작지만 높이 솟은 콧날이 마음에 들었다. 스크린도어가 열리고 전동차 옆구리에서 토해 낸 인파 속에 소녀의 뒷모습이 묻혔다. 가라앉은 소음이 다시 일어나면서 전동차는 육중한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차창 밖으로 단조로운 어둠이 재빠르게 지나갔다. 남자는 오전부터 자란 까슬한 수염을 멋쩍은 손길로 어루만졌다.

작가의 이전글서로 다른 '기레기' 기준 <스포트라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