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검사
1. 선릉역 1번 출구를 나오면 대치빌딩이 보인다. 이 건물은 1995년 지어지면서 삼성전자가 지분을 일부 매입해 삼성영상사업단이 입주했다. 이곳에서 삼성이 투자 결정을 내린 작품이 한국영화사의 기념비적인 <쉬리>다.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영상사업을 접은 삼성은 일부 계열사들이 이 건물을 사용하도록 했다. '삼성전자 대치빌딩'으로 불리다 삼성이 나가고 솔로몬저축은행의 본사 사옥으로 쓰인 건 2008년 쯤이다. 저축은행 사태가 터지자 솔로몬은 건물을 팔아 300억 원의 차익을 봤지만 회사를 살리진 못했다. 2014년 솔로몬의 임석 회장은 대법원에서 징역 5년을 확정받았다.
2. 지금 대치빌딩은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17층에서 19층까지 3개 층을 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며칠 전 이 빌딩에서 22시간 동안 조사를 받았다. 여기서 뱉어낸 진술들이 토대가 되어 구속영장이 청구됐다가 엊그제 기각됐다. 한 때 삼성맨들의 둥지가 총수를 구속시킬 뻔한 꼴이 됐다. 2012년 구속된 임석 회장은 올해가 만기 출소다. 검사들이 득실거린다고 생각하면 예전에 쓰던 사무실에 별로 가보고 싶진 않을 것이다. 박영수 특별검사가 임석 회장의 방을 쓰고 있고, 저축은행이 두고 간 2m 높이 대형금고가 수사자료 보관에 유용하게 쓰인다는 말도 들린다.
3. 권력엔 사람이 모인다. 특검도 권력이다. 정권에 상처 입은 사람들은 대치빌딩 주변에 날마다 모여들어 피켓을 든다. 건물 화단 종이컵에 담배꽁초를 구겨 넣으며 기자들은 대통령을 겨냥하니 마니 떠들어 댄다. 빌딩 그늘이 뒷골목으로 드러누으면 검사와 수사관들이 허기를 채우러 근처 국밥집으로 향한다. 사나운 팔자를 품은 사람이 있듯 어느 빌딩에게도 그런 게 있는 건 아닐까. 대부분의 층이 비어 있는 유령 같은 건물에서 기사를 쓰면서 나는 <쉬리>의 성공과 저축은행의 욕망을 번갈아 생각한다. 대통령이 탄핵될 지, 구속될 지 모른다. 가끔 대치빌딩을 올려다 보며 얄궂은 운명들을 생각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