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인치 클래식 돕소니언
문과 출신이지만 고등학교를 상과를 나왔기에 물리나 기계 등에 관한 지식이 전무한 상태에서 이런 취미를 이어가는 게 쉽지 않았다. 관련 책들은 어느 정도의 물리 지식을 요구했는데 물리라는 과목을 배운적이 없었다. 어설프게 교양서로 채운 지식들로는 확실한 그림이 잘 그려지지 않았으며 장비를 운용하면서 내가 돌리는 나사의 이름조차 알지 못했고 나사가 왜 그런 모양으로 거기 박혀있는지 모른 채 그저 장비를 펴고 접었다. 하지만 별을 본다는 건 무한대로 멀리 있는 빛을 모아모아 간신히 보는 일이다. 장비의 능력을 최대한으로 끌어내어 제대로 각잡고 봐야 하는 일이다. 내가 운용하는 망원경은 돕소니언이라고 불리는 뉴튼식 반사 망원경이다. 빛은 망원경의 주경으로 들어와 사경이라는 보조 미러로 반사되었다가 보조 미러에서 내가 눈을 대고 있는 아이피스로 꺾여 들어온다. 이처럼 빛이 정확한 점에 모여서 정확하게 꺾이고 정확하게 축을 따라 움직여야 내 눈에도 정확한 모양으로 보여진다. 빛이 지나가는 경로를 광축이라고 하고 이 광축을 칼같이 맞춰야 별의 모습이 한 점으로 깔끔하게 보인다. 처음엔 광축을 맞추는 일이 쉽지는 않았다. 원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상태라 더욱 어려웠다. 이제야 광축 맞추는 일에 익숙해졌지만 이런 어려움은 사실 모든 사람이 겪는 어려움은 아니고 나같은 기계치만 겪는다. 별을 보는 99.9%의 사람들이 남자들이며 남자들은 나이나 전공을 불문하고 기계나 장비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있으며 장비를 다루는 일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별 보는 취미를 가지는 것 같았다. 직접 커다란 돕소니언 망원경을 만들어 별을 보는 사람도 꽤 있었을 뿐더러 대부분 장비 조작이나 수리에 어떤 어려움도 없어보였고 오히려 즐기는 분위기. 나는 자동차에 관해서도 운전하고 기름 넣는 것 말고는 아는 게 전혀 없는 수준의 기계치라 장비에 대한 이해가 없는 상태에서 이 취미를 계속 이어갈 수 있을지 늘 고민했음에도 불구하고 무식하게 직진을 계속하며 주위에 민폐를 끼치면서 밤하늘을 보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무식한 아줌마를 기꺼이 이모저모로 도와준 많은 분들께 감사할 뿐이다.
쌍안경으로 보던 때와는 차원이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새로운 망원경 14인치 돕소니언인 토끼굴은 나를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산개성단의 아름다움은 별이 빛난다는 것이 이토록 눈부시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게 해주었다. 밤하늘의 보석이라고 표현하는 것으로는 성에 차지 않았다. 별이 공처럼 밀집되어 있는 구상성단의 별들이 하나하나 분해되어 보이는 놀라운 경험. 은하의 나선팔이 보이는 신기함. 오리온 성운의 눈부신 모습과 그 안에서 보석처럼 반짝이는 트라페지움의 별들과 때론 한 시야에 몇 개의 은하가 들어찬 아이피스를 보고 있노라면 나는 발은 지구에 붙어 있지만 머리는 우주 속을 떠다니는 느낌이었다. 저 모든 것들이 형언할 수 없는 먼 거리에서 달려온 빛의 입자들이다. 사람이 상상할 수 있는 크기의 한계는 얼마나 될까? 우주의 그 광대한 크기를 짐작이나 할 수 있을까? 과학이 알려주는 엄청난 정보들을 통해 머리로 알고 있는 우주의 스케일을 아이피스라는 작은 동그라미 안에서 확인하는 일은 때론 인지부조화를 가져오기도 했다. 왜 아니겠는가. 태양계를 생각해도 머리가 아찔할 정도의 크기인데 태양계가 한 점으로도 잘 보이지 않는 우리 은하를 상상하는 일, 우리 은하 바깥에 존재하는 다른 은하들을 눈으로 확인하는 일의 의미를 곱씹고 있다보면 나는 먼지보다 작은 존재로 흩어져버리고 그냥 없는 존재가 되어 버렸다. 스케일에 압도 당하는 경험. 그러면서 한 편으로는 이 스케일을 조망할 수 있는 존재가 인간이라는 것에 다시금 감동을 받게 된다. 내가 망원경을 통해 받는 감동의 대부분은 아름다움보다는 광막한 크기를 어림하는 일에 있다.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무엇인가를 거듭 되뇌이는 일. 내게 별 보기란 그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