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통의 시작

07 진진통과 가진통, 그 애매함의 사이

by Clair de Lune


정말 무더운 여름이었다. 에어컨을 틀어도 하나도 시원하지 않고, 배는 너무 무거워서 곧 땅으로 떨어질 것만 같았다. 출산 예정일이 8월이라고 말하면 왜 다들 안쓰러워했는지 그제야 알 것 같았다.


그래도 돌이켜 생각해보면 참 순조로운 임신 기간을 보냈다. 그동안 임당검사, 기형아검사, 태동검사, 막달검사 모두 단 한 번의 이상소견이 없었고, 그 흔한 입덧도 한번 없었다. 시아버지가 주신 용돈으로 과일 호사도 실컷 누리고, 출산으로 작별하게 된 학생들과도 잘 마무리했으며, 막달까지 몸도 별로 무겁지 않아 원 없이 놀러도 다녔다. 마음 졸일 것 하나 없는, 어쩌면 나의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다고 손꼽을 수 있는 기간 중 하나였다.


예정일을 5일 앞둔 토요일 저녁, 오랜만에 저녁으로 라면이 먹고 싶었다. 임신 기간 내내 골고루 잘 챙겨 먹고 있었고, 그다음 날인 일요일에는 모모 아빠와 한우 맛집이라고 소문난 곳에 가서 출산 전 마지막 포식을 하고 올 예정이었으므로 한 끼 정도는 대충 먹어도 되겠다 싶었다.

혼자 이른 저녁을 먹고, 새벽 1시가 넘어 퇴근하는 모모 아빠를 기다리며 TV도 보고 휴대폰도 하다가 조금 출출해져서 천도복숭아 두 개를 먹었다. 라면 한 개와 천도복숭아 두 개, 그게 나의 최후의 만찬이었다.(그 한우 맛집이란 곳은 아직까지도 가보지 못했다)


TV도 슬슬 지겨워지고 휴대폰도 할 게 없어질 때쯤 침대에 앉아 책을 읽기 시작했다. 밤 10시, 뭔가 배가 조금씩 뭉치는 느낌이 든다. 그동안 배뭉침도 없었던 터라 ‘이제 예정일이 다가와서 배뭉침 같은 것도 생기는 거구나’ 하고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런데 자정을 넘기자 내가 책을 읽었던 데를 읽고 또 읽고 있었던 걸 깨닫고 급히 진통어플을 켜서 진통 시간을 재어봤다. 정확하게 5분 간격! 아직 이슬도 안 나왔고 예정일도 4일 남았는데... 퇴근시간이 머지않은 모모 아빠에게 전화했더니 “앗... 드디어!!!! 알았어, 금방 갈게!!” 하며 떨리는 목소리로 전화를 끊었다.

모모 아빠가 집에 도착하기를 기다리며 출산가방을 현관에 꺼내어 두고 옷도 갈아입는데, 솔직히 긴가민가 하다. 진통 간격은 5분이 맞는데 진통이 이렇게 참을만하게 아프다고? 이 정도면 그냥 아침까지 참다가 병원에 가도 될 거 같은데...


집에 도착한 모모 아빠는 세상 온갖 호들갑을 다 떨며 허둥지둥한다. 그런 모모 아빠를 진정시키며 “이거 진진통 아닌 거 같아. 좀 더 있어보자.” 하고 말하고는 조금 더 있어보기로 했다. 하지만 모모 아빠는 옷도 갈아입지도 못하고 앉지도 못하고, 마냥 오줌 마려운 강아지처럼 현관 앞을 종종거린다. 나 역시 이렇게 둔하게 있다가 갑자기 집에서 출산하진 않을까 싶기도 해서 진통에 촉각을 세우며 그렇게 두 시간을 더 흘려보냈다.


그리고 새벽 세 시 반, 진통 간격이 3~4분으로 줄었다.

“이제 병원을 가는 게 맞는 거 같아.”


우리는 가방을 들고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갔다. 떨려서 운전도 못하겠다는 모모 아빠의 말에 “내가 운전할까?” 하고 물었다. 빈말이 아니라 어플에서 진통 간격이 이 정도면 병원에 가는 거라고 나와서 가긴 하지만 나는 정말 참을만했고, 사실 긴장으로 정신줄을 놓기 직전인 모모 아빠가 운전하는 것보다 내가 하는 게 차라리 나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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