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둘이었던 나는 사라졌다
갑작스러운 응급 수술에 16시간의 진통도, 출산하자마자 젖을 물리겠다는 내 굳은 의지도 모두 수포로 돌아갔다. 임신 동안 출산 과정에 대한 공부도 정말 열심히 했었다. 그런데 나에게 그 출산이란 오직 '자연분만'만을 의미했기 때문에, 제왕절개에 대해서는 수술로 아기를 ‘꺼낸다’는 것 외에는 어떤 경우에 시행되는지, 그 수술이 어떤 어마어마한 결과들을 초래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몰랐다. 알 필요가 없었다고 봐도 될 것 같다. 나는 자연분만으로 아기를 낳아서 모유수유를 최대한 오래 하는 엄마가 될 거였으니까.
눈을 떴다. 눈을 뜨니 하얀 천장이 보였다. 어디가 딱히 불편하거나 아픈 건 아니었는데 몸을 내 의지대로 움직일 수가 없었다. 마치 육체와 정신이 분리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눈을 깜빡이는 것 이외에는 고개를 돌리거나 소리 내어 누군가를 부를 수도 없었다. 아니, 내가 왜 여기 있는지 뭐 하고 있었던 건지도 기억이 안 났다. 그냥 그렇게 초점 없는 눈으로 하얀 천장만 바라보고 있었다.
“어? 깼어요?”
하는 남자 목소리가 들린다.
“... 네...”
“산모분 수술은 잘 끝났고요...”
‘아......’
그 말을 듣자 여기가 어딘지, 내가 무슨 일을 겪은 것인지 알아차렸다.
“여기 회복실에 조금 더 누워계시다가 나중에 병실로 옮겨 갈 거예요. 수술은 잘 끝났는데... 아기가 호흡이 좀 불안정해서... 좀 더 큰 병원에서 봐야 할 것 같아서, 병원 차 타고 의사 선생님 한 분이랑 아기 아빠랑 같이 대학병원으로 갔어요. 큰 문제는 아니고요... 아빠도 같이 가고 의사 선생님도 같이 갔으니까 괜찮을 거예요... 그러니까 산모분은 아무것도 걱정하지 마시고... 산모 분 회복하는데만 집중하세요.”
아직 육체를 찾지 못하고 머리 위를 빙빙 돌고만 있는 나의 정신은 그게 어떤 상황을 의미하는지 제대로 알아차리지도 못했다. 수술실에 홀로 남겨진 채 추위에 떨었던터라, 그저 당직의 이자 나의 분만의가 된 선생님의 친절한 목소리에 무슨 일이 있긴 했었으나 지금은 나도, 아기도, 다 괜찮은 거구나 하고 안도할 뿐이었다.
나는 텅 비어있었다. 내가 이대로 버려져서 내 삶이 끝난다 해도 어떤 반항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무기력한 상태였다. 더 이상 모모도 내 뱃속에 없었고 여전히 내 옆에는 나의 손을 잡아주는 이가 하나도 없었지만, 이젠 더 이상 외로움도 느껴지지 않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의사 선생님이 차마 발길을 옮기지 못하고 내 옆에 계속 서있었던지 인기척이 느껴졌다. 그 순간 드라마에서 너무 많이 봐서 내 의식 속에 박혀버린 듯한 질문 하나가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저... 그런데... 아기... 손가락 발가락은 다 있어요?”
갑작스러운 내 질문에 옆에서 느껴지던 인기척이 내 옆으로 한 걸음 가까이 다가왔고, 내 시선 안으로 얼굴하나가 나타났다.
“......? 아...! 네. 손가락, 발가락 열 개씩... 다 있어요.”
그 말을 하는 의사 선생님의 씁쓸한 표정에서 ‘산모님, 산모님이 걱정할 건 손가락 발가락 개수 같은 문제가 아니에요...’라는, 차마 그가 입 밖으로는 꺼내지 못한 말을 읽었다. 물음표들이 점점 내 머릿속을 채우기 시작했지만, 내 질문으로 인해 그가 애써 감추려고 했던 '어떤 진실'이 드러날까 봐 두려워져서 그냥 입을 꾹 다물었다.
몇 분이 흘렀는지, 몇 시간이 흘렀는지 시간감각을 느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이따금씩 간호사들이 와서 괜찮은지 물었다. 그리고 보호자가 있어야 입원실로 올라갈 수 있다며 남편 외에 다른 보호자는 없냐고 물었다. 친정과 시댁에는 출산 후에 연락드리겠다고 했기 때문에 내가 출산하러 병원에 와있는 걸 아는 가족은 아무도 없었다. 그렇게 했던 이유는 진통을 하루 넘겨서까지 하는 일이 다반사인데 그 고통을 모모의 엄마 아빠인 우리만 겪으면 됐지, 부모님들까지 힘들게 하고 싶진 않아서였다. 그냥 모든 것을 다 순조롭게 끝내고 “드디어 모모가 태어났어요! 다들 모모 보러 오세요!” 하고 기쁘게 연락드리고 싶었다.
지금 내 수중에는 휴대폰도 없었고, 설령 있다 한들 몸이 하나도 움직이지 않아서 문자를 보내거나, 전화를 할 수도 없었다. 다행히 병원에서 모모와 함께 대학병원에 가 있는 모모 아빠에게 연락을 했었던지 곧 간호사 한 명이 나에게 와서 물었다.
“산모분, 친정어머님이 오고 계시대요. 병원까지 오시는데 얼마나 걸릴까요?”
나의 친정은 우리 집과 정확하게 지도의 끝과 끝을 대각선으로 이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즉, 적어도 4시간 이상은 걸린다는 의미다. 몇 시간이 걸릴지 모르겠다는 내 말에 수속은 나중에 밟아도 되니 입원실로 올라가서 어머니를 기다리자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