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누구나 불안과 우울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을 경험한다.
우리는 건강한 사람을 심리적인 어려움이 있어도 이를 잘 극복해 내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불안하거나 우울하더라도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성실하게 수행하는 사람을 건강하다고 여깁니다. 건강한 사람은 심리적인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힘이 있으며, 불안하거나 우울한 감정을 느끼는 것은 건강하지 않다고 판단합니다. 감정을 의지와 능력으로 해결할 수 있고, 감정에 휘둘리는 것을 나약하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아무 일 없이 건강하게 지내는 사람들도 심리적인 어려움을 호소하기도 합니다. 성공적인 직장 생활을 하다가 매너리즘에 빠져 은퇴를 결심하거나 잘 닦아놓은 삶의 기반을 무너뜨리는 어리석은 선택을 하기도 합니다.
강한 사람과 건강한 사람의 의미는 다릅니다. 강한 사람은 부정적인 감정을 통제하는데 익숙한 사람을 말하며, 건강한 사람은 불안, 우울과 같은 감정을 수용할 수 있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고통스러운 경험을 할 때, 강한 사람은 이를 이겨내려고 노력하는 반면 건강한 사람은 잠시 멈춰서 그 경험이 자신에게 주는 의미를 돌아봅니다. 수용-전념 치료의 목표인 심리적 유연성은 강한 사람과 건강한 사람을 구분 짓는 핵심적인 요소이며, 불편한 생각, 감정, 그리고 기억과 싸우는데 쓴 시간과 힘을 자신의 가치에 따라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는데 쓸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흰곰은 수용-전념 치료에서 말하는 불안, 우울과 같은 부정적인 내적 경험입니다. 강한 사람은 불편한 흰곰이 찾아오면 그 흰곰이 사라져야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불안하지 않거나 우울하지 않아야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 믿음은 불안과 우울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들로 힘들어하는 스스로를 자책하게 합니다. 감정을 의지와 능력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믿어왔기 때문에 불편한 감정을 경험하는 순간 자기 자신을 따뜻하게 위로하지 못하고 나약한 사람이라고 탓하게 합니다.
이에 반해, 건강한 사람은 불안, 우울과 같은 감정을 수용할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부정적인 감정을 경험할 때, 자신을 나약하다고 탓하지 않고 스스로를 따뜻하게 보듬을 수 있습니다. 심리적으로 고통스러운 경험을 아프지 않게 받아들일 수 없음을 알고, 의지와 능력으로 감정을 통제할 수 없음을 인정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불안, 우울과 같은 감정이 고통스럽기 때문에 고통에 대한 이야기를 만들어냅니다. 논리적으로 설명될 수 있고, 그 논리가 합리적일수록 고통은 필수불가결하고 예측가능하며 미리 피할 수 있는 것이 됩니다. 스스로가 쓴 자기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강하게 믿을수록, 우리는 새로운 것을 시도하거나 낯선 사람을 만나는 것을 주저하게 됩니다. 익숙한 이야기에서 벗어나는 행동은 우리가 그토록 피하고자 한 불안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을 경험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강한 사람은 스스로가 쓴 자기 자신에 대한 이야기로 세상을 바라보지만, 건강한 사람은 그 이야기를 내려놓고 세상을 직접 마주합니다.
심리적으로 고통스러운 감정을 경험할 때, 스스로를 따뜻하게 위로하지 못하고 나약한 사람이라고 자책하는 것이 수용-전념 치료에서 말하는 고통의 핵심입니다. 부정적인 감정을 느낄 때 우리를 더 힘들게 하는 것은 자신만 그 감정으로 고통받고 있는 것 같은 소외감입니다. 수용-전념 치료에서는 불안과 우울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을 누구도 원치 않지만 사람이라면 경험할 수밖에 없는 인간공통의 경험이라고 이야기합니다(이선영, 2017).
피하고 싶지만 누구나 경험할 수밖에 없는 불안, 좌절, 절망과 같은 고통스러운 경험을 온전히 ‘수용’할 수 있도록 중심을 잡아주는 것이 이번 장에서 살펴본 ‘맥락으로서의 자기’와 ‘현재 순간에 접촉하기’입니다. ‘맥락으로서의 자기’는 불안, 우울과 같은 고통스러운 감정을 경험할 때 그 감정들이 자신의 전부가 아님을 일깨우며, ‘현재 순간에 접촉하기’는 고통을 피하기 위해 해 오던 익숙한 행동에서 벗어나 지금 여기에 온전히 머물며 새로운 선택을 할 수 있는 힘을 길러줍니다.
강한 비바람이 하늘을 지워버리지 못하는 것처럼, 나를 압도하는 감정 경험도 나 자신을 지울 순 없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나를 힘들게 하던 불안, 좌절과 같은 감정들도 다른 감정들에게 자리를 내어줍니다. 한순간 우리를 지워버릴 것 같은 감정도 그 감정을 느끼는 나를 어쩌지 못한다는 사실은 우리가 지금 이 순간에 마음을 열 수 있는 안정감을 줍니다.
‘맥락으로서의 자기’와 ‘현재 순간에 접촉하기’는 수용-전념 치료에서 이야기하는 치료의 두 번째 기둥인 ‘중심을 잡는 과정(Centered)’을 구성합니다(이선영, 2017). 더 큰 나가 되어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간 경험은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이고 그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지를 진심으로 궁금하게 합니다. 이 궁금증은 수용-전념 치료의 세 번째 기둥인 ‘관여하기(Engaged)’를 구성하는 ‘가치(Values)’와 ‘전념행동(committed Action)’으로 우리를 안내합니다.
- Luoma, Jason B. 수용전념치료 배우기. 서울: 학지사, 2012.
- Wilson, Kelly G. (수용전념치료에서 내담자와 치료자를 위한) 마음챙김. 서울: 학지사,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