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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날로그필름메이커 Mar 01. 2021

영상 제작자가 ‘클럽하우스’를 대하는 자세에 관하여

유튜브를 통한 반쪽 네트워킹의 보완재. 대체재로는?

요즘 ‘클하’하는 사람들로 내 휴대폰은 쉴새가 없다.

클럽하우스는 소리 없이 내 일상으로 어느새 깊숙이 들어와 있다. 물론 내가 아직 본격적인 ‘맛’을 본 건 아니다. 우연히 내 일과 관련된 주제의 방에 들어갔다가 청취자가 200명이 넘는 걸 보고 약간 무서운 생각이 들어 부랴부랴 나왔는데, 이 플랫폼의 파급력을 잠시나마 몸소 느끼게 된 순간이었다.


클럽하우스라는 단어를 처음 들었을 때 느껴지는 것은 폐쇄성이었다. 골프를 치러가면 클럽하우스가 있는데, 철저히 폐쇄적인 사교 놀이 클럽에 들어와 있는 기분이 들기도 하다. 이 애플리케이션이 클럽하우스라는 이름을 갖게 된 것 역시 초대장이 필요하고 기존 인맥을 활용한다는 점에서 같다고 생각한다. ‘기본적인 신분 확인이 된 사람들만 들어와서 일단 맘껏 놀아보세요’인 셈이다.


사실 클럽하우스가 매우 창의적인 플랫폼인 것은 아니다. 인스타그램과 비슷한 인맥 관리 시스템에 텍스트 기반이 아닌 음성 기반의 채팅 도구를 결합하여 들어와서 한 번 놀아보라며 좌판을 깔아줬을 뿐이다. 이렇게 며칠 간 클럽하우스를 배회하면서 떠오른 것은 작년 여름 업무차 방문했던 카자흐스탄 알마티의 어느 거리였다.


카자흐스탄과 몽골이 맞닿은 국경 지역에 일주일을 머물며 나는 그 지역을 방문한 첫 번째 아시아인으로 현지인의 융숭한 대접을 받았다. 러시아와 언어를 공유하며 문화도 함께 공유해 온 그들은 식사마다 ‘장마기간에 젖은 양말을 3일 동안 신다가 그걸 벗어 그릇에 짜 마시는 맛’인 시큼한 말 우유(?)(마유라고 해야 하나)를 견뎌야 했고, 보드카를 냉수처럼 들이켰으며 술이 다 떨어지면 저마다의 품에서 꺼낸 또 다른 보드카를 부어라 마셔라 하며 거기 머물던 내내 내 기억으로는 거의 절반 이상의 시간 동안 취해 있었던 듯하다.


그곳을 벗어나 수도 알마티에 돌아오자 중앙아시아와 동유럽의 기운이 가득한 어느 도시의 정취에 다시 한번 나는 물씬 빠져들고 말았다.

알마티에 돌아오자마자 짐을 풀고 호텔 프런트에 들러 주변에 가볼 만한 곳이 있는지를 물었고,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호텔 문 밖까지 나와 거리 한쪽을 가리키던 그 직원은 ‘후회하지 않을 것’이라며 그곳을 강력 추천했다. 그곳은 다름 아닌, 알마티의 ‘차 없는 거리’였다.


지극히 서민적이고 동유럽스러운 우울한 아파트, 건물들이 들어선 거리 두 블록쯤을 건너가자 그곳엔 과연 차 없는 거리가 멋스럽게 펼쳐져 있었다.

그리 폭이 넓지도, 길이가 길지도 않은 아담한 그 거리에 해가 지기 시작하자 온갖 건물의 조명들이 여유롭고 활기차게 거리를 밝혔다. 한쪽 놀이터에는 아이들의 까르르 웃음소리가 들리고, 인공 개울가에는 아이와 어른들이 뒤섞여 더위를 식히고 있었다. 그 거리에는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공연과 퍼포먼스들이 가득했다. 마술쇼가 벌어지기도 하고, 한쪽에선 버스킹이 한창이었다. 뒤 쪽에는 열심히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이들도 있었다. 그 거리의 사람들은 자유롭게 이곳저곳을 배회하기도 하고 또 자리를 펴고 앉아 진지하게 바라보기도 한다.


클럽하우스를 배회하고 현실 세계로 돌아오자마자 나는 바로 이 알마티의 차 없는 거리의 풍경을 떠올렸다. 클럽하우스가 바로 이곳과 무척 닮아있다고 생각했다.

코로나 19가 만들어낸 잿빛 고속도로는 여전히 길게 늘어져 있다. 그리고 이 예상치 못한 변화는 우리들 일상의 많은 것들을 뒤틀어 버렸다. 그 뒤틀어진 것들 중 가장 큰 것은 서로 연결되고픈 우리들의 욕구의 통제와 제한이 아닐까. 만나고 소통하면서 자신의 존재 의미를 찾도록 디자인된 우리는 그래서 어떤 방식으로 건 서로 네트워킹 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고야 만다.


클럽하우스는 ‘알마티의 차 없는 거리’와 더불어 또한 콘퍼런스홀을 떠올리게도 한다. 오디오 기반의 네트워킹, 메시지 서비스로서는 그리 특별할 것 없는 클럽하우스가 가진 고유한 구조라고 생각하는데 기본적으로 패널들이 구성하고 있는 무대가 있고, 그 아래에서 청중들의 객석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특정한 Room에 들어간다고 해서 모두 동일한 위치에서 둘러앉아 이야기하는 형식이 아니라는 점. 하지만, 실제 콘퍼런스에서는 요식행위에 불과했던 청중과의 대화이지만 이곳에서는 꽤 유연하게 청중과 객석의 소통이 이루어진다. 객석의 누군가가 언제든 무대 위로 올라갈 수 있고, 무대 위에서 한참을 얘기하던 누군가는 객석으로 들어가 앉아 있을 수 있다. 이러한 구조 탓일까. 정보를 얻고, 전문적인 지식을 나누고, 의견을 청취하는 툴로서는 꽤 괜찮은 플랫폼의 모양새를 취하고 있다.

일론 머스크와 블라디미르 테베브가 토론회를 클럽하우스에서 열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러한 클럽하우스만의 독특한 플랫품 구조 때문이다.


미디어들은 특정한 누군가에 의해 의제가 설정되는 것이 아닌 누구나 주제를 정해 room을 개설할 수 있고, 누구나 그 안에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구조라는 점을 들어 기존 올드미디어들의 몰락과 개개인의 미디어로서의 가치가 올라갔다고 클럽하우스를 치켜세우는 분위기이다.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린 말이다. 바로 클럽하우스의 팔로워, 팔로잉 기능 때문인듯 보인다. 이곳에서도 필연적으로 ‘셀럽’들이 존재한다. 클럽하우스에서의 활동만으로 물론 ‘인싸’가 될 수 있겠지만, 클럽하우스 안에서의 셀럽은 만들어졌다기보다 다른 곳에서 가져온 기존의 유명세를 그대로 가져온 경우가 대부분이다. 호란, 노홍철 등 연예인들 뿐 아니라 유튜브, 인스타그램 등에서 명망을 쌓은 크리에이터들도 진입하자마자 ‘인싸’가 되어 영향력을 발휘한다. 클럽하우스의 영향력도 결국 이미 충분히 영향력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만들어질 수 밖에 없다는 부분은 클럽하우스가 레거시 미디어의 영향력을 거세시키는 거대한 흐름 중 하나로 칭송받게 하기에 다소 무색한 지점이다. 인싸들이 클럽하우스를 대해야 하는 방식 또한 초기 클럽하우스를 열광하게 한 요소일 수 있다. 매우 사적이고 친밀한 라디오 청취, 혹은 전화통화의 느낌이 강한 분위기에서 셀럽들이 어떤 이미지와 느낌이 아닌 바로 내 옆에 앉아서 실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느끼면서 갖게 되는 강력한 채취 말이다. 내가 스피커로 앉아 있던 어느 방에서 객석을 둘러보니 평소 내가 존경하던 필름 메이커, 그리고 연예인이 앉아 있는 것을 보는 것은 꽤 신선한 충격이었다.


유튜브에서 매주 나는 라이브 스트리밍을 진행한다. 구독자들과 소통할 수 있는 가장 직접적인 창구라서 이 플랫폼에 대한 나름의 실험도 계속해 보고 있다. 아주 유명한 유튜브 크리에이터가 아니기 때문에 대략 실시간 시청자는 50~150명 수준으로 그때그때의 주제마다 편차가 꽤 큰 편이고, 라이브가 종료되면 전체 조회수는  600~2,000회 정도를 기록한다. 유튜브 라이브 스트리밍의 의사소통은 알다시피 꽤 단순하다. 화면 안에서 호스트가 영상과 음성으로 이야기를 하면, 구독자들은 텍스트로 응답하는 경우이다. 나 같은 경우는 그나마 ‘실시간으로’ 채팅을 읽을 수 있는 수준이지만 대형 유튜버들의 경우에는 아예 시청자들의 실시간 채팅을 확인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사라져 버린다. 의미 있는 의사소통으로서의 한 축이 사라져 버린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채널이 커지고, 시청자가 많아질수록 유튜브의 라이브 스트리밍은 소통과 대화라기보다 레거시 미디어가 갖고 있는 ‘생방송’에 더 점점 더 가까워지는 모양새를 갖출 수 밖에 없게 된다. 그러다 보니 아이러니하게도 의미 있는 ‘실시간 소통’을 위해서는 내 채널이 더 이상 성장하지 않아야 한다는 괴랄한 결론에 다다르고 만다. 유튜브에서는 또한 결코 동등할 수 없는 의사소통의 체계도 극복할 수 없다. 시청자의 피드백이란 금방 사라져 버리는 텍스트 몇 줄뿐이고 스트리밍 안에서 유의미한 의견으로 존중되기도 쉽지 않다. 이러한 갈증 때문일까. 최근 나는 다양한 시도를 유튜브 라이브 스트리밍에서 실험해 보고 있다. 랜덤 한 시청자와 전화통화를 한다던지, 줌 미팅을 개설하여 라이브 도중 누구라도 들어와 음성과 영상으로 주제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보기도 한다.


그렇다면 클럽하우스가 유튜브의 이러한 부족한 부분의 보완재로서 역할을 할 수 있을까. 내 결론은 조심스럽지만 여전히 네트워킹 툴로서의 유튜브 라이브 스트리밍의 확장성에 더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그리고 확장성의 여러 동력중 중요한 이유 중 하나로 ‘적절한 익명성’을 들고 싶다. 역설적이게도 활발한 온라인 네트워킹의 심리적인 안전장치는 ‘익명성’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조금 더 나 자신일 수 있게 하는 곳은 내가 민증 까고 실명 인증해서 들어가는 클럽하우스가 아니라 적당히 나를 숨길 수 있고 적당히 내 존재를 묻을 수 있는, 그래서 내가 누구인지 알 수 없는 것이 가져다주는 심리적인 안정이 보장된 공간이다.


클럽하우스는 시대의 욕망과 기대를 반영한 툴로서 우연히 사람들을 주목을 받고 인정을 받은 뒤,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다. 그럼에도 이 애플리케이션이 오래 지속되어 인간의 네트워킹 욕구를 견인하는 툴로 성장할지는 여전히 지켜볼 일이다. 클럽하우스가 지속 가능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중요한 게 위에서 말했던 확장성이겠다. 그리고 몇 주간 클럽하우스를 돌아다니면서 나는 애석하게도 이 확장성에 대한 그 어떤 단서도 발견하지 못했다. 그래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여기까지이다.

‘계신동안 잘 놀다 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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