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이제 부자 되는 거야?

by 아난드

날씨가 제법 추운 늦가을이었다.


나는 당시 다니던 회사에 완전히 질려버린 상태였다. 마음이 맞지 않는 사람들과 매일 일하는 것은 상당히 고역이었고, 커리어 개발을 위한 기회를 찾기가 거의 불가능한 상태였다. 병역특례로 인한 이직 제한도 해제되었기 때문에 이직을 위해 여기저기 들쑤시고 있었다. 그러던 중 외국에서 포닥을 하던 K 선배가 한국에 돌아왔다며, 같이 커피나 한잔 하자는 연락을 주었다. 석사과정을 진행하는 동안 많은 도움을 받았기도 하고, 정신적으로도 많이 의지하던 선배였기에 기쁜 마음으로 만나러 나갔다.


"나 다음 주부터 출근하기로 했어. 학교 선배들이 만든 스타트업이라던데?"


스타트업. 별로 주목하지 않았던 존재였다. 그냥 "벤처"기업에서 이름만 바꾼 거 아니야? 스타트업에 근무하고 있는 지인도 없을뿐더러, 스타트업에 근무하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학교를 다닐 때 기업가정신 강연이나 창업 지원 프로그램이 종종 있었지만, 전혀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게다가 나에게 스타트업이란 IT 분야에만 한정된 기업 형태라고만 생각했다. (그 당시에는 티맥스, 배틀그라운드, 쿠팡, 마켓컬리 등의 스타트업이 떠오르고 있었다.)

스타트업이라고 하면 사람들이 으레 떠올리는 선입견은 당시에 나도 가지고 있었다. 수평적인 관계를 추구하고, 서로를 영어 닉네임으로 부르고, 탕비실에는 과자와 음료가 늘 가득 차있고, 회의할 때 맥주를 마시고(?)... 좋지... 좋긴 한데 내 전공분야에도 스타트업이 있나?


SE-65becb07-e9a6-4c47-b83c-7f139f23ac9e.png?type=w800 마이 네임 이즈 제니. 노노~ "님"자 빼세요. (출처 : 쿠팡플레이 SNL)


K 선배의 말로는 선배의 선배가 그 기업에 재직 중인데, 입사해 달라고 계속 유혹했다고(?) 한다. 그러던 중 코로나가 터지고, 선배도 외국 생활에 부침을 많이 느껴서 귀국 겸 입사를 결심하게 됐다고 했다.


"와~ 선배 그럼 이제 부자 되는 거예요?"

"몰라 ㅋㅋ 근데 너도 이직 준비하고 있다면서? 여기도 사람 계속 뽑는다던데 한번 지원해 봐. 창립멤버가 같은 학교 선배들이니까 그들도 너 좋아할 거고. 재미없는데 가지 말고 나랑 같이 놀면서 일하자."


나는 이미 모 대기업과 면접이 진행 중이기도 했고, 당시에 다니던 중견기업에서의 여러 경험들 때문에 이번에는 반드시 대기업에 들어가리라 다짐했기 때문에 별로 흥미가 없었다. 그래서 거절하려는 찰나, 선배가 한 마디를 덧붙였다.


"게다가 면접비도 많이 준다던데? 입사 안 하더라도 그냥 돈 버는 셈 치고 다녀와."


면접비에 혹한 나는 '그래, 면접만 보고 말자'라는 생각에 지원하겠다고 대답했다. 선배와의 대화를 마무리하고 집으로 가는 길에 나는 생각에 잠겼다.


'스타트업이라... 괜찮지 않을까? 다니면서 꼰대 스트레스 안 받고, 맛있는 간식도 매일매일 먹을 수 있잖아? (당시에 다니던 회사는 코로나를 이유로 그나마 남아있던 작은 음료수도 없애버렸다.) 게다가 혹시 알아? 만약 회사가 대박이 나서 상장이 된다면... 흐흐흐...'


3315_6089_1933.png 철없는 나는 이런 미래를 꿈꿨더랬다 — 물론 사진은 AI로 생성되었다 (출처 : AI POST KOREA)


갑자기 스타트업이라는 선택지가 눈앞에 생긴 나는 조금 설레기 시작했다. 엄밀히 말하자면 아직 합격한 곳은 아무 데도 없는데도 말이다. 그렇게 들뜬 마음을 안은 채로 아직은 더 다녀야 할 회사에 출근하기 위해 잠자리에 들었다.


누가 알았겠는가? 그 면접비와 백일몽에 낚여서 내 커리어가 완전히 바뀔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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