밖에서 본 스타트업, 안에서 본 스타트업

by 아난드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어느덧 새로운 직장에도 금세 적응해 일하게 되었다. 입사 직후에는 담당할 프로젝트가 바로 배정되어서, 프로젝트 개발 현황과 목표에 대해서 안내받은 뒤 빠르게 업무에 투입되었다. 역시 스타트업 다운 빠른 진행속도였다.


스타트업의 내부자가 되어 보니, 밖에서 여러 스타트업들을 보고 어림짐작했던 것들과 실제로 스타트업에서 경험한 것에는 당연하겠지만 차이가 있었다. 내가 생각했던 것과 비슷하거나 더 좋았던 점들도 있었고, 기대했던 것에 미치지 못하거나 완전히 다른 점들도 있었다. 입사 후 단기간 내에 알게 된 것도 있지만, 꽤 오랫동안 다니면서 서서히 깨달은 사실들도 있었다.



1. 구성원 간 관계가 자유롭고 수평적이다?


대부분의 스타트업에서는 이것이 사실일 것이다. 내가 다니던 곳은 내 생각보다도 훨씬 수평적인 관계를 지향했다. 일단 호칭이 ~님으로 통일되어 있었고, 이는 C-level 및 CEO에게도 예외가 아니었다. 다만 대외적인 활동을 할 때, 외부인에게 우리 구성원을 소개할 때는 대표님, 팀장님 등의 호칭을 사용했다. 직급은 없었지만 직책은 활용되었다. (팀장, 연구소장 등) 낯간지러운 영문 닉네임은 우리 회사에서는 사용되지 않았다. 닉네임이 도입되는 이유는 심리적인 저항감을 낮추기 위한 의도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는 본인의 예쁜 한글 이름이 있는데 굳이 영문 닉네임을 추가로 만들어서 그것을 불러야 하나 싶다.


~님이든 닉네임이든, 아니면 테크노킹으로 불리든, 결국 중요한 것은 왜 그렇게 부르는가, 그를 통해 얻으려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본질일 것이다. 왜 대기업들이 스타트업을 따라 앞다투어 직급파괴를 했고, 왜 실패하고 다시금 직급(혹은 그에 준하는 것)을 만들었는가? 수평적 호칭의 목적은 보이지 않는 위계질서 파괴 → 자유로운 토론과 의견 개진 활성화 → 생산성 향상 및 업무 혁신일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본질을 잊고 단순히 직급파괴, 닉네임 도입만 가져왔을 때는 문제가 된다. 독불장군 김 부장님이 아무리 부장 직급을 떼고 '제임스'라고 불린 들, 누가 그 앞에서 감히 반대 의견을 제시하겠는가? 요는 수평적 호칭 제도는 보조적인 역할일 뿐, 구성원들이 수평적 관계를 진심으로 믿고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는 태도를 보이며, 그 문화를 해치거나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적절한 페널티가 있어야만이 진정한 업무 혁신을 가져다줄 수 있을 것이다.


82566_60329_3741.jpg 일론 머스크의 직함은 '테크노킹(Technoking of Tesla)'이다.


돌아와서, 우리 회사는 대부분의 구성원들이 비슷한 나이대를 가지고 있었고, 외부에서 영입되신 나이와 경력이 많으신 분들도 이러한 문화를 이해하고 존중하시던 분들이기 때문에 문제가 전혀 없었다. 나 역시도 이러한 문화가 마음에 들었다.


다만, 시간이 지나면서 느낀 점은 이 문화를 다른 방식으로 받아들이고 해석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수평적'이라는 단어를 '절대적 평등'으로 해석하기 때문이다. 회사는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모여 일하는 곳이고, 그러다 보니 불가피하기 의견충돌이 발생한다. 업무 방향과 R&R 설정부터 고과 평가와 인사 제도까지 모든 부분에서 의견조율이 필요하다. 문제는, 모든 구성원을 만족시킬 수 있는 해결방안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맥락에서 수평적 관계란, 안건에 있어서 모두가 아무런 제약 없이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할 수 있지만, 그 과정을 통해 결정된 내용에 대해서는 내 의견과 다르더라도 따른다는 것이다. 이것이 핵심이다. 그럼에도 본인 의견이 반영되지 못했기 때문에, 또는 다른 사람의 의견이 더 많은 가중치(weight)를 행사하기 때문에 우리는 더 이상 수평적 관계가 아니라고 오해하는 구성원이 종종 있었다.



2. 자율적으로 일하고 그에 따른 책임을 진다?


이는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고 생각한다. 스타트업에서는, 특히 초기단계의 조직일수록 매우 자율적으로 일할 수 있고, 또 그렇게 일해야만 한다. 조직도가 매우 유연한 상황이고, R&R도 엄격하게 나뉘어있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긍정적으로 바라본다면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무엇이든지 가져와서 해볼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 회사 역시 어떤 도전이든 늘 환영하는 분위기였고, 프로젝트를 위한 연구비가 필요한 경우 신속하게 집행되었다. 필요한 업무이지만 담당하는 사람이 없거나 불분명했기 때문에, 업무영역의 확장을 원한다면 언제든지 제한 없이 수행할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새로운 프로젝트를 개설하거나, 다른 프로젝트에 쉽게 참여할 수 있었고, 본인이 원하는 만큼 성과를 쌓을 수 있었다.


하지만 어두운 부분도 있었으니, 그게 바로 '책임을 진다'는 포인트다. 자율적으로 일할 수 있다는 말은, 거꾸로 말하면 원하는 만큼 프리라이딩을 할 수 있다는 뜻도 된다. 이 부분에서 문제가 생기는데 자율을 자유와 방종으로 여겨도 페널티를 주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선 정확한 성과평가가 필요하다. 각 구성원이 얼마만큼의 임팩트를 창출해 냈고, 이를 바탕으로 얼마나 기여했느냐 하는 것이 정확하게 측정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에 따른 상벌이 명확해야 한다. 자율을 십분 활용하여 회사에 크게 기여한 구성원에게는 합당한 금전적 보상이나 포지션 향상이 주어져야 하고, 자유를 즐긴 구성원에게는 경고의 메시지가 나가야 한다.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정확한 성과평가와 명확한 상벌이 없다면 자유를 즐기는 사람으로 인해 자율적으로 일하는 사람의 불꽃이 꺼지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서, 옆에서 놀고먹는 사람이 나랑 비슷한 평가를 받으면, 누가 일할 맛이 나겠는가?


이 부분에서, 슬픈 말이지만, 한국의 스타트업은 미국의 스타트업을 따라잡기 어려울 것이라 생각한다. 실리콘밸리는 주식보상(스톡옵션, RSU 등)과 해고라는 확실한 당근과 채찍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자율이 작동하는 것이다.


Screenshot 2025-08-23 at 20.36.42.png 우리는 프리라이더의 위험성을 이미 잘 안다. (출처: SNL Korea)



3. 미션을 가지고 열정적으로 일하는 사람들과 함께 한다?


이 역시도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얼마나 많은 구성원들이 미션을 가지고 열정적으로 일하느냐는 내부적 요인과 외부적 요인에 의해 결정된다. 내부적 요인이란 기업 문화와 창업 멤버다. 다시 말해 진정 가슴이 뛰는 기업 미션을 대표가 설정할 수 있는가, 미션의 사내 전파를 위해 얼마나 그리고 꾸준히 노력하는가, 그 미션을 대표와 창업 멤버 모두가 진심으로 믿고 앞장서서 실천하는가에 달려있다. 이 중 하나라도 실패한다면 구성원들은 더 이상 글자에 불과한 미션을 믿지 않을 것이고, 일에 대한 열정도 식어버릴 것이다. 결국 인간이랑 믿음으로 움직이는 동물이다.


외부적 요인이란 이런 미션에 동참할 열정적인 인재를 얼마나 확보할 수 있냐는 것이다. 이 부분은 접근 가능한 인재풀에 많이 의존할 것이다. 이를테면, 서울의 IT 스타트업이 지방의 제조 스타트업보다 인재를 확보하기 더 쉬울 것이고, 미국의 스타트업이 한국의 스타트업보다 인재를 확보하기 쉬울 것이다. 하지만 회사의 브랜드 마케팅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우리 회사는 보통 아웃바운드 채용*을 했지만, 인사팀 이메일을 홈페이지에 게시하여 이력서를 직접 받기도 했다. (*채용 담당자가 직접 후보자에게 연락하여 인재를 확보하는 방식) 한 번은 뛰어난 경력을 가진 지원자가 이메일을 통해 직접 지원한 적이 있었는데, 지원 이유를 물어보니 유망 스타트업이라는 기사를 통해 회사를 알게 되었고, 회사 웹사이트에 소개된 내용을 보고 새로운 도전을 해보고 싶어 지원했다고 한다. 이처럼 잘 관리된 기업 브랜드는 생각지도 못한 인재를 끌어당기기도 한다.


내가 다녔던 곳은 열정을 가진 구성원이 절반정도 되었던 것 같다. 돌이켜 보면, 이 정도면 상당히 높은 비율이었다고 생각한다. 슬픈 점은, 열정을 불태우고 누구보다도 더 많이 회사의 성장에 기여하기 위해 노력했던 사람들이 결국 여러 이유 때문에 열정이 꺼져버리고 회사를 나가버렸다는 점이다. 결국 나 역시도 그들처럼 열정을 하얗게 불태운 뒤에 퇴사했기 때문에... 이 부분은 뒤에서 더 자세히 다루겠다.


yuRdBdFKK1Pa8cRG1Tzh80-fVFnsoxrxc6CJnq3EyDHv5bfV-xQfJzrYD8Hq_JZKq4lDI-5qGE4pn_gLnlGKZQ.webp 그래도 후회는 없다. (출처: 내일의 죠)



4. 스타트업을 다니면 부자가 된다?


결론적으로 나는 부자가 되지 못했기 때문에 (...) 어떻게 답해야 할지 모르겠다. 내가 받았던 스톡옵션은 행사되지 못한 채 퇴사 시점에 모두 소멸되었다. 다만 그곳에 있을 때, 이미 주식을 보유한 사람들 중 당시 평가액 기준으로 상당한 부를 얻은 구성원도 있었다. (물론 상장을 해야겠지만)


한 가지 말할 수 있는 점은, 한국의 상황은 실리콘밸리에서 들려오는 내용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한국과 미국의 주식시장 규모가 크게 다르다. 한국 코스피의 시가총액은 약 2,600조 원(약 1.9조 달러)이며, 지난 10년간 연평균 약 5%의 수익률을 기록했다. 반면 미국 나스닥의 시가총액은 약 32조 달러이며 같은 기간 연평균 약 15%의 수익률을 보였다. 특히 최근 몇 년간 미국 주식시장은 빅테크 기업을 중심으로 크게 성장했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 빅테크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RSU를 통해 막대한 부를 축적할 수 있었다. 반면 한국에서 유사한 주식보상을 받는다 해도, 그와 같은 눈부신 수익률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스톡옵션*의 경우 조금 다를 수는 있다. (회사가 임직원에게 일정 기간 뒤에 미리 정해진 가격으로 자사 주식을 살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는 제도) 다만 이를 통해 부자가 되려면 최대한 이른 시기에 스타트업에 합류해야 한다. 창업멤버라면 베스트다. 투자 라운드가 진행될수록 회사의 평가 가치는 높아지기 때문에, 늦게 합류할수록 스톡옵션 행사가는 높아지고, 받을 수 있는 주식 수도 적어진다. (행사가를 그냥 대폭 낮춰서 부여해 주면 안 되냐고 할 수 있겠지만, 스톡옵션 부여는 주주총회의 승인을 받아야 하고 기존 주주(=투자자/투자사)들이 찬성할 리가 없다.) 하지만 스타트업의 이른 시기라 함은 회사가 망할 위험도 높다는 뜻이니... 결국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되시겠다.


image_readtop_2022_640248_16583107855113854.jpg 카카오뱅크와 크래프톤의 우리사주는 주가 급락으로 논란이 되었다. (출처: 매일경제)


어쩌다 보니 미국의 스타트업과 비교를 하는 부분이 많았는데, 사실 스타트업의 중심지는 (아직까지) 미국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비교가 불가피했던 것 같다. 다만 미국의 스타트업은 간접적으로 보고 들은 내용을 바탕으로 작성했기 때문에, 실제와 다른 점이 분명 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언젠간 꼭 미국의 스타트업에서도 일해보고 다시 제대로 글을 써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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