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 속에서 선택받은 재난 컨텐츠들
2020년 7월 15일.
한국 내 코로나 바이러스 확진자는 13,551명에 이르렀으며 누적 사망자는 289명에 달했다. 수도권의 38번째 사망자가 발생한 날이기도 했다. 바로 이날, 영화 <반도>가 개봉했다. 그리고 반도는 381만 명의 관객을 기록하며 손익분기점을 훌쩍 넘기는 데 성공했다. 전작인 <부산행>에 비하면 흥행이 저조하다고 볼 수도 있겠으나 영화 시장이 말라가는 코로나 시국임을 고려하면 꽤나 성공한 영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29일 개봉했던 영화 <강철비2>가 9월달 확장판까지 개봉하고서도 손익분기점보다 한참 아래인 178만 관객을 간신히 기록했던 것과는 몹시 다른 양상이다.
한데 웬일일까, 이례적인 전염병이 전세계를 휩쓰는 재난 속에서 사람들은 재난 컨텐츠를 찾고 있다. <반도>를 필두로 <#살아있다>, <킹덤2>, <그린랜드>, <인베이젼>, 드라마 <써치> 등등, 수많은 재난 소재 영화와 드라마가 시장으로 쏟아져 나왔다. 더불어 이전에 상영되었던 <감기>, <컨테이젼>, <연가시> 등의 재난물까지 다시금 수면 위로 부상하고 있다. 재난 영화에 흔히 쓰이던 자연재해나 외계의 침략을 다룬 것은 언급한 작품들 중에서 단 두 개뿐이다. 나머지는 바이러스 등의 물질로 인해 위험에 처하는 인간을 그리고 있다.
특히 <반도>, <#살아있다>, <써치>는 각각 조금씩 다르지만 바이러스로 인해 좀비가 된 인간들을 피해 도망쳐야 한다는 점에서 같다. 또한 <써치>의 경우 한국의 TV 드라마가 좀비를 소재로 사용한 적이 몹시 드물다는 면에서 몹시 도드라진다. 3월 22일 방영을 앞둔 드라마 <조선구마사> 역시 서역의 악령과 대적하는 이야기라고는 하나 티저 등을 고려할 때 그 모습이 좀비와 상당히 흡사함을 엿볼 수 있다. 최근 화제작인 <스위트홈> 역시 아포칼립스적 배경 속에서 인물들의 사투를 그리고 있다.
이러한 종류의 재난 영화는 언제나 존재해 왔지만, 그 수는 많지 않았으며 등장 시기는 대부분 한정적이었다. 대부분의 재난 및 공포 영화는 여름 개봉을 노려 왔고, 더군다나 좀비 등의 괴생명체를 다루는 작품은 간간이 할리우드에서나 수많은 예산을 쏟아부어 만들어질 뿐 국내에서 만들어진 경우는 몹시 드물었다.
그렇다면 어째서 지금일까? 어째서 지금, 이전에 만들어졌던 재난 영화들까지 주목을 받을 정도로 이러한 컨텐츠에 대한 주목도가 높아진 것일까. 당장 눈 앞에 맞닥뜨린 재난만으로도 충분히 우리는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굳이 이런 재난 컨텐츠를 선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필자는 그 이유가 다름아닌 '안도감'에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안전한 방, 혹은 영화관에 앉아 끔찍한 재난과 사투를 벌이는 스크린 속 인물들을 지켜본다. 그들이 마주한 재난은 압도적이며 도저히 저항할 수 없을 것처럼 보이지만, 인물들은 포기하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 온 힘을 다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 눈물겨운 광경에 몰입한 채 영화가 끝날 때까지는 우리의 현실을 잊을 수 있다. 잘 만들어진 영화라면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순간까지 관객들을 영화 속의 세계관에 붙들어놓을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끔찍한 재난 상황 속에서 깨어나 현실로 돌아온 관객은 이제 조금 다른 눈으로 자신의 현실을 바라볼 수 있는 힘을 얻는다. 현실이 아무리 힘들다 해도 작정하고 고난과 장애물을 들이부어 만들어낸 재난 영화보다 고통스럽기는 쉽지 않다. 그러니 영화가 끝나면 무의식적으로 영화와 같지 않은 현실에 안도하게 되는 것이다. 그 미세한 안도감은 결국 카타르시스가 되어 관객에게로 돌아온다.
특히 좀비가 등장하는 컨텐츠의 경우, 좀비는 현재 우리의 상황을 놀랍도록 은근하게 투영할 수 있는 존재이기도 하므로 그 안도감은 배가된다고 할 수 있겠다. 감염을 두려워하며 안전한 곳에 피해 있어야 하지만 그러면서도 생존을 위해 바깥으로 나서지 않을 수 없게 되는 좀비 영화의 설정들은 코로나 시국을 살아가는 우리와 무척이나 닮았다. 바이러스를 두려워하며 자가격리와 사회적 거리두기를 통해 타인과의 접촉을 최소화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먹고 살기 위해서 바깥 출입을 멈출 수는 없는 우리의 상황을 조금만 과장하면 좀비물의 시작과 딱 맞아떨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기존의 좀비물 속 좀비가 무질서 혹은 인간 자체의 어두운 면을 상징했다면, 지금의 좀비는 우리의 불안감을 상징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좀비를 통해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에 대한 우리의 불안감과 공포가 초자연적으로 시각화되어 나타나는 것이다. 실제로는 볼 수 없는 공포의 원인을 끔찍하고 과장된 모습으로 만들어내면서 영화는 공포감을 극대화하지만, 사실 이 과정을 통해 영화와 현실 사이에는 명확한 선이 그어진다. <부산행>에서 처음으로 등장하는 좀비는 평범한 풍경에 도드라지게 나타나는 이질적인 공포다. 그저 일상에 불과했던 기차의 객실은 그 순간, 현실을 벗어나 환상 세계로 진입한다. 작품들은 초반부의 공포 요소를 통해 몰입감을 불러 일으키지만, 이 몰입은 현실과는 분명한 차이를 보이는 세계로 관객을 끌어들인다.
그렇기에 관객들은 컨텐츠가 끝났을 때 주인공들의 생존에 안도하고, 자신의 현실은 영화와 같이 벼랑 끝에 몰려 있는 것은 아님에 안도한다. 그리고 안도와 긴장 해소로 인해 몰려드는 카타르시스에 만족한 관객은 다음에 볼 작품을 선택할 때, 이때의 기억에 무의식적으로나 의식적으로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재난 속에서 타인의 재난을 바라보기를 택하는 현재의 상황은 아이러니하게도 무척이나 자연스러운(?) 일이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