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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anke Jul 17. 2021

블랙 위도우, 그리고 마블 시대의
1막 종장을 맞이하며

마블의 영광은 과연 지속될 수 있을까?

아이언맨을 처음 극장에서 만났던 순간을 기억한다. 지금 다시 개봉된다 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멋진 영화였다고 기억한다. 돈만을 쫓아 달리던 군수업자가 본인의 업보를 마주하고 영웅으로 거듭나는 이야기는 유구한 영웅 서사의 골조를 영리하게 반영하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멋진 그래픽이며 기술적 상상력, 그리고 배우 본인의 매력과 함께 완벽한 조합으로 관객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필자는 마블의 코믹스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사실 우리나라의 많은 사람들이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그 낯선 마블의 이름을 사람들에게 각인시키는 데는 영화 한 편이면 충분했다. 


그 이후로도 마블은 신체적 약점으로 주눅들어 살던 바른 생활 청년이 국가를 위해 싸우는 영웅이 되는 모습을 그려 또 다른 흥행에 성공했다. 오만하고 어리석던 북유럽의 신이 무기를 잃고 땅으로 떨어져, 진정한 사랑과 수호의 의미를 깨닫는 이야기 역시 마찬가지로 인기를 끌었다. 이 모든 히어로가 총출동한 영화는 두말 할 것 없이 대박 흥행에 성공한다. 바야흐로 마블 시대의 서막이었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마블의 지난 10년 간의 여정이 <블랙 위도우>를 통해 마무리되는 순간을 보고 있다. 길고도 짧은 세월이었다. 이제 마블은 <이터널스>와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을 통해 마블 시대의 2막을 예고하고 있다. 


하지만 필자는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과연 마블의 세계관 확장은 계획대로 사랑받으며 성공할 수 있을까?


그간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던 마블의 히어로들은 완벽하지 않았기에 영웅이라 불릴 수 있었다. 토니 스타크에게는 돈과 기술만 밝히다 수많은 사람들을 전쟁에 휘말리게 했던 군수업자로서의 과거가 있었고, 캡틴 로저스에게는 신체적 한계로 무수한 괴롭힘의 대상이 되었던 과거가 있었다. 닥터 배너, 헐크는 그 특성으로 인해 오랜 시간 고통받고 숨어 지내던 과거가 있었다. 블랙 위도우, 나타샤 로마노프 역시 끔찍한 과거(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간단히 줄이겠다)를 딛고 스스로의 선택으로 쉴드의 히어로가 되었다. 닥터 스트레인지에게도 의술을 자랑거리처럼 휘두르다가 끔찍한 사고를 당했던 과거가, 스칼렛 위치 완다에게도 꼭두각시로 살다 하나뿐인 오빠를 잃은 과거가 남아 있다. 토르는 오만으로 인해 묠니르를 잃고 지구로 떨어진 바 있었다. 


설사 신이라 해도 마블의 세계관 속에서는 완벽하지 않다. 캡틴 아메리카마저도 특유의 원칙주의로 인해 답답한 상황이 자주 그려지지 않는가. 사람들은 결점 있는 히어로에게 더욱 열광했다. 완전무결하던 과거의 히어로들보다 더욱 친근하게 여겨지는 그들에게. 사랑과 인류애, 희생정신만으로 무장했던 과거의 영웅들은 이제 울고 웃고, 토라지고, 분노하고, 질투하고, 갈등한다. 그 모든 과정을 딛고 세상을 구한다. 사람들이 사랑한 건 바로 그런 인간적이면서도 결국 영웅적인, 그들의 성장 일대기였다. 


이것이 필자가 <이터널스>의 등장을 우려하는 이유다.


<이터널스>는 과거, 지구의 문명이 막 시작되던 순간 이미 완성된 문명을 가지고 있었던 외계 존재들이자 신보다도 더 신적인 존재들이다. 현재까지 공개된 것들을 고려할 때 지구 신화의 근원이 되는 존재들인 것으로 예상된다. 그들은 지구에 와서, 인간에게 '문명을 베푼다'. 물론 그들은 서로 사랑하고 갈등하고, 연대하고 싸울 것이다. 그 자체가 주는 서사의 힘이 물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그 여정이 과연 아이언맨과 캡틴 아메리카가 걸었던 길처럼 처절하고도 유쾌하며, 감동적이면서도 매력적일 수 있을까 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마블 시대 1막의 히어로들은 배우 자체의 매력뿐만 아니라 서사의 매력이 주는 힘이 엄청났다. 하지만 이미 발전된 시대에서 온, 앞선 기술을 가진 선구자들이 과연 인간이 친근하게 여길 수 있을 만한 히어로가 될 수 있을까? 필자는 이에 대해 회의적일 수밖에 없다. 


캡틴 마블은 인간과 외계 종족 크리의 특성을 모두 가졌다. 그를 통해 외계 종족이라는 특성이 그녀에게 부여하는 압도적인 힘에 개연성을 부여했다. 그녀가 가진 인간의 면모와, 과거를 잃고 살아온 시간의 고통이 그녀에게 결점을 부여하면서 캡틴 마블은 비로소 히어로가 되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막강함이 다른 마블 히어로들과의 사이에서 이질적으로 보이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캡틴 마블보다도 훨씬 강력할 것으로 보이는 이터널스는 어떻겠는가. 그들이 매력적인 결점을 가질 수나 있을까? 그들은 어벤져스가 그랬듯 다양한 갈등 과정을 거치며 의견을 모아가는 식의 'Union'을 경험하겠지만 이미 솔로 무비를 통해 캐릭터 자체의 고난과 갈등 서사를 탄탄히 쌓아왔던 어벤져스와는 출발선부터가 다르다. 관객들이 충분한 사전 정보를 가지고 어느 정도 몰입된 상태에서 어벤져스를 만난 것과는 확연한 차이점을 지닌 영화가 곧 다가올 <이터널스>다.


안타깝게도 출연 가능성이 남아 있는 1막의 마블 히어로들은 이제 몇 남지 않았다. 블랙 위도우는 이제 갓 등장한 플로렌스 퓨가 이어받는다는 것이 기정사실화되었고, 에단 호크 역시 다음 대 호크아이를 양성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어벤져스의 양대산맥인 토니 스타크와 캡틴 아메리카는 이제 없고, 미드를 통해 서사를 쌓고 있는 스칼렛 위치, 완다가 점점 더 강해지면서 닥터 스트레인지와 포지션이 어느 정도 겹치게 되었다. 캡틴 마블의 경우 솔로 무비는 단 한 편이기에 아직 서사를 쌓아가는 과정 중에 있는 셈이다. 아직 스파이더맨과 헐크가 남아 있지만, 두 사람과 함께 관계를 쌓아온 캐릭터들이 다수 사망했기 때문에 서사의 공백이 필연적일 것으로 보인다. 스파이더맨의 경우 아이언맨과의 유대감이 큰 비중으로 조명되었던 바 있으며, 헐크 역시 나타샤와의 관계가 매우 중요하게 다뤄졌었다. 새로이 등장할 캐릭터들과의 유대를 만들어가겠지만, 앞선 관계들의 빈자리를 얼마나 잘 극복할 수 있을지 아직까지는 미지수인 셈이다. 


이터널들의 능력이 기존 히어로들에 비해 다소 추상적인 형태를 띤다는 것 역시 미지의 요소다. 아이언맨은 그의 천재적인 기술과, 아크 원자로 동력을 바탕으로 발휘되는 슈트의 힘이 주 능력이었다. 캡틴 아메리카는 순수한 육체적 힘을 사용했고, 헐크 역시 비슷한 결로 초월적인 힘을 사용했다. 블랙 위도우로 활약하던 나타샤와 특수요원 에단 호크 역시 본연의 육체와 기술을 이용해 싸웠다. 닥터 스트레인지와 완다는 확연한 마법 계열의 히어로로서 공간을 넘나들거나 정신을 조종하는 등의 확실한 특색이 있는 힘을 사용했다. 하지만 이터널들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그들은 '코스믹 에너지'를 원천으로 삼는 공통점을 지니고, 그 힘을 각기 다른 방향으로 사용한다. 걸리는 점은 그 능력 중 상상하는 모든 것을 만들어낼 수 있다거나, 모든 물질을 변화시킬 수 있다거나 하는 추상적 형태가 다수 존재한다는 것, 그리고 빠른 속도의 이동이나 정신 조작, 엄청난 힘처럼 기존 히어로들의 상위 호환 능력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다. 직접 무기를 만들어 싸우는 테나(안젤리나 졸리) 정도만이 새로우면서도 구체적인 힘을 가졌다. 쉽게 상상하기 어려울 뿐더러 지나치게 강력해 완벽에 가까운 이 능력 설정이 오히려 이터널스에 독이 되는 것은 아닐지 우려스러운 부분이 아닐 수 없다. 의외로 사람들은 완벽하고 쓰러뜨릴 수 없는 영웅보다 한 번 쓰러져도 포기하지 않고 덤벼드는 영웅을 더 선호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오늘 필자는 <블랙 위도우>를 감상하고 돌아왔다(시간대를 운 좋게 잘 잡은 덕분에 같은 영화관에 일행을 제외하고는 단 세 사람뿐이었다). 언제나처럼 마블다운 멋진 히어로 무비였다. 하지만 영화가 주는 여운이 끝난 순간, 이제 차세대 블랙 위도우에 대해, 그리고 블랙 위도우에 등장했던 레드 가디언의 캐릭터성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플로렌스 퓨가 열연한 옐레나의 경우, 길러지며 세뇌당해 악행에 가담했다가 스스로 세뇌를 깨고 탈출한 나타샤와는 달리 화학적으로 세뇌당해 행동을 통제당하고 조종당해 온 인물이다. 세뇌의 결과라고는 해도 드레이코프의 딸을 희생시키는 선택을 내리는 등 의지를 가지고 행동한 적이 꽤 있는 나타샤에 비해 조금 더 쉽게 면죄부를 얻을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고 볼 수 있겠다. 나타샤가 아이언맨 시리즈와 어벤져스 시리즈에 꾸준히 등장하며 개인의 고뇌, 고통을 빌드업해 온 것과는 확연히 다른 전개다. 물론 블랙 위도우 포지션의 빈자리를 빠르게 채우기 위한 선택이리라고 생각하지만, 배우의 매력적인 캐릭터 소화력과는 별개로 서사에 아쉬운 점이 있음은 어쩔 수 없는 지점일 터다. 이제 옐레나는 과거에 대한 죄책감과 속죄에 대한 염원보다는 언니의 죽음에 대한 복수심으로 움직이는 캐릭터가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죄책감, 의무감, 그럼에도 지켜야 하는 정의와 가족을 가지고 싶다는 소망, 전우애까지 다양하고 폭넓은 감정선을 가졌던 나타샤 로마노프 캐릭터에 비해 평면적으로 나타날 위험성이 다분하다는 의미다.


레드 가디언의 경우는 이번 영화에서 유일하게 아쉬웠던 캐릭터다. 구시대의 이념에 매여 있는 그는 수용소에서 전투 감각도 잃고, 몸도 관리되지 않아 엉망인 상태로 등장한다. 더군다나 나타샤와 옐레나에게는 씻을 수 없을 정도로 큰 죄를 지었는데도(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 생략한다) 본인의 자존심 때문인지 절체절명의 순간이 오기 전까지는 제대로 사과조차 하지 못한 채 본인의 신변잡기에 대한 횡설수설로 화제를 회피하고는 한다. 어쩐지 요즘 사람들이 꼰대라고 부르는 구시대의 백인 가장들의 모습을 그대로 담습하고 있는 것 같지 않은가? 집에 와서는 지루하다는 불평만 늘어놓았다는 옐레나의 묘사, 자식들에게 나는 최선을 다했노라 변명으로 일관하는 모습, 제가 가장 대단한 사람인 양 매사 허세를 앞세우는 것까지. 그는 분명 지나치게 무거워질 수 있는 영화의 분위기를 적재적소에 환기하는 역할을 잘 수행했다. 하지만 캐릭터의 조형 자체가 지나치게 매력적이지 못하다. 


사실 아이언맨의 캐릭터는 플레이보이를, 캡틴 아메리카의 캐릭터는 힘에 컴플렉스를 지닌 남자를, 토르나 닥터 스트레인지의 캐릭터는 오만한 사람들을 어느 정도 대변한다는 게 필자의 관점이다. 그리고 레드 가디언의 캐릭터는 점점 사회의 주류에서 밀려나다 못해 웃음거리가 되어가는 구시대의 가부장적 남성들을 대변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선을 다했다, 혹은 그저 말하기에 서툴 뿐이다 정도의 이유를 달아 어느 정도 정당화의 명분을 부여한다. 확실히 레드 가디언은 5, 60대의 백인 남성들이 꽤나 매력적으로 느낄 만한 인물이다. 흔한 아저씨처럼 몸매도 망가졌고, 매번 라떼는 말이야 따위를 일삼으면서도 여전히 싸울 힘은 차고 넘치도록 남아 있으니. 앞서 언급한 아이언맨, 캡틴 아메리카, 토르, 닥터 스트레인지와 같은 자아 성찰과 반성, 그에 따른 고통은 전혀 겪지 않은 채로 말이다.  그리고 플로렌스 퓨가 계속 위도우로서 등장하는 이상, 레드 가디언 역시 일회성 출연에만 그치지는 않을 것이다. 캡틴 아메리카와의 대척점에 대해 계속 언급되었으니, 훈련을 통해 감각을 되찾고 그 비슷한 포지션으로 기능할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 전무후무한 아재 영웅이 되는 것이다. 


그 나이대의 남성 영웅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뜻은 아니다. 영웅이라면 다양한 나잇대와 성별을 대변하는 편이 모범적인 법이니. 하지만 위에서 언급한 특성을 모두 가진 영웅 캐릭터는 조금 별개의 이야기다. 개중 하나만 가지고 있어도 결점 있는 영웅의 조건은 충족하고도 남을 텐데, 지나치게 사실적인 꼰대 아재 캐릭터를 만들어내지 않았는가. 그리고 그 사실적인 캐릭터에게 비사실적인 유머 감각을 부여해 문제적인 캐릭터를 충분히 미화하고 있다. 그는 딸들에게 빨리 사과하지 못한 것을 후회할지도 모르겠지만, 글쎄, 그 후회는 나타샤와 옐레나의 것처럼 처절한 종류의 것은 아닐 것이다. PC를 표방하는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와 어떤 면에서는 가장 상충되는 캐릭터인 것이다. 이런 가부장적 남성에 의해 상처받은 아이들은 남녀를 가리지 않고 차고 넘친다. 물론 그들의 아내들 역시 고난의 세월을 겪어왔으리라. 레드 가디언의 캐릭터는 그 모든 고통들에 대해 면죄부를 줄 수 있는 고뇌며 죄책감을 충분히 보여 주지 못한다. 만일 그저 분위기 환기 용도의 일회성, 평면적 캐릭터로 조형된 것이라면 그 역시 충분히 문제될 만한 일일 것이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새로운 장을 열 것으로 소개된 <블랙 위도우>에 출연하기에는 아쉬운 점이 지나치게 많았다는 의미다. 


레드 가디언 캐릭터 덕분에 이제 필자는 마블이 표명한 PC 자체에 대해서도 의문을 품게 되었다. 단순히 다양한 배우를 캐스팅하는 것만으로 Political Correctness를 제대로 지킬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레드 가디언과 같은 캐릭터를 만들어낸 마블이 과연 제대로 다양성의 가치를 담은 히어로 무비를 계속 찍을 수 있을까? 


과거에는 아무렇지 않게 여겼던 것들이 조금씩 눈에 들어오고, 세상 여러 곳에서 생각지도 못한 곳에 대한 비판이 들려오는 시대를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필자는 히어로 무비 자체가 그런 생각지도 못한 목소리들을 대변하는 장르라고 생각한다. 약점이 있어도, 아픈 과거가 있어도, 인간은 얼마든지 일어나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메시지를 가장 강력히 전달하는 장르가 히어로물이다. 대신 그만큼 조심해서 다뤄져야 하는 장르 역시 히어로물이다. 다른 캐릭터의 도덕적 해이보다 히어로 캐릭터의 도덕적 해이는 더욱 문제가 되며 파급력 역시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새로운 시작은 지금으로서는 아쉽다. 블랙 위도우 포지션에 멋지게 서사를 부여하고 캐릭터에 대한 성적 대상화 문제를 떼어내는 성공했을지언정, 새로운 문제적 캐릭터를 등장시켰기 때문이다. 


게다가, 곧 등장할 <이터널스>에는 필연적으로 전 세계의 신화적 요소들이 등장할 수밖에 없다. 인류의 문명은 이터널에게서 시작되었다는 것이 기본 설정이기 때문이다. 이 설정의 시혜적 느낌과는 별개로, 타 국가 혹은 민족 신화의 왜곡 역시 할리우드 영화의 고질적인 문제임에 주의해야 할 것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다양성의 가치는 이런 고유한 이야기들을 왜곡하지 않는 것 역시 포함한다. 메소포타미아의 영웅, 아랍 계열의 인종이었을 길가메시 캐릭터에 완전한 황인종인 마동석 배우가 캐스팅된 것부터 왜곡의 소지가 있음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한국계 배우가 할리우드에서 활약하는 모습이 인상적이고 기쁜 것과는 별개로 말이다).


마블은 끊임없는 자기 검열과, 다양성을 향한 시도를 거듭하며 시네마틱 유니버스 1막을 나름 성공적으로 마쳤다. 하지만 그렇게 성장해온 시리즈에 대한 자부심 때문에 지난했던 자기 성찰의 과정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인종적 다양성만 믿고 안일한 태도를 유지하다가는 재미와 도덕성 모두 놓치는 최악의 결과를 맞이하게 될지도 모른다. 당장 레드 가디언 캐릭터만 해도 관객들의 몰입을 방해하고 있지 않은가. 부디 <이터널스>에서 마동석 배우가 레드 가디언처럼 그려지지 않기를, 필자의 이 긴 우려가 우스갯소리가 되어버리도록 해 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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