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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나 Nov 17. 2021

숲의 예술가를 소개합니다

그러니 나는 계속해서 그리고 써야겠다.

 

요즘 가장 크게 웃었을 때가 언제인가?


숲에는 읽을거리가 비치된 도서 함과 함께 예술가들의 작품이 설치되어 있다. 미술 작품이지만, 자연의 재료로 만들어져 있어 이질적이지 않다. 제각각의 모양으로 깎이고 쪼개진 돌덩이들이 모여 하나의 작품을 이룬다. 멀찍이 떨어져 눈으로만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작품을 직접 만져보고 느껴볼 수 있다. 그중에 평평하고 낮은 돌덩이들은 숲을 찾아오는 이들에게 잠시 숨을 돌릴 수 있는 쉼터가 되어주기도 한다.

 하지만 숲에서는 예기치 못한 곳에서 새로운 예술 작품을 만나기도 한다. 자연의 예술가들이 만들어 낸 멋진 작품들이 곳곳에 숨어있다. 숲을 걸으며 틈틈이 보석처럼 발굴해낸 예술가와 작품들을 소개해보려고 한다.


 가장 먼저 소개할 예술가는 범상치 않은 실력을 갖춘 건축가다. 이분은 평범함을 거부하고 독창적으로 활동하신다. 건물을 단단하게 지지해줄 땅에 집을 짓지 않고, 하늘에 닿을 듯 높은 곳, 위태롭고 아슬아슬한 자리를 골라 집을 짓는다. 나무 꼭대기, 지붕 아래, 전봇대 등 어지간해서는 이분의 작품을 가까이서 보기가 쉽지 않은데 곰솔누리숲에서는 가능하다. 이 숲에서 저 숲으로 넘어가는 길, 이 동네에서 저 동네로 건너가는 다리 아래로 가로수들을 내려다볼 수 있기 때문이다. 평소에는 보려야 볼 수 없었던 이분의 작품을 조금이나마 자세히 볼 수 있다.

 곰솔누리숲에서 만난 작품은 유독 특별했다. 널찍한 잎사귀가 우거진 자리가 아닌 뾰족하고 날카로운 소나무 잎과 가지 사이에 작품을 만드셨기 때문이다. 멀리서 볼 땐 기다란 나뭇가지에 뭉텅이가 달려 가지에 뭐가 걸렸나 싶었다. 그런데 다가가서 보니 가운데가 움푹 팬 도넛 모양으로 나뭇가지들이 켜켜이 쌓여있었다.

 ‘아, 그분의 작품이구나!’ 조금만 바람이 세게 불면 금방이라도 허물어져 버릴 것만 같은데 웬만한 강풍에도 끄떡없다. 이 작품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자주 오르고 내렸을까? 일부러 세찬 바람이 부는 날을 택해 모진 환경에도 견딜 수 있는 작품을 만드신다고 한다. 작품이면서도 그에게는 식구들을 위한 보금자리다. 안전하고 아늑한 둥지를 꿈꾸며 부지런히 움직였을 그의 시간을 가늠해본다. 특별히 소나무 가지 사이에 자리를 잡은 것도 천적들의 눈에 띄지 않는 최적의 조건을 찾으려는 노력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싶다.


 다음으로 소개할 예술가는 숲의 숨겨진 선을 보여주는 화가다. 섬세하면서도 과감한 터치로 초록 잎에 그림을 그린다. 잎이 가지고 있는 줄기와 잎맥은 살려두고 여백에 자신만의 감각을 더한다. 사각사각 서걱서걱 작업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은 크기도 모양도 제각각인 다양한 무늬까지! 작가님의 작품은 패턴과 디테일을 파헤치는 재미가 있다. 날씨 요정과의 협업으로 알록달록 색감이 더해지면 더욱더 다채로워진다.

 신기한 건 작가님께서는 잎의 줄기와 맥은 건드리지 않으신다는 거다. 개인적인 취향이실까? 작가마다 선호하는 도구와 소재가 다르니까. 작가님께서는 거칠고 질긴 종이보다 부드럽고 연한 종이를 좋아하시는 듯하다. 낯을 많이 가리시는지 좀처럼 작업하시는 모습을 보긴 어렵지만, 시나브로 활동하시면서 깜짝 선물처럼 작품을 보여주신다.


 그리고 숲에는 털털하지만, 감각적인 플로리스트도 있다. 홀로 삐죽 솟아 나온 대왕참나무 가지를 건너편으로 엮어서 간단하지만 근사한 갈란드를 만들어 놓았다. 화려하고 예쁜 아이들을 엮은 갈란드도 아름답지만, 하나의 소재로 무심한 듯 툭 내려놓은 대왕참나무 갈란드도 멋스럽다.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마르고 뒤틀리는 모습이 자연스럽게 달려있을 숲의 갈란드.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담을 수 있어 다행이다.


 마지막으로 내가 가장 애정하는 작품, 숲의 모빌.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취향 리스트에 ‘모빌’이 있다. 가만히 앉아 모빌의 움직임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차분해진다. 어렸을 적 잠드는 걸 무서워하는 나를 위해 매일 밤 심장 언저리를 두드려주던 엄마의 손길처럼 모빌의 고요한 토닥거림은 들썩이는 심장을 달래준다. 숲을 걷다가 그런 리듬을 닮은 자연의 모빌을 발견했다. 잎사귀는 가볍게 팔랑, 열매는 경쾌하게 통통, 꽃송이는 우아하게 살랑. 잎사귀와 열매, 꽃송이가 저마다의 몸짓으로 어우러진다. 가느다란 줄기가 그들을 단단하게 엮어 마음껏 춤출 수 있게 해준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자유롭게 펼쳐나갈 수 있게 버팀목이 되어주는 엄마처럼.


 묵묵히 자기의 자리에서 자기만의 방식으로 아름다움을 쌓고 표현해내는 숲의 예술가들을 보며 내 길을 다시금 매만져본다. 어떻게 하면 더 빨리, 더 많은 사람에게 닿을 수 있을까 조급해하며 정작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는데, 지금 내 앞에 멋진 자연의 예술가들에게서 답을 얻었다. 그건 전혀 새로운 답은 아니었다. 언제나처럼 외치는 ‘속도보다는 방향’이었다 진심으로, 정성을 다해 나의 것을 가꾸고 다듬다 보면 결국엔 사람들의 마음에 닿게 된다는 걸. 여태껏 스쳐 지나갔던 자연의 예술 세계가 이제 와 내게 다다른 것처럼 준비와 기회가 만나는 지점이 올 거라는 걸. 그러니 나는 계속해서 그리고 써야겠다. 나의 속도와 방향으로 나아가 그 순간을 맞이할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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