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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나 Dec 21. 2021

바다를 품은 또 하나의 숲

갯골생태공원 소금창고로 첫 출근하는 날

갯골생태공원으로 첫 출근 하는 날. 곰솔누리숲과는 완전히 다른 길로 간다. 집에서 전철역까지 가서 전철을 타고 시청역에서 내린다. 시청역에서 다시 마을버스를 타고 아파트 단지를 돌고 돌아 도착하는 종점이 갯골생태공원이다. 출근길이 다소 복잡해졌지만 걸리는 시간은 30분 정도 단축되었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펼쳐지는 탁 트인 전경에 눈이 번쩍 뜨였다. 시원한 바람이 뭉텅이처럼 불어와 온몸을 정통으로 통과해 속이 뻥 뚫리는 것 같았다. 곰솔누리숲과는 전혀 다른 풍경에 조금 생소했지만, 덕분에 기분 좋은 긴장감 들어 심장이 살짝 빠르게 뛰었다.


초행길이라 부지런히 나왔더니 출근 시간까지 조금 여유가 생겼다. 소금창고로 가기 전에 갯골생태공원 이곳저곳을 둘러보기로 한다. 골짜기 모양의 갯벌이라 갯골이라고 한다. 전 세계적으로 드문 내만 갯벌이다. 일제 강점기부터 1996년까지 염전이었던 땅이 지금은 생태공원으로 조성되었다. 일제에 의해 염전으로 개발되었고 생산된 소금은 전량 일본으로 수탈되었던 모진 역사를 딛고 오늘날에 시민들을 위한 숲을 이루게 되었다. 바다를 품은 또 하나의 숲.


갯벌의 아름다운 단풍, 칠면초

 갯골에 들어서자마자 황홀한 붉은 물결이 밀물처럼 발끝까지 쏟아진다. 그저 붉은 빛이라고 하기에는 뭔가 아쉬운 아주 오묘한 빛깔이다. 핑크 뮬리보다는 짙고 단단한데, 단풍잎보다는 화사하고 경쾌한 색이다. 가까이서 보니 가느다란 줄기에 작은 알맹이들이 오돌토돌 붙어 있다. 생전 처음 보는 자태에 호기심이 마구 샘솟는다. 


 너 이름이 뭐니? 이 아름다운 녀석의 정체는 무얼까? 친절하게도 아래쪽에 명패가 붙어 있다. 칠면초. 칠면조 아니고 칠면초! 바닷물을 먹고 자라는 염생식물이다. 염전이었던 땅이기에 자랄 수 있는 식물인 것이다. 어릴 때는 잎과 열매가 녹색을 띠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자홍색으로 물든다. 한데 모여 뿜어내는 빛깔이 너무 아름답다. 빨강, 진분홍, 자주, 보라, 진빨강 등 붉은 계열의 색을 모두 찾을 수 있을 것만 같다. 산과 들에 단풍이 있다면 바다에는 칠면초가 있다.



반짝반짝 바다별, 나문재

칠면초와 함께 갯골생태공원을 붉게 물들이는 또 다른 식물이 있다. 바다의 별, 나문재! 열매가 별 모양으로 총총 빛난다. 초록빛으로 여문 열매는 햇살을 자신의 품으로 끌어안으며 점점 햇빛의 색을 닮아간다. 알록달록 별사탕 같은 나문재. 하늘의 별을 보며 희망을 이야기하고 소원을 빌 듯, 씨앗을 품은 바다의 별은 또 다른 희망을 뿌려주겠지.


소래염전 시절의 모습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소금창고

 신나게 구경하다 보니 어느덧 소금창고 근처에 다다랐다. 앞으로 내가 근무할 장소다. 옛 모습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곳. 지금은 갯골과 소래 염전의 역사를 기억하고 알리는 공간으로 사용되고 있다. 말 그대로 염전에서 거두어들인 소금을 보관하는 창고다. 소금창고를 빙 둘러서 간수가 빠져나가는 물길이 있는데, 그 곁으로 어여쁜 보랏빛들이 실랑이며 내 발걸음을 이끌었다. 홀린 듯 그 앞으로 걸어갔다.


 휴대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하니 5분 정도는 괜찮을 것 같다. 후딱 이 녀석들만 보고 가자! 갯골에서 만나는 첫 꽃! 생김새는 국화꽃을 닮았다. 꽃잎의 연보랏빛이 참 곱다. 앱으로 찾아보니 갯개미취라고 뜬다. 갯벌에서 자라는 개미취여서 갯개미취란다. 국화과에 속하는 식물로 연보라 부분은 설상화, 안쪽에 노란색 부분은 관상화다. 

 식물의 세계는 정말 국화과가 지배하는 걸까? 요즘 만나고 그리는 소재가 국화과인 데다 설상화와 관상화로 이루어져 있어 덕분에 실컷 관찰하고 공부하고 있다. 설상화는 ‘가짜 꽃’이라고도 하는데 흔히 우리가 꽃잎으로 보는 부분이다. 혀모양처럼 생겨서 혀꽃, 설상화라 부른다. 꽃의 중앙에 씨앗처럼 보이는 부분이 ‘진짜 꽃’이다. 기다란 기둥 모양이라 관상화라고 하며, 이곳에서 수정이 이뤄져 씨앗을 맺는다. 관상화가 크기가 너무 작아서 눈에 잘 띄지 않기 때문에 크고 화려한 색감의 설상화가 발달하여 벌과 나비를 끌어들인다. 그렇기에 우리가 보는 국화 한 송이, 갯개미취 한 송이는 실제로는 한 송이가 아니라 한 다발이다.


 또, 또! 식물을 들여다보면 이렇게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시간을 확인하니 출근 시간 1분 전이다. 후다닥 소금창고 입구를 찾아 뛰어간다. 남은 계절은 여기서 또 어떤 순간들을 채워갈까.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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