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6.07.
오랜만에 만난 지인은 나를 가만히 바라보더니 “지은 씨, 말이 정말 많아졌다. 전에는 주로 듣는 타입이었던 것 같은데”라고 말했다. 이를 모르지 않았다. 언젠가부터 나는 말을 멈출 줄 몰랐고, 대화의 대부분을 내 이야기로 이끌어갔다. 평소에 발화가 많은 사람, 무조건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싶어 하는 자기중심적인 사람을 ‘피곤하다’고 느끼고 피하고 다녔는데, 내가 그 당사자가 되어버렸다.
나는 내가 왜 이렇게 말을 쏟아내는지 알고 있다. 외로워서다. 내가 운만 떼어도 “이 말 하려는 거지?”라고 단박에 알아듣던 단짝친구가 이제 내 이야기를 들어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는 그에게 닿지 못하는 말들이 자꾸만 흘러넘쳐 입 밖으로 쏟아지는 것이다.
지인은 ‘정신과에 가서 상담을 받아보라’고 권유했다. 너무 큰일을 연거푸 겪었으니까 마음이 다치지 않았는지 살펴보라는 말이었다. 아는 누구는 아무 증상도 없었는데 검사 결과 공황 진단을 받았다는 말과 함께. 안 그래도 요즘 편집하고 있는 책에서 정신과에 대한 찬양이 나오는 차라 마음이 혹했다. 그가 추천하는 병원의 주소를 받아 전화를 걸고 예약을 잡았다.
처음 병원에 갔을 때만 해도 ‘아프지도 않은데 괜히 병원 갔다가 약만 타오고 돈만 버리는 거 아닌가’라는 생각으로 가득했다. 생판 모르는 남 앞에서 내 이야기가 쉽게 나올까 싶었다. ‘나는 아마 의사를 저자 만나듯이 대하지 않을까’ 예상하며 진료실 문을 열었다. 헌데 내 질문지를 받아본 의사 선생의 “많이 힘드셨겠어요” 한마디에 갑자기 수도꼭지 튼 것처럼 눈물이 쏟아졌고, 나는 원 상담 시간인 15분을 훌쩍 넘겨 거의 1시간 가까이 울다가 나왔다.
“그때 어떤 기분이셨어요?”
그는 자꾸 이렇게 물었다. 그 질문이 낯설었는데, 왜냐하면 지금까지 내게 이렇게 물어본 사람은 없었기 때문이다. 모두가 내게 “힘내”, “기운 내”, “산 사람은 살아야지”, “네가 환희 몫까지 살아야 해”. “네가 울면 환희가 슬퍼서 떠나지 못할 거야” 같은 말들을 수도 없이 건네었을 뿐, “지은 씨 마음은 어떠했어요?”라는 질문은 들어본 적이 없음을 깨달았다.
의사는 내 이야기들을 가만히 듣다가 “자신에게 주어진 의무와 역할에 최선을 다하느라 정작 본인은 제대로 슬퍼하지 못하신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더불어 내게 아직 애도를 시작도 하지 못하신 것 같다는 말도 덧붙였다. 아마도 내 주변을 돌보느라 정작 나를 제대로 돌보지 못했던 게 아닌가 싶다.
더불어 의사는 내게 “슬픔을 겪었다고 해서 모두가 병원에 올 필요는 없어요”라는 말도 건네었다. 잠도 잘 자고, 우울이나 분노 같은 감정조절이 안 되는 상태도 아니니 아프면 그때 도움을 요청해도 늦지 않을 것 같다는 말과 함께. 다만 그는 지금 내가 의지할 곳이나 힘듦을 표현할 만한 곳이 없어 보인다고, 혹시 자신이 애도의 과정을 도와줬으면 싶다면 병원의 도움을 받아보라고 권했다. 그 말이 이상하게 위안이 되었다. 무조건 약을 먹으라고 건네지 않고 나보고 치료를 선택하라고 칼자루를 쥐어주는 그 배려에 ‘이분과 조금 더 함께해보아야겠다’고 결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