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9.05.
내일이면 네가 무지개다리 건너편으로 떠난 지 1년이 된다. 내일은 출근하느라 가보지 못할 것 같아서, 일요일인 오늘 너를 뿌려준 뒷산에 다녀왔다. 그곳 바위 한쪽에 네 사진을 올려두고, 나뭇잎 하나를 뜯어와 츄르도 놓아주었다. 맛있겠지. 너 이거 되게 좋아했잖아. 평소에는 어쩌다 한 번 뒷산에 올라와 남들 보기 전에 몰래 인사만 하고 내려왔는데, 오늘은 특별한 날이니까, 남들 신경 안 쓰고 쭈그려 앉아 작은 기도를 올려주고 왔다. 기도 내용은 매번 비슷하다. 이제 더는 아프지도 않고 힘들지도 않은 그곳에서 형아와 마음껏 뛰어놀고 있어. 다시 만날 때는 너를 금방 알아볼게.
너를 떠나보낼 즈음 나는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어서, 네게 제대로 인사도 못 하고 보낸 것 같아서 그게 참 미안하다. 떠나보내고 나서라도 마음껏 너를 그리워하고 슬퍼해주었어야 했는데, 내 남편 떠나보내는 준비를 하느라 너를 향한 애도를 뒷전으로 미루어두었다. 그것도 참 미안하다. 지금도 네 생각을 많이 하지 못한다.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그 마음 끝에는 늘 이환희가 있으니까. 오늘 아침에도 나는 너보다 반려인 생각을 먼저 했다. 이러면 안 되는데. 이환희야 나 아니어도 생각해주는 사람이 너무 많지만 너는 나 아니면 없잖아. 너처럼 예쁘고 맑은 애가 내 곁에 있었다는 거, 나밖에 모르는데. 내가 챙겨주어야 하는데.
안다. 너는 내가 미안해하는 것들에 하나도 신경 쓰지 않겠지. 언제나 웅이만 챙기던 나인데도 불평 한 번 내보인 적 없으니까. 나는 너를 평생 2등으로 대했는데, 죽고 나서까지 너를 2등 취급하고 있다.
알고 있지? 얼마 전에 웅이에게도 동생이 생겼어. 이름은 꿍이야. 이 아이가 네 그릇과 네 화장실을 사용하고, 네가 남기고 간 간식들을 먹고 있어. 꿍이의 특정 모습을 볼 때마다 네 생각이 언뜻 스쳐 지나가. 퇴근한 나를 반기느라 문 앞까지 총총거리며 마중 나올 때, 누나가 있는 데라면 어디든 따라다닐 때, 장난감에 집요하게 달려드느라 웅이는 한 발자국도 못 다가오게 할 때 ‘리아랑 되게 비슷하네’ 생각하곤 해. 반대로 종일 안고 있어도 도망가지 않을 때, 모래 장난에 사족을 못 쓸 때, 하지 말라고 해도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모습 보면 ‘리아랑은 정말 다르다’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꼭 전 애인과 현 애인을 속으로 비교하는 못된 버릇 닮았지.
나는 꿍이한테 무언가 좋은 걸 해줄 때마다 네 생각이 나. 네게도 사랑한다는 말을 좀더 많이 해줄걸. 아니, 말만 하지 말고 정말 온몸으로 사랑해줄걸. 많이 만져주고 예뻐해줄걸. 예쁘다는 말 아끼지 말걸. 그런 생각들이 끊임없이 떠올라. 그때마다 나는 왠지 모를 죄책감을 느끼곤 했어.
얼마 전 유퀴즈에 나온 한 배우가 무지개다리를 건넌 반려견에게 이런 말을 남기더라. “너한테 못 해준 걸 지금 곰자한테 다 해주려고 노력하고 있어”라고. 그 말을 듣고 조금 놀랐다. 그래도 되나? 나 너한테 못해준 걸 꿍이한테 해주어도 되는 건가? 네가 누나 뺏겼다고 서운해하지는 않을까?
근데 곰곰 생각해보니 그 배우 말이 맞다. 네게 못해주어 미안해하던 마음을 품는다고 네가 돌아오는 것도 아니고, 너한테 미안하다는 이유로 꿍이한테 마음을 아끼면 나는 또 꿍이를 보내면서 다른 미안함을 품어야 될 테니까. 있는 동안 최선을 다해 아껴주다 보면 언젠가 이별의 날이 올 테고, 또 더 시간이 지나서 나도 네가 있는 곳으로 가게 되고 그런 거겠지. 그때 되면 여기서 못해주었던 것들 다 해줄게. 그때 우리 그 어떤 장애도 족쇄도 없는 그곳에서 마음껏 뛰어놀자. 보고 싶어도 조금만 참고, 환희 형아랑 손 꼭 붙잡고 즐거운 천국 생활 보내고 있으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