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나스타시아 Aug 16. 2021

합사 대 실패

21.08.16.


둘째 꿍이가 온 뒤 첫째인 웅이의 식사량은 3분의 1로 줄어들었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줄 알았는데, 먹는 양이 거의 늘지 않는다. 아침마다 간식을 챙겨주고, 저녁마다 평소 먹던 시니어 사료 대신 꿍이의 키튼 사료를 주어 그나마 쓰러지지 않을 정도로 식단을 유지하는 중이다. 탐스럽던 엉덩이는 이제 뼈만 만져지고, 당최 기운도 없어 보인다. 화장실에서 건져지는 대소변도 꿍이의 3분의 1도 안 된다. 이 정도면 심각한 상황 같은데.


고민하다가 꿍이 병원 가는 김에 동물병원 수의사 선생에게 상담을 요청했다. 꿍이가 웅이에게 달려드는 영상, 웅이가 꿍이에게 뭐라 뭐라 중얼거리는 영상, 둘이 엉겨붙어 있는 사진 등을 연속으로 보여주고, 웅이 식사량이 너무 줄어서 걱정된다고 말씀드렸다. 가만히 영상을 들여다보던 선생은 내게 한마디만 했다.


“계속…… 키우실 건가요?”


둘째를 웅이와 계속 함께 키울 것이냐는, 생각지도 못한 옵션에 당황해하며 “제가 키워야죠”라고 대답했다. 잠깐 말을 고르던 선생은 ‘그러면 합사를 다시 시도해보라’고 제안했다. 지금 합사는 실패 같다고. 웅이가 참고 참는 게 영상에서 느껴진다고. 저 정도면 화장실 갈 때도 쫓아다니고 밥 먹을 때도 공격당할 거라고 했다. 사실이었다. 상대가 너무 어리니까 차마 때리지도 못하고 혼자 견디고 있는 것이다. 그 스트레스로 식음을 전폐한 것이고.

엄마와도 형제와도 너무 빨리 떨어진 꿍이는 가정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어린아이 상태라고 한다. 다른 고양이와 노는 법을  몰라서 일단 웅이에게 달려드는 중이고, 이미 중년인 웅이는 상대의 에너지가 너무 버겁다.  꿍이는 웅이가 본인 엄마인  알고 있다고 했다. 그러니 얼마나 신나게 달려들겠나. 선생은 다시 둘의 공간을 철저히 분리시키고 한두 달에 걸쳐 천천히 합사시켜보라고 제안했다.  말을 듣고 집으로 돌아와 웅이를 바라보는데 어찌나 안쓰러운지.


종종 둘째 고양이를 파양하면서 “첫째와  맞는  같아서요라고 말하는 사람들 보면 ‘이기적이네라고 생각해왔는데, 그분 입장에서는 정말 많은 고민이 이어지다가 내린 결정일 수도 있겠다.  년을 함께한 고양이가 점점 말라가는  눈에 보이는데, 그리고  이유가 주인인 내가 내린 결정 때문이라는데 어떻게 속이  상하겠는가.  역시 선생 말을 듣고   꿍이 노는 모습을 보는데 자꾸 착잡한 마음이 솟아오르는  어쩔  없더라.

둘째 입양을 쉽게 생각하고 결정한 건 아니었는데, 갑작스럽게 변화된 상황을 웅이가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았나 보다. 사실 웅이는 내게 둘째를 원한다고 한 적도 없고, 녀석의 외로움은 나만 해결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녀석 입장에서는 꿍이의 등장이 마른하늘에 날벼락 같을 것이다. 그럼에도 웅이가 잘 적응해주리라 믿었다. 등 한 번 물어버리면 끝날 서열정리조차 못할 정도로 꿍이에게 상처 주지 못하는 순한 녀석이니, 힘들겠지만 이 또한 시간이 지나면 해결해주리라 믿었다.


힘들어하는 거 알고 있었으면 꿍이와의 합사를 아주아주 천천히, 조심스럽게 해주었어야 하는데. 이제 와서 후회가 무슨 소용인가 싶지만.


 결정 때문에 점점 말라가는 웅이도, 타의에 의해 엄마와 형제들과 일찍 떨어져버린 꿍이도 안쓰럽기는 매한가지다. 우리  식구, 같이  지낼  있을까.


매거진의 이전글 새 식구가 생겼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