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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사 새옹지마

by 아나스타시아

‘인생사 새옹지마’라는 말이 있다. 살면서 길흉화복을 예측하기는 쉽지 않다는 뜻이다. 나에게 큰 재앙인 줄 알았던 것이 복이 되기도 하고, “앗싸, 개이득”을 외쳤지만 돌아보면 일어나지 않았으리만 못한 사건이 되기도 한다.


나는 ‘새옹지마’가 삶의 진리라기보다는 믿음에 가깝다고 본다. 복이 복을 불러오고, 화가 화를 불러온다고 알고 산다면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얼마나 불공평하고 지난할까. 나에게 온 불행을 불행으로만 보고, 남에게 간 행운을 또 다른 행운을 불러온 요소로 본다면 내 실패를 온전히 볼 수 없고, 남의 행복에 대해 오롯이 박수쳐줄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러니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마음으로 참고 견디다 보면 어느새 볕 뜰 날도 있으니 그렇게 믿고 한번 살아보라는 조언을 보내는 선조들의 마음이 담긴 게 아닐까 싶다.


나쁜 일은 한도 끝도 없이 나쁜 면만 볼 수 있는 게 사람이다. ‘왜 나에게만 계속 이런 일이’라는 태도는 시야를 좁히고 내 마음을 한없이 좁게 만들어, 결국 상상했던 그 길로 빠져들게 한다. 그러면 곧 “젠장, 내 이럴 줄 알았어”라는 말을 내뱉겠지. 다가올 불행을 맞췄다고 해서 뭐 좋은 일이 생기나? 복채라도 받으면 몰라도, 불행을 점찍어서 나에게 좋을 일이 뭐가 있을까. 그보다는 불행 앞에서 ‘그래 차라리 잘되었어. 미리 예방접종 맞는다 치자’고 생각하는 쪽이 같은 경험 앞에서도 나를 덜 불행하게 만들 수 있는 것 같다.


마음병원에 갔던 것도 다른 이유가 아니었다. 계속되는 내 실수를 참지 못한 옆 팀 팀장이 내게 폭언을 퍼부었다. 심지어 모두가 보는 앞에서. 공공연한 비난에 공격받는 것 같아 마음이 안 좋다는 내 말에 그는 대답했다.


“앞으로 조심하세요. 그럼 되겠습니다. 뭘 대단히 착각하신 듯? 어이가 없네요. 나는 팩트로만 얘기합니다.”


나를 향해 내뱉는 그 모든 단어들은 내게 상처를 주었다. 사건이 있은 후 그에게 사과를 건네었고 일은 마무리했지만 이미 생긴 상처를 지울 순 없었다. 요즘에도 ‘나는 팩트만 말한다’라며 상대 기분과 상관없이 하고 싶은 말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그때가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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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그의 태도와 말이 정당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내 실수가 분명했고, 그의 말대로 팩트라고 해서 모든 말을 다 입 밖으로 꺼내도 되나? 그가 내게 막말을 퍼붓던 현장에 함께 있던 또 다른 동료는 내게 따로 메시지를 보내 ‘주먹으로 때리는 인형’을 선물했다. “우리는 기계가 아니잖아요”라는 말을 건네며. 내 상사는 나를 따로 불러 밥을 사주며 위로의 말을 보내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나에 대한 심한 말을 내 상사에게 전화로 건네었음을 알게 되어 더 실망감이 커졌지만.


모두가 나를 위로하고 내 편에서 이야기해주었다고 해서 남에게 피해줄 만큼 정신을 차리지 못했던 내 상태가 정당했다는 말은 아니다. 그저 나로서는 교통사고 같던 그 사건이 나를 지켜야 한다는 감각을 깨워주었다는 뜻이다. 정신적으로 가장 취약할 때였고, 여기저기에 누수가 생기던 때라 모두에게 크게 피해를 끼쳤을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 함께했던 이들에게 미안하다.


그 일은 ‘이렇게 남에게 피해나 주는 내가 이 일을, 사회생활을 계속해도 되는 걸까?’라는 좌절감을 주었지만, 동시에 ‘내가 지금 이상하다’라는 감각을 심어주기도 했다. 타인의 무례함이 내 영혼과 자존감을 죽이기만 한 게 아니라 다른 면에서 나를 살리기도 했다는 말이다.


그 ‘내가 지금 이상하다’는 감각 덕분에 나는 병원 문을 두드렸다. 그 일이 있은 후 2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까지 ‘우울증’이라는 병명을 달고 약을 먹고 있다. 어떻게 보면 그 사람 덕분이다.


우울도 마찬가지다. 전에는 우울이 내게 불행이라 생각했는데, 지금은 잘 모르겠다. 우울 덕분에 내 불안한 정서를 돌아볼 수 있게 되었고, 내가 나를 얼마나 하대했는지 알아차리게 되었으니까. 지금은 마음이 조금이라도 불편할 때마다 심장이 가까운 왼쪽 가슴 위에 오른손을 얹고 토닥토닥 두드린다. 괜찮아, 이 정도면 꽤 잘하고 있어. 그 누구도 해주지 않던 말을 내게 건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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