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에 드나든 지 2년이 다 되어 간다. 처음에는 ‘난 가벼운 증상이니까, 6개월 정도 약 먹으면 괜찮아지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그 기대가 무색하게 의사 선생님은 내가 원하는 답을 들려주지 않는다. 가끔 망설이다가 진료 마지막에 “근데 저는 언제까지 병원 다녀야 해요?”라고 물어볼 때마다 의사 쌤은 “조금 더 지켜봅시다”라고 대답하는데, 그 ‘조금 더’라고 판단한 기준이 뭔지 궁금하다. 오히려 선생님은 5~10분이던 진료 시간을 15~20분으로 늘였다. 앞으로는 진료 시스템을 바꾸어 약만 타가도 괜찮은 이들과 상담이 필요한 이들로 나눈다고 하던데, 나는 상담이 더 필요한 쪽인가 보다. 그저 ‘때가 되면 나도 졸업하겠지’라는 생각으로 다니는 중이다.
정신과 약은 피부과 약과 비슷한 것 같다. 먹으면 즉각적으로 통증이 잦아들고, 안정을 찾는다. ‘괜찮아진 것 같다’ 생각해 약 먹기를 소홀히하면 이내 예전에 나를 괴롭혔던 그 염증들이 다시 몸 밖으로 올라온다. 이와 달리 정신과 상담은 체질 개선과 비슷하다. 약처럼 즉각적인 반응이 오지는 않지만 서서히 나를 변화시켜 또 같은 상황이 닥쳤을 때 좀 더 효과적으로 대응하게끔 도와준다는 점에서.
그러니까 약은 즉각적이고, 상담은 서서히, 그러나 근본적인 변화를 준다. 두 가지 중에 무엇이 더 우월한지 말하기는 어렵다. 나는 두 가지 모두로부터 도움을 받았다. 지금 당장 무너질 것 같이 마음이 급박할 때는 약으로 빠르게 마음을 진정시켜주어야 하고, 자꾸 같은 패턴이 반복되어 관계나 삶이 뒤틀리는 것을 막으려면 전문 상담이 필요하다.
지금도 약과 상담을 병행하는 중이다. 병원에서 상담 권유를 받았는데 여러 오해와 사정(이것도 나중에 풀어봐야겠다)이 생겨 병원을 옮겼고, 그때 지금의 상담 선생님을 만났다. 상담사는 한 명이어야 내담자가 혼란을 느끼지 않는다기에 병원 의사 선생님의 상담은 보류하고 처음 선택했던 상담사 선생님과 계속 함께하는 중이다. 이제 심리상담도 거의 1년쯤 되었다. 오늘은 선생님께서 ‘새로운 국면으로 진입하는 것’을 제안했다.
“이쯤에서 지은 씨에게 좀 물어보고 싶어요. 상담은 크게 치료적 상담과 성장 상담으로 나뉘거든요. 치료적 상담은 그 사람이 갖고 있는 병리적인 모습들, 예컨대 불안이나 우울, 강박 같은 병리적인 모습들을 타깃팅해서 치료하는 거고, 성장 상담은 내가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 성격적인 측면, 내 본질적인 측면을 좀 더 알아가는 거고요.”
그는 심리상담은 ‘치료’가 아니라고, ‘재양육’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상담사가 내담자를 키운다는 게 아니라, 상담사의 도움하에 내담자가 자기 안의 미성숙한 나를 같이 키우는 거라고. 그 독립을 위해 우리가 힘을 합치는 거라고.
누군가와 힘을 합친다는 개념도, 내가 나를 양육한다는 개념도 처음 들어보는 단어처럼 낯설다. 나는 아직도 삶이란 내 한계에 대항해 싸워 이겨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몸에 힘이 잔뜩 들어가는 거겠지. 선생님은 내가 나를 이해하고 안아준다면 지금 몸이 아픈 것도 점차 나아질 거라 했다. 잔뜩 들어간 힘이 풍선 바람처럼 서서히 빠질 때, 그때쯤 나도 온몸을 묶은 고리를 풀고 허물어질 수 있겠지. 그날을 기다리며 오늘의 상담을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