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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빌려주면 돈도 사람도 잃는다'는 말

by 아나스타시아

전 직장 동료와는 두 개의 직장을, 도합 10여 년 동안 함께 일했다. 나이는 동갑이었지만 나보다 경력이 1년 많은 그를 ‘선배’라 불렀다. 선배 또한 나를 ‘지은 씨’라 불렀지만 우리 사이의 호칭은 그건 그냥 게임 닉네임 같은 것으로, 선후배보다는 허물없는 친구 사이였다.


정 많고 착한 그를 좋아했다. 푼수 기가 있으면서도 누구든지 편하게 대하는 그와 함께 있으면 나 또한 긴장이 허물어져 편안했다. 회사에서 숨이 막힐 때마다 우리는 같이 점심을 먹은 후 인적이 드문 카페로 같이 숨어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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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직장에서 심적으로 부침을 겪던 선배는 이를 견디지 못하고 우발적으로 사표를 던졌는데, 어쩐 이유인지 그 이후 7개월간 직장을 구하지 못했다. 게다가 당시 지방에 사는 그의 부모는 건강상의 이유로 노동을 하지 않았고, 언니는 여러 정서적 불안으로 폭식과 거식을 반복하는 비정규직 노동자였다. 실질적인 집안의 가장인 그는 홍대 인근에서 카페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활비를 벌었다.


나 또한 같은 직장에서 비슷하지만 다른 유형의 압박을 받고 있었으나 조금 더 맷집이 좋고 의식주의 대부분을 부모에게 의지하고 있던 탓에 다행히 조금 더 오래 다닐 수 있었고, 적당한 타이밍에 직장을 옮겼다. 어느 회사든 일은 넘치고 괜찮은 직원 구하기는 어려운 게 매한가지여서, 새 팀에서도 추가 인원 보충이 필요했고, “데려올 만한 사람 없느냐”는 상사의 물음에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게 그 선배였다.


다만 그 회사는 빨간 광역버스를 타고 오고 다녀야 하는 거리였고, 그에게는 한 달 차비조차 없었다. 100만 원만 빌려주면 그다음 월급날 갚겠다는 그의 말에 당분간 내게 목돈은 필요 없으니 천천히 갚으라는 말로 부담을 덜어주었다. 나 또한 박봉에 모아놓은 돈이 없기는 매한가지인 사회 초년생이었지만 그만큼 그를 믿었고 돕고 싶었다.


은행빚에다가 개인적으로도 많은 이에게 조금씩 돈을 빌렸던 그는 결국 은행에서 월급 압류가 들어왔고, 한 달에 10만 원 정도씩만 갚을 수 있을 거 같다며 미안하다고 말했다. 그때도 ‘갚을 수 있을 때 갚아라’는 말을 그에게 건네었던 것 같다.


그러나 인생은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어서, 그 10만 원조차 갚지 못하는 달이 생겨났다. 어쩔 때는 10만 원을 갚았다가 그다음 주에 바로 생활비가 없다며 20만 원을 빌려가기도 했다. 그와의 관계를 어그러트리기 싫었던 건지, 아니면 물욕이 워낙 없던 탓인지 몰라도 그런 그를 나무라지도, 미워하지도 않았다.


한번은 그가 “이번 달에도 10만 원을 못 갚을 것 같아요”라며 말끝을 흐렸다. 그날 또한 나는 괜찮다고, 다음 달에 갚으라는 말로 화답했고. 우리 사이의 틈은 그 이후에 생겨났다. 그의 SNS에 ‘콜드플레이 내한공연’ 현장 사진이 올라온 게 아닌가. 아니, 나한테 10만 원이 없다더니 공연은 가나? 그 10만 원이 내 돈인 것도 아닌데, 꼭 내 돈으로 표를 산 것 같은 배신감에 혼자 부르르 떨었다.


이후로는 그의 모든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왜 부모에게 절절매며 생활비를 갖다가 바치는지, 왜 언니를 고향으로 내쫓지 못하고 끌어안고 사는지, 왜 ‘서울사람’이라는 그 타이틀을 못 버려서 굳이 땅값 비싼 마포에서 월세살이를 하는지. 왜 내 돈을 안 갚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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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1년 가까운 시간이 지나 그 100만 원을 다 돌려받았지만 우리 사이는 멀어졌다. 그때 알았다. “남에게 돈을 빌려주면 돈도 잃고 사람도 잃는다”는 말의 진짜 의미를. 돈을 빌린 상대가 뻔뻔해서, 내 돈을 안 갚아서 그런 게 아니었다. 그는 내게 돈을 못 갚는 개인사를 계속 설명하고, 나는 그걸 듣고 그와 심적으로 유착된다는 의미였다. 자신의 속사정을 너무 적나라하게 아는 나를 선배는 점차 멀리하기 시작했고, 그의 사정을 들을 때마다 답답해진 나는 그에게 “왜 이렇게 안 하고 그렇게 하는 거냐”는 잔소리를 하며 내 생각을 강요하게 되었다. 결국 돈은 청산되었어도 그 마음에 못 풀어낸 찌꺼기가 앙금처럼 남아 우리 사이는 혼탁해졌다.


10년이 지나 내가 먼저 그 회사를 나왔지만 선배는 한 번도 내게 연락을 준 적이 없다. 나 또한 그에게 연락하지 않았다. 그렇게 우린 한때 가장 의지했던 서로를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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