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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함의 정의

by 아나스타시아

지금까지 내 인생의 크고 작은 성과는 모두 내가 나를 배척하며 얻어낸 것이다. 네가 주어진 역할을 제대로 소화 못했잖아. 잘했으면 이런 일이 터졌겠어? 네가 똑똑했으면 그 사람이 너를 그렇게 무시했겠어? 그런 취급을 받았겠어? 모든 잘못은 너에게 있어. 그러니까 더 열심히 해.


이 생각은 스스로를 강하게 채찍질하게 만들었고, 이로써 얻은 성과들 덕분에 나는 배웠다. ‘노력과 진심은 통하는구나.’ 내가 나를 대하는 이러한 태도는 동시에 내가 겪은 부당함, 상대의 무심함과 악의, 숨겨진 의도 등을 파악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세상은 내 생각보다 훨씬 복잡했다. 내 부족함과 잘못을 운운하며 나를 다그치는 상대방에게 어떠한 ‘의도’가 있을 거라 파악하지 못했다. 이를 이제야 안 내게 상담 선생님은 ‘순진하다’고 말했다.


상대를 깎아내림으로써 원하는 바를 얻어가는 이를 탓할 생각은 없다. 그래, 당신도 지켜야 할 무언가가 있겠지. 그게 돈이든, 명예든, 자기 자리든. 언젠가 상대가 미워 말도 붙이고 싶지 않다는 내게 정신과 의사는 말했다. “그러면 지은 씨 곁에는 누가 남아요?” 그때는 한두 가지 사건으로 척지지 말라는 뜻인 줄 알았는데, 지금은 조금 다르게 들린다. “왜 지은 씨는 지은 씨 편이 아닌 상대의 편이 되어주죠?” 이것이 인생 전반의 화두가 되어야 한다고.


내가 포커싱해야 할 것은 ‘내가 내게 왜 그랬는가’다. 그들이 내게 한 잘못은 그들이 알아서 할 문제고, 나는 내 편이 되어주지 못했나. 언젠가 상담 선생님은 ‘화가 내 밖으로 나가면 분노, 내 안으로 들어가면 우울이 된다’고 말했다. 나는 나를 공격함으로써 우울에 빠졌다. 이를 알아차리는 것마저 나를 향한 또 다른 비난일까 봐 두렵지만.


여전히 어떻게 해야 내가 내 편이 되어줄 수 있는지 잘 모르겠다. 최근에 상담 선생님은 내 주변에 가까운 사람은 있어도 친한 사람은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친하다는 게 뭔데요?” “친하다는 건요, 상대가 조금 잘못해도 넘어가줄 수 있고, 내가 크게 잘못해도 받아들여지리라는 믿음이 있고, 조금 부족해도 서로 안아주는 그런 종류의 것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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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친함의 정의라면 나는 나하고 제일 친하지 않다. 난 내 잘못을 용납하지 못하니까. 가장 앞장서서 혼내니까. 그 누구도 편들어주지 않는 나는 퍽 외로웠겠다 싶다.


정신과의 도움을 받은 지 2년, 심리상담을 받은 지 1년 6개월이 지났다. 처음에는 못다 한 애도를 마무리하기 위해 시작했는데 지금은 나를 알아가기 위해 상담을 계속하고 있다. 50분의 상담을 마무리할 때마다 선생은 묻는다. “오늘은 어떠셨어요?” 나는 늘 똑같이 대답한다. “어려워요.” 남의 속보다 더 어려운 게 내 속이다. 까맣다 못해 깊어 바닥이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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