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토록 무능하다

아픈 고양이를 바라보며

by 아나스타시아

20대 후반에 착한 일한답시고 길고양이 구조 협의회에서 봉사활동을 한 적이 있다. 동네 사람들끼리 네이버 카페에 모여 길고양이 구조를 돕는 작은 단체였고, 그곳에서 나는 ‘스텝’으로 불리었다. 카페 아이디가 아나스타시아였기에, 동네 분들은 나를 ‘아나 님’이라고 불렀다. 그들과 종종 커피도 마시고, 다친 고양이 구조도 하러 다니고, 동네에 작은 사랑방도 차렸다. 그곳에서 굴희 님, 보노 님, 동글 님 등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보호소에 구조된 고양이들을 헤아리고, 임시 보호처를 마련해 안정을 돕고, 입양자를 수소문해 입양 보내는 것까지가 스텝의 역할이었다. 1년 못 되게 봉사활동을 했는데, 그때 내 손으로 입양 보낸 고양이가 못 해도 200여 마리는 될 것이다.


나는 어떻게 그 많은 고양이들의 집을 찾아줬을까. 사실 괜찮은 입양조건을 갖춘 이들은 대부분 이미 고양이를 키우고 있다. 내가 입양 보내고 싶은 집들은 남들도 바라는 곳들이었다. 나는 성인 가운데 기본 마인드만 갖춘 분이면 훈련으로 모두 커버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입양 상담전화를 통해 그분 성향을 살피고, 주기적으로 나와 연락을 주고받으며 배우겠다는 자세만 갖추면 우선 후보로 받아들였다. 내가 가르치면 되지 뭐. 스텝이라는 감투를 쓰고, ‘고양이 준전문가’라는 내 지식에 취해 있을 때였다.

당시에 내가 간과했던 점은, 스텝이라는 감투도, 준전문가라는 허세도 모두 허울이었다는 사실이다. 200마리나 입양을 보낸 성과는 내 능력 덕이 아니라 임시보호를 자처한 이들 덕분이었다. ‘아이가 설사를 해요’라는 임보자의 문의에 ‘비오비타 먹이세요’ 대답하고, ‘피부병이 심해요’라는 하소연에 ‘약용샴푸 쓰세요’라고 조언했다. 모든 조언은 다른 스텝들의 말을 앵무새처럼 따라했을 뿐, 직접 경험으로 얻은 지식은 아니었다.


리아가 아프고 보니 그때가 자꾸 생각난다. 그분들은 내 되도 않는 조언에 따라 움직이며 얼마나 발을 동동 굴렀을까. 아픈 고양이 앞에서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시행착오를 겪었던 것은 내가 아니라 임시보호를 자청한 봉사활동자들이었다. 그것도 모르고 당시에는 내가 힘든 것만 보여서 매일같이 ‘그만두고 싶다’며 울었다.

아픈 고양이를 반려하면서 배운 점이 있다. 나는 고양이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고, 게다가 죽음에 대한 지식은 전무하다는 사실이다. 내가 생각한 고양이의 죽음은 아마 조금씩 기력이 쇠해지다가 까무룩 잠이 드는 상황이 아니었을까. 가끔 입양자들에게 ‘나중에 고양이 아플 때 대비해서 적금 통장을 만드세요’ 따위의 말들을 조언이랍시고 건네었다. 내가 아는 반려동물의 죽음은 딱 거기까지였다. ‘언젠가 헤어지겠지만 지금은 아닌 것.’ 평소보다 조금 더 먹으면 신이 나서 팔짝 뛰고, 숨 쉬고 있는지 아닌지 귀 기울여 보고, 지금은 활기가 넘쳐도 또 조금 지나면 죽은 듯이 웅크리고 있는 고양이를 마음 졸이며 지켜보는 상황은 내 시나리오에 없었다. 리아가 림프종이 의심된다는 진단을 받았을 때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심정이 되었던 탓은 전혀 죽음에 대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는 너를 키우는 동안 하나도 성장하지 못했다.


오늘 리아 시티 촬영이 있다. 림프종이라는 가진단하에 세포검사와 시티 촬영을 함께 실시할 예정이다. 누구는 나에게 고양이 힘들게 하지 말고 그냥 보내주라고 하고, 또 누구는 림프종에 걸려도 살아남은 다른 고양이 사례를 들려준다. 어제는 이쪽 말에 쏠렸다가 또 오늘은 다른 쪽 말에 귀를 기울인다. 하루에도 마음이 열몇 번씩 움직인다. 그러다 보면 기어코 리아 앞에서 눈물을 흘리고 만다. 지금 가장 힘든 건 너일 텐데, 나는 이토록 무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