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헤어진다 해도 지금은 아니니까

떠나보내는 마음가짐

by 아나스타시아


리아가 며칠 만에 재입원했다. 개와 달리 고양이는 영역 동물이기에 장소에 예민하다. 입원이 병을 키울 확률이 높기에 웬만해서는 입원을 권하지 않으나 도통 먹지 않으니 방법이 없다. 그나마 사흘 정도 있던 곳이라 덜 무서운지, 어제는 케이지 밖으로 얼굴을 드러내기도 하고, 내 무릎 위에 앉아(케이지 안에 함께 있었다) 바깥에 있는 사람들을 빤히 구경하기도 했다.

지금 다니는 병원은 홍지동에 위치한 노령동물 전문병원인 올리브 동물병원이다. 홍지동에 살기는커녕 가본 적도 없는 내가 이 병원에 다니는 이유는 박정윤 원장 선생님과의 인연 덕분이다. ‘TV 동물농장’에 출연하시던 시절부터 팬이어서 사심 채우려고 저자와 편집자로 만났다가 그 인연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결국 계약만 하고 책은 내지도 못하고 퇴사해버렸지만.


현재 리아 담당의는 다른 수의사라 요즘 자주 뵙지 못했는데, 어제는 리아 입원을 기다리다가 운 좋게 대기실에서 박정윤 쌤을 마주했다. 쌤과 마주치자마자 “선생님, 리아 어떻게 해요?” 말이 튀어나왔고, 곧바로 울음바다가 되었다. 강남까지 리아를 데려가서 시티 촬영을 마치고, 림프종 아니면 비만세포종이 의심된다는 1차 소견을 받은 직후라 마음이 한껏 내려앉은 상태였다. ‘리아를 나 혼자 붙잡고 있는 것 아니냐’는 물음에 선생님은 같이 울 것 같은 표정을 짓다가 얼른 나를 빈 상담실로 잡아끌었다.

선생님은 내 손에 휴지 한 장 쥐어주더니 말을 이어갔다. 아직 진단도 안 나왔고, 다른 약물 등 써볼 수 있는 방법이 많은데 벌써부터 이러면 안 된다고, 마음 다잡으라고, 그리고 리아 앞에서 울지 말라고. 부드럽지만 단호한 말투에 조금씩 울음이 잦아들고 곧 안정을 찾았다. 이후로는 마음 다잡고 정신 바짝 차린 다음 앞으로 있을 여러 경우에 대해 물어보았다.


질문들 말미에 내가 하는 선택이 최선이 아닐까봐 두렵다고 고백했다. 선생님은 조심스럽게 자기 반려묘인 소롱이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하셨다. 소롱이 간에 종양이 생겼는데, 하필 간 안쪽 깊숙하게 박혀 있단다. 간은 겉으로 드러난 장기가 아니라 횡경막 안쪽에 있어서 수술이 까다로운데, 위치마저 애매해서 고민스럽다고, 오늘은 ‘역시 수술해야겠다’ 결심했다가도 자고 일어나면 다시 ‘아무래도 위험해’ 생각한다고. 그 말에 일말의 위안을 받았다. 이렇게 동물에 대한 지식이 해박하고 심지어 이 지식으로 먹고사는 사람조차 하루에도 열두 번씩 무엇이 최선일지 고민하는구나, 싶어서.


더불어 중요한 지점을 하나 짚어주셨는데, 바로 내가 무엇을 선택하든 결국 리아가 가고 나면 후회는 남는다는 사실이다. 항암치료를 하든지, 수술을 하든지, 모든 치료를 중단하든지 간에 선택하지 못한 길에 대한 후회가 일어날 거라고. 다만 ‘아무것도 못 해보고 보냈다’는 후회만큼은 안 하는 편이 낫지 않겠냐고. 그 말을 들으니 아주 조금 용기가 생겼다. 그래, 손도 못 써보고 보내지만은 말자.


마지막으로 인터넷이나 다른 사람 말 등 너무 많은 정보를 듣고 찾아다니지 말라는 말씀도 주셨다. 타인이 주는 조언들은 대부분 본인이 반려동물을 떠나보낸 이후 후회를 바탕으로 한 조언들이기 때문이다. ‘내가 항암치료 끝까지 해봤는데 결국 재발하더라. 항암하지 마라’, ‘병원의 권유로 안락사했는데 생각해보면 더 살 수 있었어. 안락사하지 마라’, ‘병원에서 포기하라 했는데 끝까지 데리고 있겠다고 고집부리다가 애만 더 힘들게 하고 보냈던 것 같아. 너는 그러지 마라’ 등. 본인의 후회를 나와 리아에게 투영하는 것이다. 내가 중심을 잡지 못하고 오늘은 이 말에 귀 기울였다가 내일은 저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 결국 제일 힘들어지는 것은 리아다.


이제는 우리의 마지막이 얼마나 존엄하게 마무리되는지만 중요하다. 너무 들뜬 기대도, 쉬운 낙담도 하지 않겠다. 남은 시간 더 많이 사랑하고 조금만 울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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