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 몸을 대하는 마음가짐
리아는 함께한 10년 내내 내 왼쪽 팔과 옆구리 사이에 웅크리고 잤다. 결혼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남편이 리아의 잠 습관에 짜증을 낸 적이 있다. 나와 남편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는 리아 때문에 이불을 넉넉하게 덮을 수 없다는 점 때문이었다. 자다 깨서 짜증을 내는 그 앞에서 리아 편을 들었다.
“여기는 원래 리아 자리였어. 리아 입장에서는 자기가 끼어든 거거든?”
평소의 루틴대로 행동했을 뿐인데 욕을 먹는 리아가 안쓰러워서 괜히 남편에게 핀잔을 주었다. 이후 우리는 좀더 큰 이불을 장만했고, 이내 이불 다툼은 사그라들었다.
최근 남편은 큰 수술을 하느라 두 주간 병원에서 지냈다. 남편의 이부자리는 고양이들 차지였다. 온수매트 위를 뒹구는 고양이들을 보며 흐뭇해하다가도, 이 자리에 부재하는 한 사람이 떠올라 다시금 허전해졌다. 내 옆구리가 리아 지정석인 게 어느 순간 당연시되었던 것처럼, 그의 자리 또한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한 사람의 부재는 고양이들에게도 영향을 끼쳤다. 녀석들이 직접적으로 남편을 찾지는 않았으나, 내게 말을 걸고 응석부리는 나날이 평소보다 잦아졌다. 아마 자신들에게 닿는 손길이 절반으로 줄어서 생긴 반응이 아닌가 싶다. 특히 리아는, 넓은 공간을 사람 하나 고양이 둘이 쓰는데도 자꾸만 새벽마다 내 품을 파고들었다. 리아를 잠결에 만져주다가 슬그머니 밀쳐내는 시간이 점점 늘어났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고양이의 모든 양육을 나 혼자 맡는다고 불평했는데, 그의 부재로 이 또한 착각임을 깨달았다. 아침에 눈뜨자마자 식성 다른 두 고양이의 밥을 챙기고, 리아 영양제와 약을 먹인 뒤에 새 물로 갈아주고, 내 밥까지 챙겨 먹다 보면 아침 한 시간이 훌쩍 지나가버리곤 했다. 그제야 부랴부랴 출근길에 오르면 어김없이 지각이었다. 평소 남들보다 한 시간 일찍 출근해 외국어 공부하던 나였으나, 지금은 아홉 시 출근도 버겁다.
마지막으로 병은 우리에게 ‘모든 만남에는 헤어짐이 있다’는 오래된 격언을 기억하게 했다. 내 일상에 하나둘 새겨진 우리 가족들이 사라지고 언젠가는 나 혼자 남게 될 것이다. 언제나 당당하게 내 옆구리를 차지하던 리아도, 나와 남편 아니면 누구에게도 곁을 주지 않는 웅이도, 심지어 죽을 때까지 함께할 것 같던 남편하고도 언젠가는 헤어질 것이다. 그때가 오면 지금 덮고 자는 큰 이불이 얼마나 허전하게 느껴질까. 나는 결코 가족의 죽음을 의연하게 받아들일 수 없겠지만, 적어도 ‘급작스럽다’고 생각하지는 않고 싶다. 매일같이 마음의 준비를 하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