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사는 고양이의 평온을 위해 차를 사고 집을 샀다
결혼하기 전, 함께 살기로 결정한 친구와 삶의 지향점에 대해 이야기 나눈 적이 있다. 가족 공동체를 이루기로 결정한 만큼, 서로의 가치관을 존중하면서도 개인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 적정선을 찾고 싶었다. 다행히 우리의 가치관은 공통된 부분이 많아서(아마 그래서 결혼을 결심했겠지만) 공동체 규율 및 지향점을 만들어나가는 데 큰 어려움을 겪지 않았다.
당시에 그와 공유한 가치관을 한마디로 정리한다면 ‘지구에 피해를 끼치지 않는 삶’ 정도로 정리될 수 있을 것 같다. 우리는 ‘오래 살수록 지구에 폐를 끼친다’는 인식을 공유했다. 결혼 및 결혼식이 얼마나 많은 자원이 낭비되는 시스템인지 잘 알았기에 우리는 선택지가 있는 것들만큼은 우리의 가치관이 담길 수 있도록 최대한 발품을 팔았다.
우리는 결혼 청첩장을 코팅하지 않았고, 최대한 작은 사이즈 종이에 콩기름으로 인쇄된 재생지를 사용했다. 청첩장도 금액의 1퍼센트를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에게 기부하는 단체에 의뢰했다. 신혼여행지 예약도 공정무역을 추구하는 사회적 기업에 맡기고, 회사에 돌릴 결혼 답례품도 장애인을 고용하는 사회적 기업에서 만든 우리밀 쿠키를 주문했다. 결혼식에 필요한 부케와 부모님 꽃은 세월호 의인인 고 김관홍 잠수사의 가족이 운영하는 꽃집에 맡겼다. 결혼반지는 종로에서 두 링에 35만 원짜리로 맞추었다. 예물은 없었고, 혼수는 1등급 냉장고와 75만 원짜리 시스템 장롱만 샀다. 신혼살림도 그의 원룸 물건과 내 원룸 물건을 합쳤다. 집은 1994년에 지어진 일산 15평 아파트를 전세로 구했다. 당시 8평에 살던 나와 5평에 살던 반려인으로서는 그 공간이 세상 그렇게 넓어 보였다.
결혼 이후 삶에 대해서는 이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는 남들의 속도에 따라가지 말자. 집을 사기보다는 지금 규모에 맞게 전세 살다가 언젠가 처분하고 시골로 내려가자고 했다. 자동차도 안 사고 싶다는 이야기도 나누었다. 이미 지구에는 자동차가 너무 많으니까, 우리까지 보태지 말자는 심정이었다. 또 책도 더는 늘이지 말자고, 지금 있는 책장보다 책이 늘어나면 나머지 책들을 정리해 권수를 일정하게 유지하자고 약속했다. 있으면 좋은 물건은 없어도 되는 물건이니까, 무언가를 들이지 말자 했다. 심플하게 살자고, 우리는 지금으로 충분하다고 서로 다짐했다.
대화를 나눌수록 우리는 참 잘 맞았다. 이렇게 생각이 딱 맞는 친구와 함께 살게 되다니 나는 결혼을 참 잘하는구나, 싶었다. 게다가 결혼식까지 우리 식으로 해냈으니까, 이후 결혼도 마찬가지일 것이라 자신했다. 여기 적어둔 약속들은 결혼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모두 자기부정이 되어버렸다는 점이 병폐였지만.
우선 우리는 차를 샀다. 그리고 이를 후회하지 않게 되었다.
결혼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첫째 고양이인 웅이가 아팠다. 원인 모를 토를 매일 해댔다. 사료가 바뀐 것도 아니고 식물을 뜯어 먹지도 않았는데 왜 이럴까. 혹시 복막염이나 무슨 코로나 바이러스 같은 게 아닐까(동물에게도 코로나가 있다)? 점점 무서워졌다. 겁이 많은 웅이는 집 밖에 나가는 순간 발버둥을 쳐서 꼭 피를 보거나 가끔 오줌을 지리기도 한다.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우리는 긴 상의 끝에 병원에 데려가기로 했다. 반려인은 카카오로 택시를 불렀고, 나는 웅이를 잡아다가 이동장에 가두었다. 패닉이 온 웅이는 끊임없이 울었다. 목이 쉬어라 우는 바람에 놀란 옆집에서 무슨 일인가 싶어 대문을 열고 우리를 관찰하기까지 했다. 대기시간이 길어질수록 초조해졌다. 금방 온다던 택시는 왜 이렇게 안 오는지.
드디어 택시가 도착했다! 아파트 입구에 있던 우리는 택시를 보자마자 다급히 그쪽으로 다가갔다. 운전석에 있던 기사 아저씨와 눈이 마주쳤는데, 심하게 당황한 눈치였다. 왜 저러지? 궁금증은 우리 앞에 택시가 서자마자 깨달았다. 잔뜩 인상을 쓴 아저씨는 “뭐예요, 고양이? 안 돼요. 트렁크에 실어요”라고 말했다. 웅이의 우렁찬 울음소리에 패닉이 된 반려인은 트렁크에 실어서라도 병원에 가자고 했고, 나는 그럴 수 없다고 대답했다. 우리의 실랑이를 지켜보던 기사 아저씨는 ‘다른 차를 알아보라’고 말했다. 카카오 취소는 우리보고 하라고 시켰다.
다급해진 우리는 얼른 다른 택시를 불렀다. 다음으로 도착한 택시는 웅이를 트렁크에 태우라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말 그대로 ‘무언無言의 시위’를 시작했다. 택시에 타자마자 “시끄러워서 죄송합니다”라는 내 사과에 그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았고, 도착할 때까지 말 한마디 없이 인상을 쓰고 ‘나 기분 나쁘다’는 티를 팍팍 냈다. 이날만큼 차 없는 게 그렇게 서러운 적이 없었다. 이동장에 넣어서 탔는데 대체 뭐가 문제인지. 반려인도 서러웠는지, ‘차 가지고 싶다’고 말했다. 눈치 보지 않고 우리 아이들이 아플 때 바로 병원에 데려가고 싶은 마음은 나도 마찬가지였다. 집에 돌아와서는 그 택시기사에게 카카오 별점 최하점을 주었다.
이날의 설움은 우리에게도 차가 생기면서 모두 상쇄되었다. 이직을 결정하면서 출퇴근 시간이 애매해져 왕복 세 시간은 길에서 버려야 하는 상황이었다. 마침 차를 바꾸려던 지인에게 시세보다 싼 가격에 중고를 매입했다. 차를 구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리아의 투병이 이어졌다. 일주일에 한 번은 리아 약을 타기 위해 병원에 들렀고, 리아가 2주간 입원했을 때는 매일 방문했다. 남 눈치 보지 않고, 대기 시간 없이 바로바로 병원에 들락거릴 수 있음에 감사했다.
결혼 초반의 결심과 달라진 점은 또 있다. 우리는 집도 샀다. 작은 공간에 맞추어 평생 살기로 한 결심은 고양이에게 조금 더 좋은 공간을 선물하고 싶은 마음을 이기지 못했다. 원룸에 살다가 15평짜리 신혼집으로 이사왔을 때, 나는 이 고양이들이 이토록 열심히 나를 쫓아다닐 줄 안다는 걸 처음 느꼈다. 원룸 안에서는 내 일거수일투족이 자기네들 시야 안에 있으니 눈으로만 쫓았지만, 15평은 그렇지 않았나 보다. 녀석들은 거실로, 부엌으로, 침실로, 화장실로 열심히 내 뒤를 따랐다. 그 모습이 귀엽기도 하고, 또 이렇게 뛰어다닐 줄 아는 녀석들이었나 싶어 안쓰럽기도 했다. 그즈음 책장을 넘어 바닥으로 넘치기 시작한 책들 때문에 스트레스받는 중이었는데(그러고 보니 책도 늘었다. 분명 안 산다고 했건만...), 두 가지 조건이 ‘조금 더 넓은 집으로 이사가고 싶다’는 마음을 부채질했다. 결국 우리는 무리를 해서 대출을 끼고 조금 더 넓은 공간으로 집을 옮겼다.
베란다 창문에 고개를 빼꼼 내밀고 창밖을 구경하는 녀석들의 뒤통수를 볼 때, 아침에 들어오는 햇살에 몸 누이고 해바라기하는 시간을 구경할 때 우리는 ‘이사하길 잘했다’고 느낀다. 비록 처음 결혼했을 때 다짐들은 무산된 지 오래이지만, 우리의 신념만큼이나 너희의 평화가 소중하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