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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나스타시아 May 28. 2020

당신이 파양한 고양이는 갈 곳이 없다

'사지 마세요, 입양하세요' 캠페인이 놓치고 있는 부분

 

고양이 입양이라는 결심이 선 순간부터는 일사천리로 진행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고양이 카페에서 보호소나 길에서 구조한 고양이의 입양처를 찾는 이들에게 ‘입양 신청 메일’을 수십 통 보냈다. 그러나 그 구조자들은 20대 중반 사회 초년생 여성에다가 고양이를 한 번도 키워본 적이 없다는 예비 집사를 쉽게 믿으려 하지 않았다. 그들이 던지는 몇 가지 간단한 질문만으로도 나는 수많은 후보자 가운데 ‘탈락 대상’이었던 것 같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구조자들에게 입양 신청서를 보냈던 이유는, 우리 가족의 일원이 되는 고양이가 우리에게 축복이듯이 그 녀석에게도 우리가 축복이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가족을 돈 주고 사고 싶지는 않았다.



웅이는 그렇게 수많은 시도 끝에 얻은 새 가족이었다. 묘생 3개월 때 어미를 잃고 혼자 떨어진 웅이는 추운 겨울에 트럭 엔진 온기로 몸을 녹이려다가 트럭 바닥에 목이 끼어 밤새 울었다고 한다. 살려달라는 소리에 이끌린 구조자가 트럭 바닥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고양이를 발견했고, 가까스로 구조될 수 있었다. 발견 당시 좌측 반신은 마비된 상태였고, 머리도 차가워지던 중이었다고 한다. 죽기 직전에 구조된 웅이는 구조자의 보호 덕에 동물병원에서 한방 침을 맞고 약을 먹어 기운을 되찾았다고, 이제 새 가족을 찾는다는 글이었다. 구조자는 앞으로의 삶은 은처럼 금처럼 빛나기만 하라고 ‘은금이’라는 이름을 붙어주었다.


입양 글을 보자마자 ‘내가 저 아이의 새 가족이 되어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엄마를 잃고 죽다 살아난 녀석에게 죽지 않기를 다행이었다고 생각하게끔 잘해줘야지. 큰 결심을 안고 입양 메일을 보냈다. 입양 신청글도 글이라 쓸수록 점점 나아지는지, 아니면 나한테 올 인연이었는지 몰라도 웅이 입양 허가는 거의 바로 떨어졌다.


그렇게 웅이의 묘생에는 구조자와 입양자인 나라는 두 엄마가 개입하게 되었다. 헌데 이 두 엄마 사이에 숨은 공로자가 하나 더 있었다. 바로 우리 집 둘째 ‘리아’다. 웅이가 길에서 구조될 당시, 리아 역시 보호소에서 구조되었다. 보호소 창살 사이로 뻗은 팔을 사방에 휘저으며 우는 리아를 구조자는 그냥 두고 올 수 없었다고 한다. 당시 리아의 젖은 불어 있었다. 아마도 리아의 새끼들은 영문도 모르고 보호소에 끌려 간 엄마를 기다리다가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엄마를 잃은 웅이와 새끼를 잃은 리아는 서로를 의지하며 잘 적응해나갔다고 한다. 처음 웅이 구조자와 상담할 때 그는 ‘두 마리를 함께 데려갈 수 없겠느냐’고 물었다. 모든 게 처음인 초보 집사였기에 두 마리는 겁이 난다고, 우선 한 마리를 키우다가 나중에 둘째를 들이겠다고 대답했다. 지금은 이때 한 대답을 후회한다. 내 선택으로 인해 서로 믿고 의지하던 웅이와 리아는 다시 혼자가 되었다.


웅이가 먼저 내게 오고 리아도 곧 다른 집에 입양되었다. 헌데 웅이가 우리 집에 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리아가 파양되었다고 들었다. ‘새끼고양이를 잘 돌본다고 해서 입양했는데 안 돌본다’는 이유였다고 했다. 하소연하기 위해 전화한 구조자에게 ‘아, 뭐 그런 사람들이 다 있죠. 리아 불쌍해서 어떻게 해요’ 정도로 대꾸했던 기억만 난다.


약 1년이 지나 웅이가 성묘가 되었을 무렵, 리아 구조자에게 연락이 왔다. 리아가 세 번째 파양을 당했단다. 이번에는 20대 초반 커플이 혼전임신으로 결혼을 하게 되었는데, 예비 시어머니가 고양이를 처분하라고 했다는 내용이었다. 리아 구조자는 안정적인 임보처가 필요한데 최소 한 달만이라도 데리고 있어줄 수 있느냐고 했다.

고양이 입양을 물을 때 수많은 구조자들이 나를 ‘20대 결혼 전 여성’이라며 입양자 후순위로 미룬 이유가 이거였구나. 파양하고 임보처에 오면서 간식 한 봉지 들고 오지 않은 그들이 리아를 어떻게 대했을지 알 것 같았다. 잔뜩 화가 나서 문전박대하고 리아를 받아들였다.


1년 동안 세 번 파양당하면서 리아는 성격이 조금 변한 것 같았다. 웅이 구조자 말에 따르면 사람을 너무 좋아해서 퇴근하고 돌아오면 대문 앞까지 마중 나오고, 새로 오는 모든 손님의 무릎은 언제나 리아 차지였다고 했는데, 처음 내 자취방에 온 리아는 달랐다. 애교는 있었지만 주눅 들어 눈치를 많이 보았다. 게다가 전 집에서 다른 고양이들에게 치여 산 탓에 다른 고양이를 보면 경기를 일으켰다. 장난을 거는 웅이한테 하악질로 대답하고는 했다. 아무래도 내 반려동물인 웅이에게 마음이 갈 수밖에 없어서, 스트레스받는 리아보다 주눅 든 웅이에게 더 마음이 쓰였다.


당시에는 언제 떠날지 모를 리아였기에, 너무 정 주지 말자고 구조자가 지어준 이름인 ‘리아’를 그대로 썼다. 리아가 빨리 좋은 주인 만나 제 갈 길을 갔으면, 하는 게 당시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바람과 달리 리아의 새 주인은 1년이 지나도록 나타나지 않았다. 입양 문의조차 없었다. 입양 시기를 놓친 탓이었다. 리아는 품종묘도 아니고, 1년 미만 새끼 고양이도 아니어서 인기가 떨어질 시기였다. 함께 산 지 6개월쯤 지나 점차 몸에 살도 붙고 특유의 발랄함이 늘어나면서 점차 털도 고와지고 예뻐지기 시작했지만, 이미 세 살에 접어들었다.


당시 웅리아 구조자는 지칠 대로 지친 상태였는데,다 포기하고 미국에 있는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던 그에게 선택을 존중한다고 대답했다.


다만 그간 돌보던 70-80여 마리의 길고양이가 그의 발목을 잡았다. 게다가 아픈 개 고양이를 7-8마리 키우고 있었는데, 이 아이들은 입양 가능성도 없고, 길로 다시 내보낼 수도 없는 상황이라 안락사를 생각하고 있다고 하셨다. 그 말에 ‘잘 생각하셨어요’라고 대답했다. 모두가 포기한 아이들을 끝까지 붙잡고 있었던 그였으니까, 안락사가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내 대답을 듣자마자 그는 ‘리아도 보내주세요’라고 말했다. 그 아이들 안락사시킬 때 리아도 함께 보내주겠다는 의미였다. 예상치 못한 말에 순간 얼어붙었다. 안락사라니? 가장 예쁜 시기에 주인 몇 번 잘못 만난 이유로 입양 시기를 놓치면 남은 선택지가 이거밖에 없다는 말인가?

나보다 좋은 집에서 더 나은 환경에 리아를 보내는 것만 생각했지, 안락사는 내 예상 시나리오에 결코 존재하지 않았다. 내가 너를 어떻게 보내. 정 붙을까봐 이름도 지어주지 않았지만, 1년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다. 그 긴 시간 안에 어떻게 리아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나는 잠깐 고민하다가 다시 전화를 걸었다. 리아는 내가 키우겠다고, 안락사는 없던 일로 하시라고. 그렇게 돌고 돌아 리아가 우리 집 가족이 되었다.


많은 동물보호 단체에서 ‘사지 마세요, 입양하세요’ 캠페인을 벌인다. 이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지만, 이 부분만 강조한다면 자칫 반려동물을 한순간의 연민으로 들일 확률도 높다. 한번은 일산의 모 동물보호 단체에서 중고등학교 학생들에게 봉사활동 시간을 주고 캠페인을 벌이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이 아이들은 다음 주면 안락사 됩니다. 사지 말고 입양해주세요. 입양하지 못하면 후원해주세요”를 앵무새처럼 외치는 모습이었다. 그 말에 누군가 한순간 연민을 느껴 입양한다면 그 동물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리아처럼 1년에 세 번 파양하는 아픔을 겪고 마음의 문을 닫아버릴지도 모른다.


‘사지 마세요, 입양하세요’ 캠페인과 더불어, ‘한 번 인연을 쌓는다면 가족으로서 평생 책임져야 한다’는 책임감을 심어주는 것 또한 필요하다. 책임감 관련 캐치프레이즈를 만든다면 리아처럼 몇몇의 호기심 때문에 가장 예쁘던 시기를 놓치고 장기 임보를 전전하는 사례가 줄어들 수 있지 않을까.


리아를 너무 늦게 받아들인 것을 후회한다. 처음부터 기꺼이 두 녀석을 함께 들였다면 리아에게서 웅이를 뺏는 아픔과 새 가족들에게 거부당하는 기억을 줄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웅이에게도 믿고 의지하던 고양이 엄마와 사람 엄마 둘이 생기는 셈이었을 테고. 내가 리아에게 준비된 사람이었다면 웅이 때처럼 고심에 고심을 거듭해 가장 어울리는 멋진 이름도 지어주었을 텐데. 여러모로 너무 늦은 선택으로 힘들게 해서 녀석에게 미안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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