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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나스타시아 May 01. 2020

섣부른 충고에 상처받지 말자

신뢰하는 병원과 함께하는 행운


림프종으로 의심될 때만 해도 항암이 잘 받는 편이니 너무 좌절하지 말라던 선생님은, 비만세포종 판명을 받은 이후 달라졌다. 편히 보내주는 과정으로 생각하라던 항암을 이번에는 ‘추천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셨다. 여기저기 수소문해 방사선 치료도 따로 알아보셨는데, 이미 비장에서 간으로 전이된 상황에서는 부정적이라고 전했다. 수술적인 치료도 마찬가지. 그럼에도 치료할지 아니면 스테로이드로 약으로 상태를 조절하며 편히 보내줄지 결정해야 하는 순간. 우리는 후자를 선택했다. 되도록 리아가 스트레스 덜 받으며 편하게 떠났으면 싶었다.

몸이 너무 작아진 리아

우리는 천천히 이별을 준비했다. 평안했던 며칠이 지나고, 우리의 결정을 병원에 알렸다. 선생님은 당황한 눈치였다. 리아 병명 받고 난 뒤에 치료방법을 찾아 논문을 뒤지던 참이라고 하셨다. 아직 방법이 몇 가지 있다고, 병원에 방문해 이야기를 나누자고 했다. 이미 결정하셨는데 혼란스럽게 해서 죄송하다는 말은 들리지 않았다. 방법이 있다고? 다시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선생님은 영어 논문 자료 하나를 보여주었다. 비만세포종이 발병한 고양이가 비장 제거 수술 후 생존한 평균 날짜가 기록되어 있었다. 간 전이가 없으면 520일, 식욕 부진이 있었으면 244일, 피부의 비만세포종이 비장까지 전이되었으면 100일... 선생님 말로는 비장 제거 수술 후 2년까지 산 기록도 있다고 하셨다. 리아는 간 전이가 있으니 그 정도를 바랄 수는 없지만 다행히 림프종 전이가 없기 때문에 말씀드리는 거라고, 못해도 3개월에서 1년은 기대한다고 하셨다. 주말 동안 내내 고민하고 수술을 집도하는 원장 선생님과 수차례 논의했다고 하셨다.

선생님이 보여준 논문 자료. 증상에 따른 생존 가능 기간이 적혀 있다


물론 모든 말들이 희망적이지는 않았다. 또 한 번의 전신마취로 리아의 남은 체력을 소진시킬 수도 있고, 수술하다가 쇼크사한 사례도 있으며, 수술 이후에도 약을 달고 살고 백혈구 수치 등을 수시로 체크해야 하고, 간 전이는 계속 안고 가는 삶이다. 어떤 지점이 리아에게 더 좋을지 빨리 결정해야 한다. 그럼에도 담당 선생님께 고마웠던 것은, 내가 포기한 순간에도 이분은 리아를 포기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리아의 브런치 글을 3만여 명이 읽어주고 응원의 댓글을 달아주었다고 감격했지만, 나는 그 감격만 가져갔을 뿐이다. 결국 끝까지 리아의 가능성을 고민한 사람은 우리 선생님 아니었을까. 이분이 리아를 맡아주셔서 다행이다.


혈액암 악성림프종을 이겨낸 허지웅은 예능 ‘나 혼자 산다’에 출연한 적이 있다. 그의 인터뷰가 인상적이었다. 암에 걸렸다고 하면 누구는 무슨 음식이 좋다고 하고, 누구는 어디어디 병원에 유명한 누구에게 가라고 하고, 누구는 무슨 약초 달인 물을 먹으라고 하고 등등 수많은 조언을 건넨단다. 그러나 정작 치료에 가장 도움이 되었던 것들은 ‘병원에서 시키는 대로만 하면 낫는다’는 믿음과 실제로 그렇게 해서 이겨낸 사례였다고 한다. 주변 말들에 흔들리지 말고 자신과 병원을 믿으라는 것이다.

리아 역시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당장 큰 병원으로 옮기라는 조언부터, 자꾸 입원시키지 말고 빨리 보내주라는 충고까지 수많은 제안들 앞에 우리는 속수무책이었다. 병명이 IBD에서 림프종으로, 다시 비만세포종으로 옮겨갈 때, 그들의 조언들이 내 안에 의심의 씨앗으로 남아 뿌리를 내렸다. 이유를 충분히 설명받았고, 치료진들을 신뢰하고 있음에도, 좌절과 선택의 순간마다 '설마'라는 의심이 고개를 들었다.   


생각해보면 충고한 그들이 얼마나 우리를 잘 알겠는가. 리아의 상태는 나와 내 담당의가 가장 잘 안다. 나는 리아의 증세와 아침저녁 밥 먹는 양을 그램 수로 체크해 일지로 기록하고 있고, 내 담당의는 리아의 지난 몇 개월간 리아를 지켜보고 이렇게 주말까지 치료를 고민해주었다. 병원 간호사들은 내가 입구에 들어서면 바로 알아보고 ‘리아 보호자 님 오셨어요’ 말 걸어주고, 리아 비만세포종 판명 났을 때 비타500을 건네주며 ‘힘내세요’ 응원해주었다. 나는 이런 의료진들과 내가 좀더 리아 편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걱정한다고 건네는 모든 말이 피와 살이 되는 것은 아님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리아를 수술시킬지 아니면 편히 보내줄지 아직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수술해도 3개월, 하지 않아도 3개월이라면 하지 않는 편이 나을 테니까. 어려운 선택 앞에서도 고마운 부분은, 최선의 선택을 위해 끝까지 고민해주는 의료진과 함께한다는 사실이다. 그것이 리아와 나에게 얼마나 큰 선물인지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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