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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나스타시아 Apr 26. 2020

둘째 고양이의 아픔을 질투하는 첫째 고양이

고양이 두 마리를 키운다는 것

어릴 적 내 동생은 몸이 약했다. 출생 당시 엄마 뱃속에서 숨이 터지는 바람에 양수를 먹은 탓이었다고 한다. 갓 태어난 아기는 곧바로 서울에 거주한 큰 병원으로 옮겨졌고, 한 달 만에야 집으로 올 수 있었다. 아빠는 종종 동생을 살리는 데 집 두 채 값은 거뜬히 들었다고 했는데, 과장이 섞였겠지만 일말의 진실을 담은 말이었다.


갓 태어난 아기와 생이별한 엄마의 마음이 어떠했는지 나는 짐작할 수 없다. 두 살 터울의 아기에게 부모의 관심을 빼앗긴 첫째의 심정만 기억할 뿐이다. 동생을 향한 최초의 기억은 엄마를 사이에 두고 “중철이가 좋아, 아니면 내가 좋아”라고 물었던 순간이다. 엄마는 나란히 서서 선택을 기다리는 두 아이 모두를 동시에 가리켰다. 나는 곧바로 엄마를 앞뒤로 둘러싼 다음에 다시 고르라고 화를 냈다. 그 순간에도 선택받고 싶었던 어린 누나는 동생을 엄마 등 뒤에 세우고 자신은 앞에 섰다. 엄마의 한손은 나를 향했지만, 다른 한 손이 뒤에 선 동생에게 향하고 있음을 나는 보았다.


기억 속 어린 동생은 매일같이 쓴 한약을 먹는 모습이 대다수를 차지한다. 나는 한약을 먹기 싫다고 우는 동생을 안쓰러워하기보다는 약 먹은 다음에 받는 보상인 달콤한 초콜릿을 부러워했다. 엄마에게 자꾸만 ‘나도 한약 잘 먹을 수 있다’고 떼를 쓴 덕분에 보약도 몇 번 지어 먹었다. 떼쓰는 첫째 때문에 난감해하던 엄마는 냉동실에 초콜릿 한 상자를 놓아두고 두 아이 모두에게 한 조각씩 꺼내주는 것으로 타협을 보았다. 하루 열두 시간씩 밖에서 일하는 엄마였기에 그 냉장고 속 초콜릿을 탐하는 아이들의 손길을 제지할 수 없었고, 덕분에 내 치아는 그때 다 상해버렸다.


비만세포종 진단을 받은 리아는 앞으로 길면 6개월 남았다고 한다. 이번 가을을 함께할 수 있을까. 겨울에 뜨끈한 보일러에 등을 지질 수 있을까. 이런저런 생각에 마음이 무거워지고, 며칠이라도 더 살았으면 하는 기대와 아프지 않게 갔으면 하는 바람에 흔들리는 나날이다. 어제 먹던 캔을 오늘은 안 먹고, 잘 적응하던 사료도 거부하는 바람에 매일 일희일비한다. 한번은 아침 6시에 근처 24시 동물병원에 달려가 로얄캐닌 베이비캣을 사왔다. 새끼고양이 전용 사료인 베이비캣은 웬만한 고양이라면 다 좋아한다. 일반 고양이는 비만이 될 확률이 높아 급여를 자제하지만, 리아에게는 입맛을 찾고 체중을 늘리는 편이 더 중요해 생각해낸 고육지책이다. 그마저도 10그램 정도 먹으면 입을 딱 닫는데, 한번에 15그램 먹어주면 신이 나고 5그램밖에 안 먹으면 마음이 덜컹 내려앉고 다음에는 무엇을 급여해야 먹어줄지 머리를 굴린다.

리아 먹는 로얄캐닌 베이비캣 웅이도 먹고 싶다


리아를 향한 관심이 하루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요즘이 첫째 고양이인 웅이는 마음에 안 드나 보다. 원래는 리아와 함께 레슬링도 하고, 서로 핥아주는 등 친밀한 편이었는데, 몸이 안 좋아진 리아가 웅이를 거부하니 자연스레 혼자가 된 탓도 크다. 모든 관심과 애정이 주 양육자인 나에게로 향한 상태에 정작 나는 다른 곳을 보고 있으니, 불편한 그 마음이 이해는 간다.


애정이 고픈 웅이는 최근 관심을 얻는 새로운 기술을 익혔다. 전에는 울다가 눈이 마주치면 배를 뒤집는 정도의 애교였다면, 요즘에는 더 나아가 앞발을 이용해 지나가는 내 다리를 붙잡아 보기도 하고, 입질을 하며 가지 말라고 드러눕는다. 발길을 멈추고 그 자리에 쭈그리고 앉아 쓰다듬으면 그제야 조금 진정한다. 그 모습이 자꾸만 ‘동생과 나 가운데 선택하라’며 울고 떼를 쓰던 어린 시절의 나를 보는 것만 같다. 웅이가 안쓰러우면서도, 제발 너만이라도 의젓하게 있어주었으면 싶기도 하다. 어린 나를 바라보던 엄마의 심정이 이런 마음이었을까. 마음이 온통 리아에게 가 있으면서도 웅이가 안쓰러워 또다시 마음이 내려앉는다.

특식 먹는 리아 뒤에 줄 선 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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