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한 불행 안에서 발견한 희망

항암 2차전

by 아나스타시아

정상세포는 놔두고 암세포만 따로 공격하는 항암제인 토세라닌은 리아에게 식욕부진과 구토, 침흘림 등을 유발했다. 밥을 안 먹겠다는 리아와 입을 억지로 벌려서라도 먹이는 나의 실랑이가 며칠간 이어졌고, 이 때문에 우리는 조금씩 불행해졌다. 리아에게 먹으라고 화도 내고 손가락으로 사료를 리아 입에 우겨넣기도 하고, 손바닥에 캔을 올려놓고 무릎 꿇고 애원하기도 했다. 서로 아끼고 사랑하기에도 모자란 시간인데, 눈만 마주치면 도망가고 쫓기 바쁜 지금이 원망스러웠다. 리아 생애 마지막을 이렇게 보내야 하는 건가. 정말이지 그러고 싶지 않았다. 나는 우리의 존엄한 이별을 위해 토세라닌 먹이기를 포기하기로 했다.


“아무래도 항암약은 그만두어야 할 것 같네요.”


분명 존엄한 이별을 위해 약을 포기하기로 했건만, 선생님의 최종 결정을 들으니 또 어찌할 줄 모르는 심정이 되어버렸다. 선생님의 말이 꼭 이제 리아를 포기하겠다는 선언으로 들렸기 때문이다.


“혹시 다른 방법은 없나요?”


간곡한 내 청에 리아 수의사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이 항암약은 리아만 먹는데, 리아가 일주일 만에 약을 포기했으니 4개월치 약이 전부 재고로 남은 상태라고. 언제 쓰일지 모를 약을 가지고 있는 어려움을 말씀하셨다. 지금 다른 항암약을 실험해서 또 재고로 남으면 타격이 있다는 고백이었다. 리아가 병원을 들락거린 지 6개월째. 사정을 아는 선생님 덕에 병원비도 계속 할인받는 중이었는데, 재고까지 떠안게 했으니 몸 둘 바를 모르는 심정이었다. 선생님의 솔직함에 나도 더는 ‘다른 방법’을 물어볼 수 없었다.


곧바로 수그러드는 내가 측은했던 것일까. 선생님은 한 가지 전통적인 약이 있다고, 토세라닌만큼 최신 약은 아니지만, 잘 들으면 그에 준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토세라닌에 부작용이 있었다면 얘도 마찬가지일 확률은 높지만, 적어도 테스트해보고 정량을 살 정도의 약은 남아 있다 하셨다.


예전에 다른 아이가 먹던 재고 약으로 우선 테스트해보자고 권하셨다. 대신 테스트가 끝나면 약 한 통을 통째로 구매해줬으면 한다고, 4개월치인데 카피 약은 240만원, 정품은 480만원이라고. 그래도 하시겠냐고. 난 테스트하겠다고 대답했다.


지난주는 테스트 시기였다. 이틀에 한 번 먹이면 되는 토세라닌과 달리 이 약은 매일 먹여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다. 그래도 리아와 좀더 오래 함께하려면 이 길밖에 없다는 생각에 지난번보다 좀더 열심히 리아를 달랬다. 속쓰림이 있을 수 있다는 권고하에 약 먹이는 패턴을 만들어봤다.


우선 구토억제제가 포함된 일반 약을 먼저 먹이고, 이후 베이비캣 사료를 양껏 먹인 다음, 곧바로 항암약을 먹인다. 혹 항암약에 속쓰려 토하지 않게 바로 영양제를 섞은 액체형 간식을 제공한다. 이 패턴을 매일 유지했더니 다행히 테스트 2주를 무사히 넘겼다. 2주 만에 간 병원에서 혈액검사를 행한 결과 부작용은 나타나지 않았고, 선생님은 “계속 먹여도 될 것 같네요”라는 긍정적인 메시지를 주셨다. 이제 한 달 뒤에 오라는 말씀에 어두웠던 하늘이 맑게 갠 느낌이었다. 올해 초부터 지금까지 짧으면 매일, 길면 2주에 한 번씩 오가던 병원 신세였기 때문이다. 한 달간 병원 탈출이라니, 이제 항암 2차전에 돌입한 느낌이랄까.

리아의 한달치 약봉지


리아의 한 달치 약을 받아 안고 집에 오는 길에 자꾸 콧노래가 나왔다. 달뜬 마음이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리아야 장하다, 진짜 잘했다, 역시 우리 리아 최고다.” 아무것도 모르고 허겁지겁 사료를 먹는 리아에게 자꾸만 칭찬을 건네었다. 네가 살려고 하는 한 나는 너를 포기하지 않을 테다, 다짐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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