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인과 둘째 고양이 리아가 동시에 암으로 병원에 입원했을 때, 나는 첫째 웅이를 껴안고 종일 집에 누워 울기만 했다. 가족이 둘이나 아프지만 또 나는 아픈 당사자는 아니니까 회사에는 나가야 했다. 일이 될 리가 없었다. 회사 탕비실에서 물 뜨다가도 울고, 점심 먹고 사람들과 카페에 둘러앉아 하하호호거리다가도 울고, 컴퓨터 앞에 앉아 타자를 치다가도 울었다. 나중에는 아무도 없는 빈 공간을 찾다가 회사 옥상에 올라가서 울었다. 그때는 누가 ‘지은 씨’라고 말만 걸어도 수도꼭지 튼 것처럼 눈물이 쏟아졌다. 우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는 며칠이었다.
그러다 문득 이럴 게 아니라 집으로 돌아올 가족을 위해 정신을 차려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내가 중심을 잡지 않으면 우리가 가꾸어온 모든 것이 무너질 수 있다는 두려움이었다. 그때부터 집을 치우고, 고추장에라도 밥을 비벼 먹고, SNS 계정에 리아와 반려인 관련 글을 쓰기 시작했다. 힘을 내고 싶었고, 우리를 아는 이들에게 기도와 힘을 받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다.
힘듦을 SNS 계정에 공개할수록 고통에서 조금씩 벗어났다. 암 수술을 잘 이겨내준 둘 덕분이고, 또 글을 읽고 기도해주고 다독여준 이들 덕분이었다. 신기한 점은, 아는 이들이 지레짐작으로 다는 댓글, 힘내라는 두루뭉술한 댓글보다 오히려 얼굴도 모르는 이들의 진심 어린 댓글에서 한없이 위로받는 날이 더 많았다는 사실이다. 특히 ‘본인 또는 지인의 회복 케이스’를 설명하며 반려인이나 리아도 곧 나을 거라는 희망의 글들 앞에 눈물짓는 날이 많았다.
그때부터 주변을 돌아보기 시작했다. 몇 년 전 감상선 암으로 수술했던 언니 A와 친구 B, 유방암 수술을 받은 지인 C 등. 그들이 SNS에 글을 올렸을 때 내가 하트와 ‘힘내요’ 이모티콘 하나로 퉁치고 지나갔던 많은 경험이 머릿속에 차례차례 떠올랐다. 그들의 어떤 두려움으로 그 글들을 남겼는지 이제야 알아챈 것이다. 잡아달라 내민 손을 제대로 들여다보지도 못했구나 싶었다.
댓글 하나 제대로 달지 못한 이유는 있었다. 종종 위태로워 보이는 글에 말을 얹으려다가도 ‘실수하면 어쩌지’ 싶어 쉽게 말 한마디 쓰지 못하고 창을 닫아버리곤 했던 것이다. 실제로 나 역시 우리 상황을 쉽게 판단하고 지레짐작해 던지는 말들에 상처받은 날이 많았다.
그럼에도 반려인이 아프고, 리아가 병들면서 종종 그 닫아버린 댓글 창을 생각하게 되었다. 안면도 없는 이들이 내 계정에 들어와 한없이 마음을 보내줄 때, 먼저 암을 겪은 이들이 걱정어린 전화를 걸어줄 때, 나는 내가 건네지 못했던 위로의 말들을 떠올리게 되었다. 그때 나도 이들처럼 짧은 한마디라도 건네줄 것을, 힘들어도 밥 잘 먹으라는 따뜻한 말 한마디면 되었을 텐데. 나는 어리석어서 늘 이렇게 한 박자씩 늦는다.
늦게라도 고마웠던 이들에게 밥을 먹이고 감사의 인사를 건네기 위해 오늘도 집으로 사람을 초대한다. 반려인과 나는 북한산 아래로 이사하면서 우리 집을 ‘북한산 음식점’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서툴러서 건네지 못했던 위로의 말을 소박한 밥 한 끼로 대신하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