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그러운 페와호수로!
제주도로 가족여행을 다녀왔다.
입사한지 1년 반만의 첫 휴가여서 무척 기대가 컸다. 펜션 사장님이 가이드 겸 렌트카 운행을 했는데 어찌나 다혈질인지 3박 4일 내내 살얼음 위를 걷는 기분이었다. 고집 세고 제 멋대로인 사장님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 하루하루를 간신히 버텨야했기 때문이다. 총무 자격으로 보조석에 앉아 사장님의 비위를 맞추기 바빴던 나는 여행이 끝나는 날 10여년 전에 다녀온 인도를 떠올렸고, 비로소 마음이 편안해졌다.
인도는 동경의 나라였다.
20대 초반.
류시화의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을 읽고부터 쭉 그랬다. ‘노 프라블럼!’이 입에 밴 인도인들의 종교와 사상이 궁금했고 그들의 실제 삶이 정말 그러한지 확인해보고 싶었다. 모든 것에 초월한 듯한 삶의 태도가 가능키나 한 일인지 너무 궁금했다.
30대 초반.
한달 여정으로 인도 여행을 갔다. 10년동안 품고 있던 인도에 대한 환상을 그대로 간직하고 길을 떠났다. 하지만 인도의 첫 인상은 공항에서의 역한 카레냄새로 시작되었다. 덥고 더럽고 냄새나는 인도의 공항은 10년의 동경을 단숨에 후회로 꺾어버렸다.
첫날 묵은 3성급 호텔은 한국의 오래된 여관보다 못한 곳이었고 침대 위로 바퀴벌레가 돌아다니는 걸 보고 잠을 한숨도 못 잤다. 다음날 아침, 긴 빗자루로 청소 대신 골목에 먼지만 풀풀 날리는 노파가 그렇게 꼴보기 싫을 수가 없었다. 그래도 딱 하나 희망이 있었다. 바로 바라나시 강이다. 바라나시는 삶과 죽음을 모두 포용하는 전설의 강이 아닌가!
아침 일찍 숙소에서 나와 강으로 가는 택시를 잡아 탔다. 택시기사는 까맣고 깡마른 중년 남성이었는데 바라나시 강가로 가자고 하자 “노 프라블럼!”을 외쳤다. 인도에 와서 처음 들어보는 노 프라블럼이었다. 왠지 믿음이 갔다. 차로 10분이면 도착하는 거리라고 해서 여유있게 풍경을 감상했다. 그런데 10분이 지나고 20분 가까이 시간이 지났는데도 강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아직 멀었냐고 묻자 인도인 기사는 “노 프라블럼!”이라고 답했다. 이때 알았어야 했다. 노 프라블럼은 문제를 벗어나는 말이 아닌 문제의 중심에 있는 말이라는 걸…
강가에 도착한 건 그로부터 한시간 후.
그 사이에 들은 노 프라블럼은 열번도 넘는다. 진정한 노 프라블럼이 있기나 한 걸까?
함께 배를 타기로 한 일행들은 벌써 배에서 내려 강가를 관광 중이었다. 나만 홀로 뒤늦게 배를 타고 강 위에서 저 멀리 타들어가는 시체의 연기를 보았다. 근처에서 얼굴까지 물에 담갔다 나오는 인도인들도 목격했다. 도대체 이 곳은 어떤 곳인가? 이들은 누구인가? 알 수 없고 썩 좋지 않은 기분으로 숙소로 되돌아갔다. 이번엔 걸어서…
이뿐만이 아니다.
우체국 가는 길이 얼마나 먼지… 알고보니 골목 하나만 지나면 있는 곳을 동네를 뱅글뱅글 돌아 30분만에 갔다. 만나는 사람마다 다른 길을 알려주는 바람에. 그들의 순진해 보이는 표정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그들은 나를 놀리려고 한 것도 길을 몰라서도 아니고 자신이 다니는 아는 길을 알려줬을 뿐이라는데 지금 생각해도 납득이 안 된다. 코 앞에 있는 우체국 가는 길이 왜 다 제각각이냐 말이다.
먼지로 치장한 길거리 음식을 먹고 석회질이 풍부한 수돗물을 마신 후 끝나지 않는 설사를 달고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워 있어야 했던 날, 인도에 대한 환상은 털끝만큼도 남아있지 않았다. 벗어나고 싶은, 다시는 오고 싶지 않은 곳이 되어 버렸다. 그렇게 보름이 지났다.
인도에서 네팔로 넘어갔다.
네팔이 내전 중이어서 길에서만 이틀을 보내며 노숙을 했지만 히말라야가 보이는 도시 ‘포카라’에 도착하자마자 모든 피로와 근심이 녹아내렸다. 특히 포카라의 페와호수는 꼭 다시 가보고 싶은 아름다운 호수였고 그곳에서 인도에 대해 쌓인 그 간의 미움이 모두 사라졌다.
페와호수를 바라보며 멍하니 앉아 있던 아침.
지나가는 자동차의 경적소리마저 교향곡의 한 음처럼 조화롭게 들리고, 찰랑이는 물이 돌에 닿는 소리,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소리, 호수에 비쳐 가늘게 흔들리지만 여전히 웅장한 히말라야의 능선. 이 모든 아름다운 풍경이 같은 자리에서 같은 모습으로 있었다는 생각을 하니 ‘그걸 바라보는 내가 다른 것이지 그것들은 항상 같았다는 통찰’을 하게 된 것이다.
인도와 인도인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달라진 것이 없다. 천년이 넘는 세월을 버텨온 종교와 함께 살아온 그들이다. 그들 신앙의 뿌리가 그리 깊으니 그들의 삶을 겉모습만 보고, 잠시 만나보고 판단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들의 사상에 깊숙히, 상상도 못할만큼 깊숙히 박혀 있는 근원을 함부로 평가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들을 보는 나의 시선만 바뀌면 된다. 그들은 늘 그 자리에 그대로 있을테니!
종교적인 신념이 아니라 하더라도 사람들에게는 각각의 삶을 지배하는 신념이 있고 그걸 중심에 두고 살아간다. 단 몇 번의 경험만으로 그들의 삶을 판단하고 선입견을 갖지 말아야할 이유이다.
제주도 펜션의 사장님은 20년을 그곳에 살며 자기만의 방식으로 가이드를 해 온 사람이다. 본인이 닦아온 길에 자부심이 있는 사람인 것이다. 자랑할 거리가 많고 조금도 욕 먹을 짓을 하지 않으려 노력하는 사람이다. 여행객이 자신의 틀을 흔들고 깨는 요구를 하는 걸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유연함이 부족하다. 제주도에서 살아남기 위해 포기한 것들과 견고히 다져온 것들로 꽁꽁 다져진 상태이니 말이다. 어쩌면 그가 말하는 “이래라 저래라 하는 사람이 제일 싫다.”는 말이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그에겐 그만의 세상이 있는 거니까!
3박 4일 동안 사장님을 미워했지만 그러면서도 그를 이해하기 위해 부던히 노력했다. 여행이 끝나고 일상으로 돌아오니 복잡했던 머리가 단순해진다.
‘어쩌면 나도 그럴 수 있다!’
오래 살면 살수록 자기만의 사고를 뜯어 고치기가 어렵다. 어쩌면 나도 그럴 것이다. 고집 부리는 타인을 욕할 일이 아니다. 여행을 다녀오더니 착해진 것 같다고, 말투가 온순해진 것 같다고 부장님이 좋아하셨다. 내가 먼저 변화하는 삶을 조금씩 실천해보려고 한다. 그게 편견이 맞서는 나만의 방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