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용이 승천하는 꿈에 걸맞게
내 꿈은 용이 되는 것이었다. 용이 되어 훨훨 날고 싶었다.
어릴 적 집 근처엔 방죽(물 웅덩이)이 있었고 방죽을 끼고 네 갈래 길이 있었다. 집으로 가는 길, 친구 집으로 가는 길, 학교 가는 길, 목장 가는 길. 사거리에 서서 어디로 갈지 선택을 해야 하는 게 가장 큰 고민거리였다. 고민이긴 했지만 행복한 고민이었다. 선택지가 모두 놀이터였으니까.
어느 늦은 저녁, 친구 집에서 나와 집으로 가는 사거리에 서서 하늘을 올려다봤다. 별이 빼곡한 밤하늘이 예뻐 빙글빙글 돌며 별을 세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도는 건가? 내가 없어도 세상이 존재할까?
중학생도 되지 않은 어린 나이였는데 왜 그런 진지하고 심오한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날의 기억은 지금까지도 생생하게 남아 내 삶을 지배하고 있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엄마한테 태몽에 대해 들었다. 언니 오빠들과는 달리 어마무시한 태몽이었다. 용이 승천하는 꿈이었는데, 용이 무려 두 마리란다. 그 말을 듣자마자 '내가 보통 사람은 아니겠구나.'라고 굳게 믿었던 것 같다. 어디서 그런 밑도 끝도 없는 믿음이 생겼는지 참 의아하다.
그때부터 난 용이 되기로 했다. 나를 중심으로 도는 세상 안에서 자유롭게 뜻을 펼치는 위대한 용이 되기로!
가난해서 책을 구하기 어려웠던 엄마는 자식들만큼은 원 없이 책을 읽게 하고 싶다며 방 안을 책으로 꽉꽉 채워주셨고, 덕분에 장르를 가리지 않고 책을 읽으며 컸다. 그래서인지 책을 쓰는 사람, 즉 작가가 되는 게 용이 되는 길이라는 자연스러우면서도 어거지같은 결론을 내렸다.
용이 되기 위해 작가가 되기로 한 것이다.
백일장에 몇 번 나갔지만 한 번도 상을 받아보지 못했다. 대학 논술 시험에서도 낙방했다. 대외적으로 글을 쓴 건 중학교 때 학급문집에 실은 시 한 편(시 제목은 '포장마차’였다)과 고등학교 때 성당 연합 행사에 올린 뮤지컬 대본이 전부다. 다행히 국어국문학과에 들어가기는 했다. 전혀 싹수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작가의 꿈을 포기하지 않았더니 기회가 왔다. 졸업 후 대학 선배의 소개로 방송작가에 입문한 것이다. 그렇게 작가 타이틀을 달았다!
꿈꿔왔던 작가의 세계와는 달랐지만 그래도 '작가님'으로 불리는 게 프라이드가 됐다. 왠지 모를 허전함이 있었지만 '기분 탓이겠지.' 하며 넘겼다. 허전함 90, 프라이드 10이 되는 시기가 오면서 방송작가를 그만뒀다.
가끔, 왜 글을 쓰고 있고 작가가 되려고 하는지 묻곤 한다. 글을 쓰다 보니 작가가 되는 것과 작가가 되기 위해 글을 쓰는 것은 엄연히 다른 문제다. 내 우선순위는 뭘까? 쌍용이 승천하는 태몽을 꾼 엄마의 기대에 부응하는 자식이 되고 싶었던 걸까? 작가가 되는 게 운명이라고 진심으로 믿고 있나? 글 쓰는 게 즐겁긴 한가?
자판을 두드리고 있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글을 쓰고 있는 건지...
그림 : 조카 태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