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써글…
오랫동안 글을 써왔지만 글쓰기가 나를 힘들게 한 건 최근이다.
방송, 영화, 드라마까지 온갖 작법 수업을 듣고, 작법서란 작법서는 모조리 씹어 삼켰지만 글을 쓴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무지했던 게 사실이다. 그야말로 씹어 삼키기만 했지 소화를 못 시킨 셈이다.
마지막으로 작법 수업을 들은 건 드라마 작가 과정이다. 정말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수업에 임했고, 꽤 잘 해내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2년 정도 드라마를 써보니 그동안 내가 알고 있던 글이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글'이 '른'으로 보이고, 머리에 지진이 나기 시작했다.
그동안 뭘 쓴 거지? 내가 쓴 게 글이 맞나? 누구를 위한 글쓰기였지?
왜 이런 생각을 했냐면, 드라마 안에 '사람'이 없다는 걸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사람이 작법서에서 말하는 캐릭터나 인물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이라는 걸 알아버렸다.
드라마에 나 자신이 웬 말이냐고 하겠지만 그냥 하는 말이 아니다. 나를 알아야 사람을 쓸 수가 있다. 글 안에 내가 없으면 글은 그냥 '글'로 남는다. 드라마가 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드라마에 내가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될까?
나를 깨부숴야 한다.
내 치부를 들여다봐야 한다.
나를 용서해야 한다.
그렇게 나를 알아가고 이해하고 마침내 용서해야 드라마에 나를 녹여낼 수 있고, 비로소 사람이 보인다. 이걸 하기 위해서 나를 끄집어내는 작업을 시작했다.
과거에 가장 떠올리고 싶지 않은 한 순간을 끄집어내서 그때 내가 느꼈던 감정을 솔직하게, 치가 떨리도록 솔직하게 적어나간다. 그렇게 한 자 한 자 써 내려가다가 딱 멈춰지면 그때부터가 진짜 시작이다. 그전까지는 겉으로만 드러난 감정이고 멈춤부터가 드러내고 싶지 않은 속마음이다. 그걸 끄집어내려면 온갖 변명과 핑계를 다 갖다 버려야 하는데 그게 쉽지가 않다. 나를 합리화하는 그 녀석들을 뿌리치면 '날 것' 그대로의 내가 보일까 봐 두렵기 때문이다.
내 얘기를 잠깐 하자면, 떠올리고 싶지 않은 순간 중 하나로 실연의 상처를 끄집어냈다. 이별을 통보받은 그날 어떤 마음이었는지... 온갖 변명과 핑계를 다 걷어내니 진짜 속마음이 보였다. 픽 바람소리와 함께 헛웃음이 났다. 그때 난 아팠다기보다는 짜증이 났던 것 같다. 헤어지자는 말을 듣자 미래의 계획이 틀어져 버렸다는 게 화가 났다. 말로는 그놈을 얼르고 달래며 마음을 돌리려고 했지만 실상은 그게 아니었던 거다. '내 계획을 니가 망가뜨려? 이런 썩을...'
하아... 그걸 알아버리고 나니 어이가 없었다. 내가 정말 그를 사랑하긴 한 건가?라는 의구심이 들고 그와 만났던 4년의 시간과 뜬 눈으로 지새운 밤들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나를 깨부숴서 치부를 들여다보니 나를 용서하기가 더 어려워졌다.
나를 버린 그놈을 그토록 원망하며 살아왔는데... 고작 내 이익에 반하는 그놈의 행동에 화가 났던 거라니... 내 안의 실체와 마주하자마자 나는 다시 문을 걸어 잠갔다. 도저히 용서가 안됐다.
겨우 드라마일 뿐인데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하겠지만 나에겐 그 숙제를 풀지 않는 한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가 없었다. 드라마가, 글쓰기가 과정으로 남아 있는 건 아직 숙제를 풀지 못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