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치여서 다행이다

헤매 본 사람만이 담을 수 있는 풍경이 있다!

by 다시봄

벌써 보름이었다.

익숙해질 만한 시간이었고 화살표만 따라가면 되었다. 하지만 20분을 걸어 도착한 곳은 어젯밤 묵었던 알베르게(순례자 숙소)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이었다. 가야 할 곳과 반대 방향으로 걸어가 화살표도 없는 엉뚱한 언덕 위로 올라간 것이다.


‘또... 길을 잃었네.’


새벽 4시. 아직 어둠에 갇힌 마을을 멍하니 바라보는데 의외로 밝은 게 이상해 하늘을 올려다봤다. 거대한 별 하나가 잘게 부서져 흩어진 것처럼 하늘을 꽉 채우고 있었다. 별들이 다시 뭉치기 위해 대화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멀리 풍력발전소의 웅장한 풍차들조차 작아 보이게 만드는 신비한 풍경. 길을 잃었다는 걸 잊고 넋을 잃었다. 산티아고 가는 길 위의 혼타나스(Hontanas). 그 아름다운 풍경을 매일 감상할 풍차들을 시기하는 마음으로 바람의 마을을 온전히 담아왔다.




늘 그랬다. 계속 걸었는데 그 길이 가려던 길이 아니었다.

그래서 고민하고 좌절하고 다시 일어서는 걸 반복했다. 아무도 떠민 사람이 없는데 걷고 또 걸었다. 그러는 동안 길을 잃지 않았으면 보지 못했을 세상과 사람들을 만났다.


글을 쓰면서 헤매기 시작한 게 스물넷에 방송작가가 되면서부터니까 벌써 20년이 넘었다.

서른에 영화 시나리오를 썼고, 서른일곱에 소설을 끄적였고, 마흔이 넘어 드라마 교육원에 다녔다. 목적지와는 반대방향으로도 걷고 너무 많이 걷다 지치기도 했던 산티아고 가는 길에서처럼 작가가 되기 위해 걸어온 길 위의 나는 철저히 혼자였고 아무도 대신 걸어주지 않았다.


머무는 동안에는 몰랐지만 지나고 보니 모든 곳이 배움의 장소였다.

방송작가로 일하면서 글을 빨리 쓰고 쉽게 쓰는 법을 터득했다. 터득이라기보다는 습관이 됐다고 말하는 편이 낫겠다. 늘 시간에 쫓기는 방송 환경 덕에 3시간 걸리는 원고 작업을 30분 만에 후다닥 써내고, 열다섯 살도 이해할 수준의 문장을 써야 했다.

영화를 공부하면서는 순간순간 떠오르는 영감을 붙잡는 법을 알게 됐다. 친구들의 말 한마디, 지하철 광고, 술집의 풍경, 연인을 만날 때의 떨림까지 모든 게 글감이 되었다.

소설을 쓸 땐 등장인물 즉 주•조연, 엑스트라까지 모두 주인공임을 알게 됐다. 누구나 소중하고 한없는 자기만의 삶이 있다는 것을! 백수를 자처하고 250권의 문학전집을 반복해서 읽으며 대문호들과 대화를 시도했던 2년간의 공백기는 '0(공)'이 '100(백)'이 되는 시간이었다.

드라마를 쓰면서 사람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했다.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사람이 우선이어야 한다는 걸 깨달았고 그때부터 사람 연구를 시작했다. 그 시작점은 나를 아는 것이었다.


여기저기 쑤시고 다니다가 지금은 에세이를 쓰고 있다.

여기는 종착지가 아니다. 또 헤매는 중일 거다. 그래도 괜찮다. 이곳에서 뭘 배우게 될지 궁금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배운 걸 어디에서 쓰게 될지 알 수 없지만 배운 건 반드시 빛을 발한다는 것도 알게 됐다.




나는 글 길치, 글치다.

어느 방향이 맞는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잘 모른다. 그저 걷고 또 걸을 뿐이다. 왔던 길이면 되돌아가고 안 가본 길이면 기꺼이 걷는다. 남들이 잘 가지 않는 길을 가느라 지칠 땐 길 위의 풍경을 감상했다. 그렇게 다양한 세상을 내 속에 담았다.


지금은 글치만의 특권을 누리며 살고 있다.

글치여서 할 수 있는 고민과 그 길을 통해 배운 삶의 이면과 나 자신과의 만남!

내가 누린 특권이 작은 이정표가 되어 글치들이 단 한걸음만이라도 자신 있게 나아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