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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 나를 유혹할 때마다 꼼짝없이 걸려든다

글이 주는 위로-글쓰기 예찬

by 다시봄

한 시간째 제목만 고치고 있지만

한 줄도 쓰지 못해 몸부림치지만

한 문장도 이해하지 못해 읽고 또 읽지만


글이 나를 유혹하면

모든 걸 뒤로 하고, 모든 걸 제치고

글에 몰두한다.


제대로 걸려드는 것이다!




글을 읽고 쓰는 일은 거미줄에 걸려든 것처럼 나를 옴짝달싹 못 하게 한다. 글은 수시로 나를 유혹해 꼼짝 못 하게 옭아매고 놔주질 않는다. 거기서 헤어 나오기 위해서는 제대로 걸려드는 것 밖에 방법이 없다. 충분히 괴롭힘을 당하고 충분히 황홀함을 느껴야 빠져나올 수 있다.


글의 유혹은 치명적이다.


순간적인 유혹으로 따지면 돈, 술, 이성의 유혹이 강력할 수 있겠지만, 글은 그것들과 다르게 묘하게 매력적이다. 블랙홀처럼 나를 훅 끌어당겨 출구를 찾지 못하게 꽉 붙들어맨다. 글 외에 다른 걸 생각할 겨를을 주지 않는다. 미친년처럼 머리를 헝클이며 글을 쓰고 쓴 글을 읽고 지우고 또 쓴다. 지금의 나처럼!


매일 쓰는 글과

매일 읽는 글은

중독성이 있다.


걸려들면 괴롭다는 걸 알면서도 괴로움보다 더한 짜릿함을 알기에 또 걸려들고 싶다. 내가 쓴 단어, 문장 하나가 내 심장을 통과해 다른 사람들의 심장을 건드리는 광경을 목격하고 있으면 나는 스스로 거미줄로 걸어 들어가 기꺼이 대롱대롱 매달리기를 자처한다. 다시 또 옴짝달싹 못하는 지경에 이르러도 인상을 찌푸리기보다는 미소를 띠며 걸려든 나를 칭찬한다.


거미도 없는 거미줄에 한참을 매달려있다 보면 걸려들 땐 몰랐던 아름다운 하늘이 보이고 드넓은 땅이 눈에 들어온다. 내가 걸려든 건 거미줄이지만 내가 서 있는 세상은 한없이 크고 아름답다는 사실을. 그 세상을 읽고 표현하는 일이 얼마나 위대한 일인지를 깨닫게 된다.


눈꽃 핀 거미줄에 대롱~ 대롱~ 매달려 보겠는가?


글은 세상을 읽고 쓰는 도구다.


먼지처럼 작은 내가 거대한 우주를 들여다보고 이해하고 흡수하는 데 글을 쓰는 일만큼 손쉬운 방법이 있을까? 글을 잘 쓰는 건 어렵지만 글을 쓰는 일 자체는 어렵지 않고, 글은 쓰다 보면 생각이 정리되고 세상을 다시 보게 되고 그러다 보면 뜻밖의 깨달음을 얻게 되고 그 마음으로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된다. 글이 주는 위로와 감사는 그 과정을 거쳐야만 온전히 느낄 수 있다.


나의 세상은 눈으로 보고 몸으로 느끼고 머리로 이해하고 가슴으로 받아들여 마지막에 글로 토해내야 완성된다. 아무리 좋은 걸 보고 듣고 느껴도 글로 정리하지 않으면 잊어버리고 내 것이 아닌 게 되어서 그것들을 놓치지 않으려 악착같이 써서 마음에 아로새긴다. 처음부터 맘에 쏙 드는 글, 제대로 정리된 글, 세상을 꿰뚫는 통찰이 있는 글을 쓸 수는 없겠지만 쓰다 보면 이런저런 것들이 하나로 연결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런 짧은 순간들이 모이면 내가 쓴 글이 어느새 몰랐던 세상과 사람들을 아주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괜찮은 도구’가 되어 있지 않을까?





이제는 내가 글을 유혹할 차례다.


글이 나를 유혹해 꼼짝 못 하게 했지만 이제는 내가 글을 유혹할 차례다. 글이 내 안에서 꿈틀거리며 나오고 싶게 만들 차례!


새벽에 일어나 소파에 쭈그리고 앉아 글을 쓰고 있는 지금. 해가 뜨고 날이 밝아지고 안 보이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하는 시간에 나는 글과 씨름을 하고 있다. 누가 먼저 유혹했고 누가 먼저 세상 밖으로 나갈 건지를 겨루고 있다. 어제처럼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글이라는 거미줄에서, 글이라는 블랙홀에서, 글이라는 유혹자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아, 매일 이렇게 헝클어진 삶을 가지런히 놓는 행복을 누리고 있다.





[지금 연재 중입니다]

월 : 어른의 Why?

화 : 일주일에 한번 부모님과 여행갑니다

수 : 어른의 Why?

목 : 영화보다 드라마틱한 사ㄹㅁ

금 : 글이 주는 위로-글쓰기 예찬

토 : 어른의 W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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