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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는 죽을 때까지 공짜인 (그것)이 있다

글이 주는 위로-글쓰기 예찬

by 다시봄

나에게는 죽을 때까지 공짜인 (그것)이 있다.


그것은 슬픔을 나눠주어 그 무게를 줄여주고

그것은 기쁨을 곱해주어 그 행복을 키워주고

그것은 공짜로 다가와서 그 진짜를 보여준다.


나아가 삶을 윤택하게 하는 그것.

평생 공짜인 그것은 바로 (글쓰기)다.




하지만 공짜에겐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약점이라기보다는 약간의 사용료라고 보면 된다.

공짜의 자존심 정도?


공짜가 내게로 와서 그야말로 공짜로 “날 잡숴!” 하는 건 아니다. 공짜를 사용하려면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짜가 싫어하는 부류는 다음과 같다.


아무렇게나 쓰고 버리는 글

아무 생각 없이 쓰고 되새기지 않는 글

기록에 그치는 멈춰있는 글


고인 물처럼 썩어 들어가는 글은 노력이 필요하지 않은 글이다. 그래서 공짜는 그런 글에 투자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공짜가 좋아하는 부류는 어떤 것일까?


악을 쓰더라도 감정을 토해내는 글

사고의 전환을 가져왔음을 암시하는 글

슬플 땐 슬프다, 기쁠 땐 기쁘다고 솔직히 말하는 글

끊임없이 배우고 끊임없이 겸손한 글


공짜가 공짜인 이유는
먹튀해도 뭐라 할 사람이 없기 때문이지만
공짜를 진짜로 쓰려면
시간과 용기가 필요하다.


약간의 시간과 필요한 만큼의 용기를 내어 공짜가 좋아할 만한 글을 쓰면 그보다 더 큰걸 안겨준다. 더 많은 시간과 더 큰 용기를 선물한다.



처음에 글을 쓸 땐 없는 시간을 내고 솔직한 감정을 담기 위해 그동안 꺼내지 못한 용기와 마주해야 했다.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냥 하고 싶은 말 하고 하기 싫은 말 하지 않으면 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글을 쓰면 쓸수록 오히려 그 반대라는 걸 알게 됐다. 하고 싶은 말은 잠시 미루고 하기 싫은 말을 더 많이 해야 한다는 것을. 하고 싶지 않은 말은 나를 시험대에 올렸고 공짜와 씨름하게 만들었다. 지금 그것을 쓰지 않으면 평생 공짜와는 손절해야 하는 위기의 순간들이 여러 번 있었다.


하기 싫은 말은 진짜 하고 싶은 말이며
그 말을 내뱉기 위해서는 굳은살이 필요하며
울고 욕하더라도 솔직하게 토해내다 보면
슬픔은 나눠지고 기쁨은 곱해지는 날이 온다.


위기를 견뎌내는 노력들이 차츰 쌓여갈수록 글을 쓸 더 많은 시간이 생겼고 더 큰 용기를 낼 수 있게 되었다. 없던 시간이 생기는 게 아니라 있던 시간을 활용하게 되는 것이며 더 큰 용기를 낼 수 있는 건 그만한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이 정도 가치가 있다면 공짜 사용료를 지불하더라도 공짜를 맘껏 누리는 것이 마땅하지 않겠는가? 그것도 평생?




글을 쓰는 일은 노력을 하고자 하는 사람에게만 평생 공짜다. 시간과 용기를 내지 않으면 누리지 못하는 줘도 못 갖는 로또다.


글을 쓰지 않는다고 삶이 피폐해지고 누추해지고 거꾸로 가는 것도 아닌데 굳이 시간과 용기를 내어야 할까?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맞는 말이다. 그래서 글을 쓰는 일은 강요할 수 없고 쓰지 않는다고 비난할 수도 없다.


다만, 글을 씀으로써 지금보다 더 나아질 수 있다면 투자해 볼 만하지 않을까?

늘 좋을 수만은 없는 삶에서 슬픔과 아픔을 덜어내고 위로와 응원을 더해줄 친구가 생긴다는 건 큰 힘이 되는 일이니까. 묵은 감정을 털어내고 변화를 맞이하는 새로운 나를 만나는 일이니까. 글이 그걸 해준다면 공짜를 마다할 이유는 없을 테니까!





[지금 연재 중입니다]

월 : 어른의 Why?

화 : 일주일에 한번 부모님과 여행갑니다

수 : 어른의 Why?

목 : 글이 주는 위로-글쓰기 예찬

금 : 영화보다 드라마틱한 사ㄹㅁ

토 : 어른의 W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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