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이 주는 위로-글쓰기 예찬
글 쓰는 일은 공짜이고 한번 걸려들면 빠져나오기 힘든 블랙홀이지만, 그렇다고 글을 쓰는 게 쉬운 건 아니다. 쓸 때마다 어렵고 쓸 때마다 머리를 쥐어짠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안 써지면 괴롭고 돈도 안 되는 글을 시간까지 투자해 가며 ‘굳이’ 왜 쓰는 걸까?
도대체 계속 글을 쓰는 이유가 뭘까?
작가가 되겠다는 뚜렷한 목표가 글쓰기로 유인한 결정적인 이유지만 글 쓰는 일을 포기하고 싶은 순간은 많았다.
시큰둥한 반응에 대한 염려, 이 길이 맞을까 하는 혼돈, 당장의 행복을 좇고 싶은 유혹.
5년, 10년, 20년을 써도 제자리라면 포기하는 용기를 내야 할까?
누구도 나를 시험하지 않는데 왜 스스로를 늪에 빠뜨려 죽을 둥 살 둥 헤매게 할까?
글 쓰는 일보다 더 재밌고 더 의미 있는 일이 있지 않을까?
왜 자괴감을 느끼며 성취감도 맛보지 못하는 글을 계속 붙들고 늘어지는 걸까?
쓰다 보면 어느 날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어 있을 수도 문학상을 휩쓰는 뜨거운 작가가 될 수도 있겠지만, 그런 와중에도 여전히 써야 할지 말아야 할지 쓰는 게 괴로운 데 괴롭지 않을 방법은 없는지 고민한다면 작가로서 그리고 한 사람으로서의 삶이 행복할까?
얼마 전 흥미롭게 봤던 드라마 <중증외상센터>에서 누구도 하지 않을 위험한 시도로 환자를 살리려는 외과 권위자 백강혁 교수에게 레지던트인 양재원이 “왜 그렇게까지 위험한 시술을 하냐?”며 대드는 장면이 나온다. 양재원은 백교수를 존경하지만 저렇게까지 해야 할까? 의문을 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자신이 의사 자격이 없는 게 아닐까 고민한다.
백교수는 제 때 치료받지 못해 눈앞에서 죽어가는 아버지를 본 후 ‘내 눈앞에 있는 환자는 절대 포기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며 양 선생에게도 자기만의 이유를 찾으라고 조언한다.
개같이 굴고 엿같이 깨져도
절대 변하지 않을 그런 이유.
이 퍽퍽하고 꺼끌꺼끌한 이 길을
아무런 이유 없이 그냥 걸어가기에는 너무 되다.
개같이 굴고 엿같이 깨져도 절대 변하지 않을 이유?
엄청난 문학적 소질이 있어 인류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글을 쓰고 있는 게 아닌 나는 그저 따뜻함을 전하고 한 사람이라도 내가 쓴 글을 통해 삶을 되돌아보고 조금이나마 변화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글을 쓴다. 하지만 이 마음은 글을 읽는 사람에게 전달되길 바라는 마음이지 글 쓰는 나를 일으키는 다짐은 아니다.
그렇다면 내가 글을 계속 쓰는 이유는 뭘까? 무엇이어야 할까?
수많은 작가들 사이에서 눈에 띄지 않는 작가들 중 한 명으로 남는다 하더라도 계속 글을 써야 한다면 더더욱 글을 쓰는 나만의 이유가 필요할 것이다.
글을 쓰다 보면 전혀 다른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의 말 한마디, 꼴 보기 싫은 사람의 행동, 부모님의 끝없는 사랑, 계절에 맞게 피고 떨어지는 꽃잎들, 방금 내린 커피에서 피어오르는 따뜻한 김에서도 하나의 연결점을 발견하게 된다. 전혀 상관없는 것 같은 것들이 하나로 이어져 있다는 진리! 그걸 발견할 때마다 ‘유레카!’를 외치고, 글로 표현하고, 그 글은 고스란히 삶으로 연결된다.
내가 발견한 것이 아주 사소하고 미세하여 눈에 띄지 않는 것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글로 남아 나뿐만 아니라 누군가에게, 기왕이면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되어 삶에 변화를 줄 수 있다면 삶이 조금이라도 나아질 수 있다면, 내가 글을 쓰는 이유로 충분하지 않을까?
나아가는 사람이 되기 위해 선택한 삶이 글을 쓰는 일이다.
나아진 삶을 누리기 위해 선택한 일이 글쓰기다.
나아지기 위해서 세상을 눈여겨보고 사람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그것들을 묶어 하나로 엮어내는 것이다.
누군가는 글쓰기보다 더 의미 있는 선택을 할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나에겐 글 쓰는 일이 거사(?)를 도모하는 단 하나의 수단이며 스스로에게 주는 따뜻한 선물이다.
계속 글을 쓰는 ‘개같이 굴고 엿같이 깨져도 절대 변하지 않을’ 이유다.
[지금 연재 중입니다]
월 : 어른의 Why?
화 : 일주일에 한번 부모님과 여행갑니다
수 : 어른의 Why?
목 : 글이 주는 위로-글쓰기 예찬
금 : 영화보다 드라마틱한 사ㄹㅁ
토 : 어른의 Why?
일 : 글이 주는 위로-글쓰기 예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