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이 주는 위로-글쓰기 예찬
지금은 매일 읽고 쓰지만
나에게도 자산이 부족했던 암흑기가 있었다.
글은 쓰는 순간부터 의미를 갖게 되고 살아 숨 쉬는 하나의 생명체인데, 나를 알리려는 수단으로 이용해선지 더 잘 써내지 못한 글들은 숨기기 바빴던 것이다.
세상에 나가지 못하고 저장만 되어 있는 글들이 쌓여갈수록 글쓰기를 이대로 멈춰야 하는 건 아닌지 스스로를 책망했다.
축적된 쓰레기들이 늘어갈수록 자산의 양은 줄어들었다.
세상으로 내보내려는 시도는 매번 좌절됐고 쓰는 일은 점점 힘들어졌다.
다른 사람들이 쓴 글을 읽으면 그렇게 쓰지 못하는 나는 더 위축되어 가기만 했다.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면서 아무것도 남은 게 없이 바닥을 치자 정신이 번쩍 났다.
이대로 나는 평생 작가로는 못 살겠구나,
남들이 쓴 글이나 읽으며 부러워하며 살겠구나, 싶었다.
다시 글을 써야겠다고 결심한 건 이렇게 단순하고 당연한 이유 때문이었다.
글을 쓰기 위해선 쓰기 위한 준비를 오래, 치밀하게 해야 한다. 작법서를 읽으며 글의 장르 및 방향을 결정하고 다양한 채널을 통해 자료수집을 하고 수집한 자료들을 모아놓고서야 비로소 노트북 앞에 앉았다. 이런 것들이 준비되어 있지 않으면 글을 쓸 수가 없었다. 내가 글을 쓰지 못한 이유는 바로 여기 있었다. 철저한 계획 하에 글을 써야 한다는 강박. 준비되어 있지 않으면 좋은 글이 나오지 않을 거라는 두려움.
당연히 필요한 일이지만 글을 쓰는 일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더 많은 에너지를 쏟아, 정작 글을 쓸 때쯤엔 감을 잃고 재미를 잃었다. 어떤 글을 써야겠다는 외침이 있을 때 바로 적어 내려가야 하는데 그 시기를 놓쳐버리는 것이다.
다시 글을 써야겠다고 다짐했을 때 이번엔 꼭 다르게 쓰리라 마음먹었다.
같은 방법으로 글을 쓰면 예전과 똑같을 게 뻔했고 나는 다시 자산을 몽땅 잃은 처량한 신세가 되겠지. 두둑한 자산이 될 글들을 창고에 처박아두고 나름 열심히 살았노라 변명을 하겠지.
그래서 방법을 바꾸기로 했다.
일단 쓰고 내놓고 그 글에 대해 분석하고 부족한 걸 채워 나가기로. 완전히 판을 뒤집어엎기로 했다. 분명 부족하고 허술한 글일 테지만 일단 쓰고 내놓는 걸 먼저 하자고. 이 방법이 맞든 맞지 않든 해보자고.
물론 처음엔 손이 바들바들 떨렸다.
이렇게 번갯불에 콩 궈먹듯 쓴 글을 세상에 내놔도 될까? 나중에 감당이 될까? 다작이 자랑인 것처럼 질을 무시해도 될까? 뭐가 중요한지도 모르고 핵심도 없는 글을 이렇게 계속 써나가는 게 의미가 있을까?
그래도 다르게 써보겠다고 결심한 이상 계속해보는 수밖에 없었다. 지금 쓴 글을 세상에 내놓는 내가 정한 방법이니까! 재밌는 건, 쓰다 보니 쓸 것이 넘쳐났고 쓰면서 성장한다는 느낌을 받았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이 쓴 글을 읽으며 부러워하기보다 그들의 생각에서 영감을 받아 또 다른 내 글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양만 있는 저질(低質)의 글이든 쓰다만 것처럼 부족한 글이든 글에 대한 평가가 어떻든, 쉬지 않고 글을 쓰면 쉬지 않고 읽게 된다. 내가 쓰고 있는 글은 수십 번 수백 번을 읽고, 다음 쓸 글을 위해 다른 사람이 쓴 글을 계속 읽게 된다. 그렇게 읽고 쓰기를 반복하면 내가 충만해짐을 느낀다. 세상을 다시 보게 되고, 다시 본 걸 쓰고 싶어지고, 쓰면서 읽으면 더 잘 쓰기 위해, 더 노력하게 된다.
단지 작가가 되기 위해서만 글을 쓰는 건 아니다.
시작은 그랬지만, 이제는 글을 쓰는 행위 자체가 움츠러든 나를 날아오르게 한다. 많은 글을 읽고 많은 글을 쓰는 일은 나만의 노력으로 갖고 싶은 자산을 축적하는 일이다. 멈추지 않는다면 얼마든지 축적 가능한 자산을!
[지금 연재 중입니다]
월 : 어른의 Why?
화 : 일주일에 한번 부모님과 여행갑니다
수 : 어른의 Why?
목 : 글이 주는 위로-글쓰기 예찬
금 : 영화보다 드라마틱한 사ㄹㅁ
토 : 어른의 Why?
일 : 글이 주는 위로-글쓰기 예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