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이 주는 위로-글쓰기 예찬
살다 보면 가끔
기적 같은 사람을 만나고
기적 같은 순간을 마주하듯
기적 같은 문장을 접하게 된다.
잠깐의 위로든, 삶을 통째로 바꾸는 명언이든 나를 일으키고 안아주는 문장을 만나는 일은 누구에게나 귀한 역사의 한 페이지가 될 것이다.
잘했고 잘하고 있고 잘될 것이다.
작가가 되기엔 무언가 부족하고 작가가 됐다가도 반품될까 두렵고 앞으로 작가가 될 수 있을지 불투명한 나는 과거부터 어쩌면 미래까지 작가지망생일 수 있다. 어떤 작가들은 작가가 되려고 글을 쓴 건 아닌데 작가가 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하지만 나의 경우는 작가를 염두에 두고 글을 써왔고 쓰고 있고 쓸 것이다.
그래서 더 불안했던 게 아닌지.
목표를 향해 열심히 달리는데 성과는 없고 가까운 곳에 있다고 생각했던 목표 지점이 점점 멀어지는 것 같은 데도 글 쓰는 일을 멈출 수 없을 때, 나의 글을 의심하게 된다. 혼자만 만족하는 글을 쓰고 있는 건 아닌지, 누군가가 읽었을 때 조금이라도 위로가 되고 도움이 되는 글인지, 재밌지 않고 감동이 없어 시간과 돈을 들일 가치가 없는 건지.
주춤하게 되고 자책하게 되는 순간이 올 때,
칭찬해 주는 사람 하나 없어도 나를 일으켜야 할 필요가 있을 때,
그동안 잘했고 지금 잘하고 있고 앞으로 잘할 것이라는 위로의 말이 작가가 되고자 계속 글을 쓰고 있는 나 자신을 살려준다.
스스로가 건네는 칭찬의 문장을 떠올리는 건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는 공짜니까.
괜찮았고 괜찮고 괜찮을 것이다.
사람은 여러 곳에서 여러 모습으로 살 수밖에 없다.
작가가 되고자 하지만 집에선 부모님의 딸이며 조카들의 이모나 고모, 언니 오빠의 막내 동생이고, 회사에선 동료, 상사, 대리이고, 친구들의 친구이며 언니이거나 누나다.
회사에서 얼굴 붉히며 일하다가도 엄마의 전화를 받으면 상냥한 막내딸로 둔갑하고, 친구와 술 마실 땐 유쾌한 분위기메이커였다가 회사의 회식 자리에선 꼰대가 되기도 한다. 가는 곳마다 순간순간마다 가면을 벗었다 썼다 하는 일이 어떤 땐 꽤 피곤하다.
그렇게 삶 안에서 다양한 역할과 임무를 수행하느라 지쳐 쓰러지기 직전에 나는 생각한다. 형태는 다르겠지만 인간이라면
누구나 그렇게 살고 있다고.
나도 다를 것 없는 똑같은 사람일 뿐이라고. 그러니
과거에도 괜찮았고 지금도 괜찮고 앞으로도 괜찮을 것이니 힘에 부치더라도 사는 데 스스로 용기를 주자고.
같은 인간인 타인이 말해주면 더 큰 위로를 받겠지만 그 마음으로 타인을 위로하고 스스로를 안아주자고.
나를 일으켜주는 문장은 어디에나 있다.
인지하고 흡수하지 못할 뿐.
고마워.
잘했어.
미안해.
사랑해.
하나의 단어만으로도 심장이 두근거릴 때가 있다. 고마워서 알아줘서 미안해서 사랑해서 위안이 되고 움츠린 나를 일으켜 세운다.
나를 일으켜주는 단어와 문장은 사람으로부터 나오는 것이기에 결국 사람에게 힘을 주고받는 일이 된다.
당신은 누군가를 일으킬 문장을 가지고 있는가?
그 문장으로 사람을 구하고 스스로를 안아주는 따스함을 전하길!
[지금 연재 중입니다]
월 : 어른의 Why?
화 : 일주일에 한번 부모님과 여행갑니다
수 : 어른의 Why?
목 : 영화보다 드라마틱한 사ㄹㅁ
금 : 글이 주는 위로-글쓰기 예찬
토 : 어른의 Why?
일 : 잘, 쉬고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