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이 주는 위로-글쓰기 예찬
글을 쓰다 보면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깨우침을 얻게 되는 순간이 오곤 한다.
‘어떤 글을 쓰고 싶다 혹은 이런 글을 써야겠다’는 희미한 그림을 단번에 구체적이고 생생한 움직임으로 만들어버리는 통찰의 순간.
그런 순간을 맛보기 위해 지금껏 글을 써왔던 것처럼
그런 순간은 나누지 않으면 날아가버릴 것처럼
단어를 골라 문장으로 엮어 하나의 글로 짜낸다.
그렇게 짜낸 카펫 같은 글에 마술이라도 걸듯 주문을 외운다.
모든 게 일시에 연결된 이 글의 통찰을 다시 모든 것에 나눠줄 수 있기를!
어느 날, 아무 생각도 안 하고 있을 때 느닷없이 해답이 떠올랐다.
그 해답은 한순간 눈부신 섬광과 함께 완전한 형태로-선물 포장까지 되어 있었다고나 할까-나타났다. 당장 집으로 달려가 그 내용을 종이에 받아 적었다. 그런 일은 처음이었는데, 잊어버릴까 봐 그만큼 겁이 났기 때문이었다.*
소설가 스티븐 킹은 그렇게 ‘방금까지 아무 생각도 없었는데 한순간에 모든 생각이 한꺼번에 떠올랐다.‘며 글쓰기가 왜 자신을 유혹하는지 그 이유를 알려줬다.
내가 글쓰기를 다른 일보다 좋아하는 이유를
딱 하나만 꼽는다면
이렇게 모든 것이 일시에 연결되는
통찰력의 순간이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그런 현상을 가리켜
‘핵심을 찌르는 사고력’이라고 불렀다.
또 누군가는 ‘초월적 논리(over-logic)’라고 했다.
책 출간을 앞두고 있거나 어떤 요청이 있어 글을 쓰는 프로작가가 아닌 내가 요즘 매일 글을 쓰고 있다.
처음에는 동기부여가 되지 않고 숨 막히는 마감일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술렁술렁 썼다. 매일도 아니고 마음이 내킬 때, 시간이 날 때,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썼다. 그러다가 이렇게 글을 쓰면서 작가가 되겠다고 하는 내가 한심하고, 이렇게 글을 쓰다간 평생 써도 작가가 된 친구나 지인의 뒤꽁무니만 보며 부러워하겠다는 불길한 예감이 들어 4개월 전부터 매일 쓰기 시작했다.
매일 글을 쓰면 좋은 점과 안 좋은 점이 있다.
안 좋은 점부터 말하자면 나처럼 ‘에세이, 자기 계발서, 인문교양, 글쓰기’로 일관되지 않은 분야를 이것저것 쓰면 정신이 오락가락한다는 것이다. 글감도 딸리고 분야에 맞게 머릿속 칩도 갈아 끼워야 하는 번거로움도 있다. 한마디로 말하면 한숨이 나오는 글쓰기를 매일 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렇게 한숨지으며 매일 쓰다 보니 어느 순간 좋은 점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이제 글을 쓰지 않으면 불안하고 못 견디게 지루하다는 것, 무엇보다 완전히 다른 분야의 글쓰기를 한다고 생각했었는데 ‘그 모든 것이 일시에 연결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제는 내가 어떤 글을 잘 쓰는지, 어떤 글을 쓰고 싶어 하는지 알게 됐달까?
아마 처음부터 지금까지 내가 쓴 글을 읽은 독자라면 알 것이다. 매일 다른 글을 쓰는데 그 글들이 모두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꿈을 자주 꾸는 나는 꿈을 통해 통찰을 하기도 하는데, 어제 꿈도 그랬다.
친구에게 버스 노선이 바뀌었다는 말을 듣고 버스 정류장을 찾아 헤맸다.
분명 오른쪽에 있는 정류장인 것 같은데 왼쪽으로 가면 된다고 햐서 긴가민가하며 왼쪽 정류장으로 가려는데 물이 고이기 시작하더니 길을 막아버렸다.
보이지 않지만 나는 그 물을 헤치며 정류장을 향해 힘차게 걸어갔다.
물이 점점 불어나 도중에 뒤로 밀려나기도 했지만 끝내 정류장에 도착한 나는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정류장 구석에 자리한 피자집에 들어갔다.
주인은 내가 고른 메뉴 대신 더 맛있는 걸 만들어주겠다며 처음 보는 모양과 종류의 조각 피자를 만들어 건네줬다.
그 피자는 여기까지 무사히 도착한 내게 주는 선물이니 값은 지불하지 않아도 되며 맛에 대한 평가만 해달라고 했다.
피자를 한 입 베어 물자마자 갑자기 어디서 몰려왔는지 사람들이 떼를 지어 가게에 들어왔고, 난 그들 앞에 서서 피자 맛에 대해 극찬을 쏟아부었다.
내 이야기를 들은 그들은 너도나도 그 피자를 먹겠다며 주인에게 돈을 내고 있었다.
예측할 수 없는 길을 걷고 있는 나는 예측할 수 없는 일들을 헤쳐나가고 있다.
그러다 보니 예측하지 못했던 고난을 겪기도 하는 반면 그동안 걸어온 길이 하나로 연결되는 통찰의 순간을 맞이하게 되기도 한다.
그리고 그 순간을 만나면 맛깔난 선물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작년에 이사를 오면서 식탁을 버리고 소파 앞에 좌식 소파 테이블을 두고 식탁 겸 글을 쓰는 작업대로 쓰고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식탁보다는 작업대의 역할을 더 많이 하고 있는 테이블은 반 이상이 수북한 책들로 꽉 차 있다. 밥을 먹으려면 책을 내려놓거나 원래의 자리(책장)에 갖다 놓으면 되는데, 계속 위로 쌓아놓기만 하고 있다. 노트북 자리 외에는 더 이상 공간이 없어 이제 식탁을 사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책에 둘러싸여 글을 쓰고 있는 나는 스티븐 킹처럼 통찰력의 순간이 오기를 기다린다.
마침내 그런 순간을 만나면 내가 왜 글쓰기를 다른 일보다 좋아하는지 알게 된다.
*스티븐 킹, <유혹하는 글쓰기> ‘창작론’에서
[지금 연재 중입니다]
월 : 어른의 Why?
화 : 오늘보다 행복한 날은 없는 것처럼
수 : 나를 일으키는 문장은 어디에나 있다
목 : 글이 주는 위로-글쓰기 예찬
금 : 나를 일으키는 문장은 어디에나 있다
토 : 영화보다 드라마틱한 사ㄹㅁ
일 : 나를 일으키는 문장은 어디에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