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이 주는 위로-글쓰기 예찬
쓸모 있는 사람이 되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 쓸모 있는 글을 쓰는 일이다.
쓸모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쓸데없이 살아온 날이 얼마나 많은지, 쓸모 있는 글을 쓰기 위해 쓸데없이 쓰고 버리는 글이 얼마나 많은지.
나는 오늘도 쓸모를 취하는 사람, 쓸모를 취하는 창작자가 되기 위해 쓸데없는 삶과 글을 창조해내고 있다.
드라마 공부를 할 때 나는 최하위 인간으로 살았다.
글을 쓰면 쓸수록 내 바닥이 드러나고 그 바닥이 끝없이 깊다는 걸 알게 됐다. 아무리 써도 주인공의 삶을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지 못했다. 내 손끝에 쓸려 나락으로 떨어지는 주인공을 보며 함께 나락으로 던져졌다. 쓸모없어 버려지는 글들을 볼 때마다 덩달아 쓸모없는 사람이 되어 같이 쓰레기통에 처박히는 기분이었다.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도 나아지지 않는 글은 결국 지친 나를 주저앉게 했고, 드라마 교육원의 마지막 과정을 사실상 포기한 채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그렇게 나중을 기약하며 하염없이 시간만 보내고 있을 때 같이 공부했던 동생에게 전화가 왔다. 나를 보러 당장 오겠다고 엄포를 놓더니 다음날 서울에서 2시간 기차를 타고 내가 사는 동네로 찾아왔다.
잘 쓰다가 갑자기 두문분출한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우기 위해 온 줄 알았는데 만나자마자 다짜고짜 공모전 당선 소식을 전했다.
“최우수상을 주고 싶었는데 우수상을 줬다고 하더라? 공익 방송이라 최우수상 작품에 점수를 더 주긴 했지만 내가 쓴 글이 더 재밌다나 뭐라나? “
난 그 말이 동생의 자기 자랑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늘 겸손하고 자신이 누구보다 글을 못 쓴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녀가 내게 진짜 하고 싶은 말은 그다음에 한 말들이었다.
공모전은 계속 떨어지고 자신감도 떨어져 딱 포기하고 싶었는데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그녀는 미친 듯이 글을 썼다고 했다. 쓸데없는 시간 낭비든, 쓸데없어 버려지는 글이든 상관없이 막무가내로 밀고 나갔다고 했다. 그렇게 버려질 글을 그렇게 열심히 쓴 적이 없다며.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녀가 교육원에 다니며 쓴 두 번째 작품이 공모전에 당선된 것이다. 그 후로 쓴 스무 편도 더 되는 단막극들은 다 버려지고.
중요한 것은 버려진 글들을 쓴 이후에 초기 작품을 다시 꺼내 결정적인 퇴고작업을 했다는 것이다. 버려진 글이 없었다면 쓰지 못했을 핵심 포인트를 찾아낸 것이다.
“그래서 내가 깨달은 게 있어. 쓸데없는 글은 없다는 것! 쓸데없는 것 같아도 결정적인 때 쓸모 있는 작품을 만들어 준다는 것을! 무슨 말인지 알지? “
공모전 당선 상금으로 맛있는 점심을 사주고 다시 서울로 간 동생의 뒷모습을 보며 난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다시 쓸데없는 글들을 쓰기 시작했고 지금에 이르렀다.
어쩌면 지금 쓰고 있는 이 글도 쓸데없는 글일지 모르지만 언젠가 쓸모가 있는 글에 분명 중대한 역할을 할 글임에 틀림없다고, 스스로에게 계속 쓸 힘을 부여하고 있다. 창작자가 되기로, 글 쓰는 사람으로 살아가기로 마음먹은 이상 글 쓰는 일을 멈춰서는 안 되니까.
내가 계속 글을 쓸 수 있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쓸데없이 버려지는 글까지도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는 이유는 그 동생의 경험 덕분이다. 그 경험을 나도 조금씩 체득하고 있기 때문이다.
쓰는 글마다 쓸모가 있다면 얼마나 좋겠냐마는 그런 일은 적어도 내 세상엔 없을 게 분명하다. 그러니 그동안 써낸 글 중 단 한 문장이라도 건져낼 게 있고, 한 단어에서 다음 쓸 글에 대한 영감을 받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계속 쓸 이유는 충분하지 않을까?
쓸데없는 글이 쓸모 있는 글이 되는 그날까지!
[지금 연재 중입니다]
월 : 어른의 Why?
화 : 일주일에 한 번 부모님과 여행 갑니다
수 : 나를 일으키는 문장은 어디에나 있다
목 : 글이 주는 위로-글쓰기 예찬
금 : 나를 일으키는 문장은 어디에나 있다
토 : 영화보다 드라마틱한 사ㄹㅁ
일 : 나를 일으키는 문장은 어디에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