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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이 나를 읽는 것은 내가 그의 눈 속으로 뛰어드는 것

글이 주는 위로-글쓰기 예찬

by 다시봄


남들이 나를 읽는다는 것은
내가 그들의 눈 속으로 뛰어든다는 말이다.
남들이 나의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내가 보편적이면서도 독특한 언어로 변모해서
그 모든 사람들의 입속으로
들어간다는 말이다.*



<말>에서 장폴 사르트르는 자기가 쓴 글을 읽는 사람들을 이렇게 묘사했다. 내가 투영된 글을 남들이 읽을 때 나는 그들의 눈 속으로 뛰어들고, 남들이 책 속의 나를 이야기할 때 나는 그들의 입속으로 들어간다.


내가 쓴 글이 다른 사람의 눈과 입 속으로 뛰어들어가 눈에 담기고 입에 머물며 오래도록 남는다면 글을 쓰는 나는 아무렇게나, 아무것이나 쓸 수 없다는 것을 다시금 되새기게 한다.





글을 쓰는 나는 내 안의 많은 것들을 꺼내놓는다.


언제 떠올려도 좋은 기억과 감정

오래 묵을수록 앙금이 커지는 아픈 과거

이뤄내지 못해 못마땅하고 아쉬운 꿈

포기하지 못해 질척이는 마음

아직 꺼내보지도 못한 내밀한 바람까지.


하나하나 글로 쓰고 세상에 모습을 드러낼 때마다 부끄럽기도 하고 자랑스럽기도 하다. 과연 나를 어디까지 보여줄 수 있는지, 나를 어디까지 보여줘도 되는지 계산하고 고민하면서도 그렇게라도 나를 알아갈 수 있음에 감사해한다.


그렇지만 나를 꺼내서 드러내는 일이 자기만족에 불과한 것은 아닌지, 내 이야기가 남들에게도 글을 쓰는 나와 똑같이 아니면 비슷하게라도 숨겨있던 감정을 불러일으키고 때론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말이 되긴 하는지 궁금하다. 남들의 눈 속에 뛰어 들어가 콕 박히고, 나만의 보편적이고 독특한 언어로 변모해서 그들의 입속으로 들어가는 일이 있기는 한지 묻고 싶다. 내게 그럴 권한이 있다면 말이다.



글을 쓰는 나는 세상을 똑바로 보려고 흐트러진 삶을 정리한다.


미뤄뒀던 숙제를 하듯 어제와 오늘의 삶을 끌어모아

버릴 것은 없는지 키울 것은 없는지 점검하고

위로가 필요한 마음은 충분히 위로하고

칭찬이 필요한 행동은 아낌없이 칭찬하며

고칠 곳이 필요하면 연장을 꺼내 두드리고

잘못된 사고를 발견하면 과감히 버린다.


조금씩이라도 나를 바로 정립하여 다가올 삶에 잘 녹여내고 똑바른 정신으로 세상을 보려고 노력한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새로운 잘못이 생겨나기도 하지만 그때마다 흐트러진 나를 정리하는 습관을 계속해 나간다.


그렇지만 내가 다듬고 정리한 삶으로 바라보는 세상이 삐뚤어지진 않았는지, 더 올바른 눈이 있는데 그걸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고 흡수하지 못하는 건 아닌지, 내가 맞고 너는 틀리다며 억지를 부리고 있지는 않은지 판단하기 어려울 때가 더 많다. 세상에 있는 무수한 경우의 수를 내가 경험한 좁은 눈으로만 질서를 잡기엔 한계가 있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게 주어진 것들 안에서 세상을 크게 보려 애쓰고 그것을 주워 담아 글로 써낸다. 누구의 허락이 필요한 일이 아니니까.



그동안 꺼내놓은 내 안의 많은 것들과 흐트러진 세상에 부여한 질서가 서점의 책장에 전시되어 남들에게 읽히는 날이 올 날을 대비해, 사르트르의 말을 기억하고 또 기억하려고 한다. 그들의 눈과 입을 맑게 해 줄 글을 쓰자고!




사람들이 나를 들고 열어본다.
나를 책상 위에 펼쳐 놓고 손바닥으로 쓰다듬고 또 때로는 파닥거리게 한다.
나는 가만히 내버려 둔다.
그러다가 별안간 번쩍 하면서
그들을 눈부시게 만든다.**



나를 읽는 사람들이 있다는 건 매우 행복한 일임에 틀림없다. 내 글을 읽고 번쩍하는 그들의 눈부신 눈을 감상하고 싶다. 평생.




*, ** 장폴 사르트르의 자서전 <말>에서 발췌





[지금 연재 중입니다]

월 : 어른의 Why?

화 : 일주일에 한 번 부모님과 여행 갑니다

수 : 나를 일으키는 문장은 어디에나 있다

목 : 글이 주는 위로-글쓰기 예찬

금 : 나를 일으키는 문장은 어디에나 있다

토 : 영화보다 드라마틱한 사ㄹㅁ

일 : 나를 일으키는 문장은 어디에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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