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이 주는 위로-글쓰기 예찬
내가 쓴 작은 글귀가
누군가의 가슴을 뚫고 들어가
심장을 ‘쿠웅’ 때리고
그 울림이 온몸에 진동해
삶을 통째로 뒤흔들 수 있다면!
어떤 글이 쓰여 어떤 방법으로 글이 전해져 어떤 사람의 심장에 가서 박힐지는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아주 작은 세상에 살고 있지만 아주 큰 세상을 품고 사는 나의 끄적임, 나의 고뇌가 누군가의 가슴을 울리는 날이 온다면 확성기에 대고 외칠 것이다. 그날을 위해 지금껏 살았노라고!
원대한 바람이지만 이루지 못할 헛된 꿈이라고 생각하지 않기에 나는 오늘도 쓰고 또 쓴다.
어떤 작가가 되고 싶냐는 스스로가 던진 물음에 10대였던 나는 일기장에 이렇게 썼었다.
언제 들여다봐도
가슴이 따뜻해지는 글을 쓰는 작가
글 쓰는 게 뭔지도 몰랐던 꼬맹이가 작가가 되어 사람들의 가슴을 따뜻하게 하는 글을 쓰겠다고 포부를 밝힌 것이다. 어떤 글이 좋은 글인지, 어떤 글을 써야 스스로가 인정하는 작가가 되는지를 마음에 품고 있었던 것 같다.
그로부터 무려 30년 이상을 살아온 지금 나는 어떤 글을 쓰는 사람이 되어 있나? 어릴 적 바람대로 가슴이 따뜻해지는 글을 쓰고 있나? 가슴이 따뜻해지는 글이 뭔지는 알고 있나?
다시 묻고 되새겨야 할 때가 왔음을 직감한다.
가슴이 따뜻해지는 글은 어떻게 써야 할까?
가슴이 따뜻해지려면 글을 읽었을 때 심장이 반응해야 하는데 심장이 어떤 때 반응하는지 알아야 그런 글을 쓸 수 있는 것일까?
심장을 쿵 하고 치는 글은 작가의 감 즉 본능으로 알 수 있는 것이지 분석한다고 되는 게 아니지 않을까?
남들과 똑같이 혹은 다르게 사는 생생한 삶의 이야기 속에서 심장이 반응할까, 아니면 누구도 알지 못했던 삶을 관통할 통찰을 전해야 심장이 울릴까?
작가인 나의 삶의 순간순간들이 따뜻해야 그 마음이 그대로 전달되어 읽는 이의 가슴을 울리는 것일까?
더 많이 읽고 더 많이 경험해야 가슴을 울릴 글귀를 쓰게 되는 것일까?
해가 뜨고 지는 것만 봐도 심장이 두근대는데
꽃무리에 날아들어 꿀을 빨아먹는 나비만 보고 있어도 가슴이 따뜻해지는데
바위에 유리알처럼 부서지는 파도만 눈에 담고 있어도 위로가 되는데…
가슴을 울릴 글을 쓰려면 내가 자연이 되어야 하나?
심장을 때릴 글을 쓰려면 파도처럼 더 부서져야 하나?
고전 소설 300권 이상을 2년간 수십 번씩 읽으며 ‘감동이 뭔지’ 알아내려 방문을 걸어 잠갔던 지난날이 있음에도 난 여전히 감동할만한 글을 쓰지 못하고 있다. 가슴을 울릴 글귀가 뭔지 모르고 있다.
아직 때가 되지 않은 건지, 이대로라면 앞으로도 그런 때가 오지 않는 건지 알 수 없지만 끈질긴 나는 뭐라도 쓴다. 에세이도 쓰고 자기 계발서도 쓰고 글쓰기에 대한 푸념도 하면서 계속 쓴다. 멍하니 앉아서 신세한탄만 하는 것보다는 쓰는 게 이득이니까. 쓰다 보면 작은 깨달음이라도 얻게 되니까. 쓰다 보면 읽게 되고 읽다 보면 노트북 앞에 앉게 되니까.
이렇게 계속 쓰다 보면
언젠가는 어떤 사람의 가슴을 뚫고 들어갈
글귀를 쓰게 될지도 모르니까!
가슴을 울릴 글귀를 찾고 있는가?
가슴을 울릴 글귀를 쓰고 싶은가?
가슴을 울릴 삶을 살고 있는가?
가슴을 울릴 글귀는 언제 어떻게 쓰일지, 눈에 띌지, 느껴질지 알 수 없다. 찾아 헤맨다고 나타나는 것도, 쓰고 싶다고 써지는 것도, 더 산다고 알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지만
고뇌와 위로가 공존하는 글작업을 지금처럼 계속해나간다면 어딘가에서 누군가 내가 쓴 글귀를 보며 웃고 감동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 아닌가. 도서관이나 서점 한편에 있는 계단 벽면에 내가 쓴 글귀가 새겨져 지나가는 이의 마음을 사로잡을지도 모를 일 아닌가!
[지금 연재 중입니다]
월 : 어른의 Why?
화 : 일주일에 한번 부모님과 여행갑니다
수 : 어른의 Why?
목 : 글이 주는 위로-글쓰기 예찬
금 : 영화보다 드라마틱한 사ㄹㅁ
토 : 어른의 Wh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