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보다 나를 더 믿어주는 사람을 만났을 때

글이 주는 위로-글쓰기 예찬 3

by 다시봄

사실 별 기대가 없었다.

회사에서 코칭 상담을 한다고 했을 때, 굳이 그런 게 필요한가 싶었다. 게다가 처음 약속했던 일정을 지키지 않은 코칭 담당자에 대한 신뢰도 이미 한 번 떨어진 상태였다. 업무 중 30~40분 시간을 내어 개인 상담처럼 진행된다는 코칭이니, 그냥 시간이나 때우다 나오자는 마음으로 코칭룸을 찾았다.


그렇게 기대감 없이 시작한 코칭에서 뜻밖의 수확을 얻었다.




회사는 ‘업무 역량 강화’를 목적으로 직원들에게 코칭이라는 복지 프로그램을 제안했다.

생일 상여, 동호회, 회식 같은 기존 복지도 하나둘 사라진 회사에서 갑자기 코칭 전문가를 채용했다는 소식은 반갑기보다 의아했다. 전 직원이 50명 남짓한 작은 회사에서, 괜히 필요하지도 않은 고급 인력을 들여 임금을 더 깎아먹는 건 아닐지 걱정하는 분위기도 있었다. 사장이 어떤 의도로 그를 채용했든, 내겐 그다지 호의적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내게 배정된 코칭 시간은 오전 11시 20분, 점심을 앞둔 애매한 시간이었다.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갑작스러운 휴가로 코칭 일정이 한 차례 미뤄졌고, 그 탓에 코칭을 담당한 실장은 나를 유난히 궁금해했다고 했다.


“빨리 만나고 싶었는데, 이제 보네요.“


사장과 비슷한 또래로 보이는 50대 후반의 실장은 나를 자리로 안내하며 따뜻한 우롱차를 내주었다.


“엊그제 휴가였다고 들었는데, 무슨 일 있었는지 물어봐도 될까요?“


최근 업무 스트레스가 심해 몸이 조금 상했다고, 그래서 갑자기 연차를 썼다고 말했다.


“많이 아팠어요?”


그 질문 하나에, 학교에서 있었던 속상한 일을 엄마에게 일러바치던 어린 시절의 나처럼 그동안 쌓아두었던 말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다. 협력사의 노골적인 을질, 고객사의 횡포, 그 상황을 방관하듯 대하던 팀장의 태도, 결국 스트레스가 몸으로 올라와 위에 탈이 났던 이야기까지. ‘원래 이러려던 게 아닌데’ 싶었지만, 나는 실장 앞에서 속 얘기를 가감 없이 늘어놓고 있었다.

실장은 내 말을 하나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눈을 맞추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래요? 힘들었겠네. 어머나…”


과하지 않은 그 반응이 오히려 마음을 더 풀어놓게 했다.

실장은 ‘지금의 나’와 ‘12월의 나’를 떠올리며 카드 두 장을 골라보라며 카드 뭉치를 건넸다. 다양한 상황이 담긴 100장 남짓한 사진 카드를 넘기는 동안에도 실장은 계속 질문을 던졌다.


“이 회사 오기 전에는 무슨 일 하셨어요?”

“바리스타도 했고, 예전엔 방송작가였어요.”

“아… 작가셨구나. 지금은 글 안 써요?”

“지금도 써요. 퇴근 후에요.”

“무슨 글 써요?”

“요즘은 에세이요.”

“어머, 멋지다. 대리님이 쓰는 글 재밌을 것 같아요.”

“그래요? 가끔은… 재밌는 글도 써요.”


다른 사람 앞에서 ‘글을 쓴다’고 말하는 건 늘 멋쩍다. 그런데 내 입으로 ‘재밌는 글을 쓰기도 한다’고 말하고 있다니, 나 자신이 조금 낯설었다. 그리고 문득 걱정이 들어 물었다.


“이 자리에서 글 쓰는 얘기를 해도 괜찮은 거예요? 너무 개인적인 이야기 같아서요.”


실장은 잠시도 망설이지 않고 말했다.


“당연하죠. 제가 보기엔 대리님은 글을 쓰기 위해 회사를 다니고, 회사에 다녀서 글을 잘 쓰실 분 같아요. 아닌가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글만 쓰며 살 자신은 없고, 그렇다고 회사를 그만둘 수도 없고. 회사 생활에서 얻은 감정과 경험이 글의 재료가 되기도 하니까.

내가 고른 카드는 여섯 장이었다. 카드 자체보다, 그 사이에 오간 대화와 내가 카드를 고르는 태도만으로도 실장은 내 상태를 어느 정도 짐작한 듯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제안을 하나 했다.


“12월에, 여기서 대리님 출간 기념 사인회 해요.”

“작년에 이어 올해도 목표이긴 한데… 제가 그럴 수 있을까요?”

“대리님은 자기 기준이 너무 높아요. 글을 보진 않았지만, 두세 권은 이미 쓰고도 남았을 사람 같아요. 스스로를 너무 못 믿는 건 아닐까요?”


그 말을 들으며 마음이 크게 흔들렸다. 아직 나를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내가 한 말만으로 나를 믿어준다는 사실이 이상하게도 큰 위로가 되었다.


“책이 나오면, 처음으로 누구한테 주고 싶어요?”

“부모님이요.”

“부모님은 책 받으면 뭐라고 하실 것 같아요?”

“꼭 안아주시면서 ‘고생했다. 해낼 줄 알았다’고 하시지 않을까요.”


그 말을 꺼내는 순간, 갑자기 눈물이 났다.

남들 앞에서 우는 일이 거의 없는 내가, 처음 본 사람 앞에서 울고 있다는 사실이 부끄러워 눈물을 삼키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내가 꿈꿨던 미래를, 나를 격려하는 사람 앞에서 말하고 있는 이 자리가 새삼 고맙게 느껴졌다.


“제가 자기 기준이 높다는 말, 정말 공감하거든요. 그런데 그렇게 알아봐 주셔서… 창피하게 눈물까지 흘리네요.”

“제가 더 감사하죠. 이렇게 다 이야기해 주셔서요. 대리님, 올해는 꼭 출간해요. 완벽하지 않아도 되니까요.”

“네. 꼭요.”


그렇게 ‘출간’이라는 목표를 품고 코칭은 끝이 났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방향과 결말이었다. 얼떨떨했지만 기분이 좋았고, 오랫동안 성과 없이 주눅 들어 있던 나를 스스로 응원해보고 싶어졌다.


“저는요, 당신이 행복할 수 있도록 돕는 사람이에요. 필요하면 언제든 찾아와요.”


회사에서의 코칭은 단순히 업무 성과를 끌어올리기 위한 건조한 상담일 거라 생각했는데 그날의 코칭은 달랐다.

그건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원하는 것, 내가 필요로 하는 것을 다시 바라보게 해주는 시간이었고, 글을 쓰며 회사 생활을, 나아가 내 삶을 조금 더 잘 살아가게 만드는 방향을 알려준 순간이었다.







화, 목,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