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이 주는 위로-글쓰기 예찬 3
그러곤 다시 잠들었다가 가까스로 눈을 떠 여덟 시에 출근했다. 자다 깨다 자기를 반복해선지 피로가 점점 쌓여갔다. 새해라면 응당 새로운 계획과 목표, 건강한 삶을 앞세워야 할 텐데 현실은 그와 정반대다. 목의 가로 주름은 하루가 다르게 깊어지고 있는데 말이다.
매일 쓰던 습관을 내려놓고 한 달 동안 한량처럼 살았다.
청탁받은 원고 하나만 겨우 써내고는, 다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잡아당겨 억지로 늘어났던 스프링이 손을 놓자마자 제자리를 찾듯, 본래 내 것이었던 게으른 삶은 빠르게 자리를 되찾았다.
나름 열심히 살고 있다고, 닥치는 대로 무엇이든 하며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으려 애써왔다고 자부했는데, 틈만 나면 게으름이 몸부림쳤다. 기회를 엿보다가 불쑥 치고 들어와 나를 소파에 눕혔다. 한 번 누우면 그 포근함과 안락함에서 빠져나오기 힘들다는 걸 너무도 잘 아는 유혹자처럼. 그렇게 또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내가 돌아왔다. 매일 새벽 네 시에 일어나 글을 쓰던 나는 어디로 사라진 걸까. 한 달 전이 마치 일 년 전처럼 아득하다.
다시 글을 쓰려니 낯설기만 하다.
한 번도 글을 써본 적 없는 사람처럼 단어를 고르고, 한 문장을 완성하는 일이 쉽지 않다. 문장의 구조도, 단어의 결도 모두 잊어버린 사람처럼. 새해를 맞아 새로 태어난 사람처럼, 작가가 아니었던 것처럼.
다른 사람이 쓴 글을 보며 ‘나도 저것보단 잘 쓸 수 있지’라던 근거 없는 자신감도 어느새 사라지고, 이제는 마음마저 바닥을 친다. 시간을 들여 곱씹는다고 해서 더 좋은 글이 나오는 것도 아닌데, 뒤죽박죽이어도 매일 쓰던 때가 오히려 더 나았던 건 아닐까. 스스로를 스파르타식으로 몰아붙여야 어쩌다 한 번이라도 괜찮은 문장이 나오는 건 아닐까. 나의 글쓰기 방식에 대해 다시 묻게 된다.
얼마 전, 회사에서 고객사에 납품한 제품이 불량 판정을 받아 반출되는 일이 있었다.
고객사의 품질팀은 사전에 공유된 검사 방식이 아닌 다른 기준으로 제품을 검사했고, 그 결과 불량으로 분류되었다. 억울했지만, 고객사는 되레 어떤 방식으로 검사하든 양품이라면 문제 될 게 없지 않느냐며 큰소리를 쳤다. 결국 납기 지연이라는 불명예를 고스란히 떠안았고, 일정 담당자인 나는 끝없이 고개를 숙여야 했다.
명예롭지 못한 업무 결과와 달리, 그 사건은 내가 쓰는 글에 하나의 기준을 남겼다.
좋은 글이라면 어떤 잣대와 매서운 눈앞에 놓여도 반품되지 않을 것이라는 기준. 보는 눈을 탓하며 억울하다고 변명할수록 자존심만 다친다는 사실. 쉼 없이 쓴다고 반드시 좋은 글이 나오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지금처럼 느슨할 때보다는 더 나은 글이 나올 것이다. 그런 마음으로 글을 대해야 비로소 한 번쯤은 눈에 띄는, 반품되지 않을 글을 쓰게 될 것이다.
서른에 영화 시나리오를 공부했고, 마흔에는 드라마 작법에 빠져들었으며, 쉰이 되어 또 다른 글쓰기를 시작한 나. 자주 반품되고 자주 자존심이 상하더라도, 글쓰기를 멈추지는 말아야겠다고. 어떤 글이든 내 안에서 솟아오르는 것을 아낌없이 써보겠다고. 누군가의 마음에 가 닿을 수도, 광대가 아프도록 웃게 만들 수도 있는 글을 계속 쓰다 보면, 언젠가는 더 읽을 만하고 가끔은 가슴을 찐하게 울리는 글에 닿아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