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이 주는 위로-글쓰기 예찬 3
며칠 동안 내 몸 상태를 ‘일반인 모드’로 돌려보았다.
아무 글도 쓰지 않고, 아무 책도 읽지 않은 채 지냈다.
아무 것도 하지 않는 백지의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향해 손을 뻗는지 알아보는 시간이었다.
나는 원래 호기심이 많은 사람이다. 특히 사람이 궁금해 늘 그들을 향해 안테나를 세우고 산다.
이 말을 건네면 저 사람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그 말을 정확히 짚어주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상대의 말을 듣고 표정을 살피는 일은 누가 시켜서도, 더 좋은 것과 바꿔주겠다고 유혹해서도 아닌, 내 몸에 밴 본능에 가깝다.
알고 싶은 것을 향해 돌진하고, 알려주고 싶은 것을 참지 못해 기꺼이 사람들 속으로 들어갈 뿐이다.
회사 동료들은 나를 ‘복사기 같다’고 말한다.
말투와 표정, 몸짓을 그대로 따라 하며 상대의 숨은 마음을 콕 집어낸다며 ‘쪽집개 귀신’이라고도 한다.
나는 그저 한 사람을 오래 관찰하고, 마음을 들여다보고, 조심스레 따라 했을 뿐인데 그 과정이 신기하고 재미있다고들 한다.
정작 나는 내가 어떻게 말하고 행동하는지, 진짜 속마음이 무엇인지 잘 모르면서도 타인의 마음만은 열심히 들여다보고 이해하려 애쓴다.
어쩌면 나를 알 수 없어서 남을 관찰하고 분석하는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나를 이해하기 위해 남을 이해하려 애쓰는지도 모르겠다.
내 안테나가 사람을 관찰하고 이해하는 데서 멈췄다면, 이 글은 쓰이지 않았을 것이다.
결국 나는 글을 쓰기 위해 그 모든 일들을 해내고 있는 게 아닐지.
글을 쓰지 않는 나는 할 일이 없었다.
쓰지 않으니 읽고 싶지도 않았고, TV를 봐도 마음 한쪽이 비어 있었다.
사람들을 만나도 그들의 말과 삶을 붙잡아 둘 이유가 없었다.
기록하고 그 안에서 닮은 점과 다른 점을 발견하며 삶을 내 안에 들여오는 시간.
그 시간이 내 삶의 의미였다는 사실을 멈춰서야 알게 되었다.
아무 것도 하지 않는 나는 그동안 일궈온 ‘진짜 나’에게조차 의미가 없었다.
엄밀히 말하면 멈춘다기보다 정돈하려 한다.
의뢰받은 글에 집중해야 할 시기이기도 하고,
지금까지 써온 글의 방향을 점검하며 작가로서의 나를 다시 세울 필요가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짧고 가벼운 글을 써온 나는 한 단계 도약하기 위해 어쩌면 길고 묵직한 글을 들고 돌아올지도 모른다.
고민 끝에 달라지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글이 달라지지 않는다 해도, 나는 분명 달라져 있을 것이다.
글을 대하는 태도와 마음만큼은 이전과 같지 않을 테니까.
내가 쓴 글을 기다려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힘이 된다.
그리고 그 힘으로 분명 달라진 얼굴로 돌아올 것이다.
곧 와요.
곧 새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