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이 주는 위로-글쓰기 예찬 3
2026년 다이어리를 샀다.
내년엔 어떤 목표를 세울까.
내년에 어떤 글을 쓰는 사람이 될까.
올해 세운 목표 중 가장 이루고 싶었던 것은 단연 ‘첫 책 출간’이었다.
결과적으로 목표를 달성하진 못했지만, 그 과정에서 써 내려간 글들이 이제는 책 한 권을 채울 만큼 쌓였다.
결과만 보면 실패지만 과정만 보면 분명 한 발 더 가까워졌다는 사실이 나를 위로했다.
글을 쓰는 동안 복잡한 마음을 고요하게 해주는 임윤찬의 클래식을 공연장에서 듣는 것 역시 올해의 목표였다.
일 년 동안 단 세 번만이라도 공연을 보길 바랐고, 어제 드디어 세 번째 공연을 보고 왔다.
엊그제 첫눈보다 더 많은 눈이 내리던 길을 걸어 예술의 전당에 도착했다.
회사 동료가 건넨 “힐링하고 오세요”라는 말처럼, 공연장에 발을 들이자마자 그동안 쌓였던 시름이 스르르 녹아내렸다.
걱정될 만큼 쏟아지는 눈도, 가로등 아래 반짝이는 풍경도 그저 아름다워 보였다.
그 하루가 올 한 해의 아쉬움을 대신 보상해 주는 듯했다.
음악당에 들어가기 전, 아트숍에서 2026년 다이어리를 샀다.
내가 어떤 글을 쓰고, 어떤 음악을 들으며, 어떤 사람들을 만나게 될지 기대와 설렘을 적어낼 노트.
임윤찬의 날카롭고도 청량한 피아노 소리를 들으며 다이어리에 채워질 미래를 떠올리니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커튼콜 때는 천재적인 기교를 내려놓고 어색하게 인사하는 그의 모습에서 ‘사람’의 신비로움을 느꼈고,
오케스트라의 수많은 음이 조화를 이루는 순간을 보며 ‘나도 이런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공연이 끝나고 밖으로 나오니, 내리던 눈은 벌써 행인들의 발자국 아래 빙판으로 변해 있었다.
클래식 공연을 보겠다고 멋을 잔뜩 부린 나는 갑자기 긴장됐다. 신고 온 부츠의 밑창이 빙판보다 더 매끄러웠기 때문이다.
기차 시간을 맞추려 종종걸음으로 걷다가 속도를 조금 내는 순간,
어떻게 넘어졌는지도 모를 만큼 순식간에 바닥과 맞닿았다.
뒤에서 다가오는 인기척에 재빨리 일어서긴 했지만, 오른쪽 손목이 욱신거렸다.
아무도 도와주지 않은 사실보다, 기차에 늦을까 걱정한 마음보다, 혹시 손목에 금이라도 간 건 아닐까 하는 불안이 훨씬 더 크게 다가왔다.
새로운 시작을 기대하며 품에 안아온 다이어리가 무색할 만큼, 모든 계획이 한순간에 원점으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참 아이러니하다.
인생은 채워주는 만큼 또 가져가기도 한다.
2026년 다이어리의 첫 문장은 결국 이렇게 시작되었다.
빙판길에 넘어졌다.
모든 게 새로 시작되는 바닥을 치는 경험.
하지만 기왕 이렇게 된 거 바닥부터 다시 시작하면 되는 거다. 다시 일어서면 되는 거다.
그래서일까.
내년에 내가 어떤 글을 쓰게 될지 벌써부터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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